본문내용
맡기지 않고 자기가 장래를 좌지우지 할 듯이 덤비는 태도는 자기의 한계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루하루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행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4:15-17)
15절은 13절과 연결하여 읽으면 통합니다. 13절에 장사꾼의 예를 들어 말하면서 하나님과 관계해서 인생을 계획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거니와, 이제 하나님과 관계해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큰 섭리 중에 있는 것을 깨닫고 자기의 일을 하는 태도입니다. 영원토록 변치 않으심은 하나님께만 있고, 인생은 내일 일을 모르는 안개와 같은 존재인 만큼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16절에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는 사람”은 13절에서 교만한 말을 한 사람입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고 자신을 과신한 것들은 다 “허탄한” 것들입니다. 그것은 공허한 것들입니다. 그것을 자랑하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신실하시고 불변하신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는 것은 다 악한 것입니다.
17절이 그렇기 때문에 결론입니다. 전체 내용을 포괄하면 구약 잠언과 같이 함축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여기서 선은 무엇이겠습니까? 인생 자체가 유한하고, 약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불변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인생을 설계하고 살아가는 성도의 기본적인 삶의 태도가 선(善)입니다. 그것을 아는 성도가 그대로 “행치 아니하면 죄”가 됩니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 나갑시다.
제 9과 모든 일에 기도하라
본문: 야고보서 5:13-18
요절: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약 5:13)
본문은 야고보서의 마지막 권면입니다. 세상을 살며 어려움을 이기기 위하여 함께 기도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1. 고난 중에 기도하고 즐거울 때 찬송하십시오(13절)
성도의 삶의 여러 경우를 들어서 그 때마다 신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즐거울 때, 병이 들었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교훈 합니다. 성도는 다른 성도와 함께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13절에서 말하는 “고난”은 모든 종류의 재난과 불행입니다. 고난을 당하면 탄식하면서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라고 합니다. 고통의 날에 기도보다 더 힘있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기도할 때 상한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소망이 넘치는 심령으로 변화됩니다. 또한 성도는 즐거운 일이 있으면 자기의 능력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자만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런 태도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2. 병중에도 기도하십시오(5:14-18)
가장 큰 어려움은 병일 것입니다. 병들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자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교회에 알려야 합니다. “교회의 장로를 청하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장로”는 “감독”이나 “목사”와 동일한 명칭으로 교회의 대표를 의미합니다. 병든 사람은 교회의 지도자를 청해서 같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병이 깊은데도 교회 목사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감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 목사는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자입니다. 목사는 병든 자를 방문하여 기도하는 것이 의무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는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했습니다. 마가복음 6장 13절에도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특별한 신학적인 뜻이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적당한 약과 치료를 병행하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무방합니다. 문제는 기름을 바르는 것이 주된 것이 아니고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15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믿음의 기도”는 오직 고쳐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드리는 기도를 말합니다. “믿음의 기도”가 어떤 신유 능력을 가진 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기도란 믿음으로 하는 기도를 말합니다(약 1:6, 마 9:22). 이 믿음의 기도는 모든 성도들이 바른 기도의 태도를 가지고 기도하는 그런 기도이지 특별한 기도가 아닙니다. 이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음으로는 “죄를 서로 고하며 기도하라”고 했습니다(16절). 그러나 이 말은 믿은 자들이 죄를 서로 고백하는 모임을 가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죄를 서로 고하라”는 뜻입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죄 고백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첫째, 죄 고백은 죄를 지은 당사자에게, 용서받고 싶은 당사자에게 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만 아시는 은밀한 죄는 하나님께만 해야 합니다. 셋째, 전체 모임에 대해서 범한 죄는 공적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은 대중 앞에서 고백해야 합니다. 성경의 원칙은 고백이라는 것은 죄를 지은 대상에게 행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성도간의 아름다운 화해와 진정한 영적 교통 속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기도의 능력을 말씀한 것도, 서로 죄를 고백하여 화해하는 진정한 영적 교통 속에서 드리는 기도가 “의인의 간구”일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성도간에 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이 의인입니다.
이어서 “의인의 기도”가 어떤 능력이 있는가를 가르칩니다. 유대인은 엘리야를 초인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야보고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도 깊은 실망과 의기소침에 떨어질 수 있는(왕상 19:4), 죽음의 회오리바람 앞에서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망치는 사람이었습니다(왕상 19:3). 그런 약한 사람이었으나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루하루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행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4:15-17)
15절은 13절과 연결하여 읽으면 통합니다. 13절에 장사꾼의 예를 들어 말하면서 하나님과 관계해서 인생을 계획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거니와, 이제 하나님과 관계해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큰 섭리 중에 있는 것을 깨닫고 자기의 일을 하는 태도입니다. 영원토록 변치 않으심은 하나님께만 있고, 인생은 내일 일을 모르는 안개와 같은 존재인 만큼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16절에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는 사람”은 13절에서 교만한 말을 한 사람입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고 자신을 과신한 것들은 다 “허탄한” 것들입니다. 그것은 공허한 것들입니다. 그것을 자랑하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신실하시고 불변하신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는 것은 다 악한 것입니다.
17절이 그렇기 때문에 결론입니다. 전체 내용을 포괄하면 구약 잠언과 같이 함축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여기서 선은 무엇이겠습니까? 인생 자체가 유한하고, 약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불변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인생을 설계하고 살아가는 성도의 기본적인 삶의 태도가 선(善)입니다. 그것을 아는 성도가 그대로 “행치 아니하면 죄”가 됩니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 나갑시다.
제 9과 모든 일에 기도하라
본문: 야고보서 5:13-18
요절: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약 5:13)
본문은 야고보서의 마지막 권면입니다. 세상을 살며 어려움을 이기기 위하여 함께 기도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1. 고난 중에 기도하고 즐거울 때 찬송하십시오(13절)
성도의 삶의 여러 경우를 들어서 그 때마다 신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즐거울 때, 병이 들었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교훈 합니다. 성도는 다른 성도와 함께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13절에서 말하는 “고난”은 모든 종류의 재난과 불행입니다. 고난을 당하면 탄식하면서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라고 합니다. 고통의 날에 기도보다 더 힘있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기도할 때 상한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소망이 넘치는 심령으로 변화됩니다. 또한 성도는 즐거운 일이 있으면 자기의 능력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자만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런 태도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2. 병중에도 기도하십시오(5:14-18)
가장 큰 어려움은 병일 것입니다. 병들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자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교회에 알려야 합니다. “교회의 장로를 청하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장로”는 “감독”이나 “목사”와 동일한 명칭으로 교회의 대표를 의미합니다. 병든 사람은 교회의 지도자를 청해서 같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병이 깊은데도 교회 목사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감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 목사는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자입니다. 목사는 병든 자를 방문하여 기도하는 것이 의무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는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했습니다. 마가복음 6장 13절에도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특별한 신학적인 뜻이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적당한 약과 치료를 병행하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무방합니다. 문제는 기름을 바르는 것이 주된 것이 아니고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15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믿음의 기도”는 오직 고쳐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드리는 기도를 말합니다. “믿음의 기도”가 어떤 신유 능력을 가진 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기도란 믿음으로 하는 기도를 말합니다(약 1:6, 마 9:22). 이 믿음의 기도는 모든 성도들이 바른 기도의 태도를 가지고 기도하는 그런 기도이지 특별한 기도가 아닙니다. 이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음으로는 “죄를 서로 고하며 기도하라”고 했습니다(16절). 그러나 이 말은 믿은 자들이 죄를 서로 고백하는 모임을 가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죄를 서로 고하라”는 뜻입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죄 고백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첫째, 죄 고백은 죄를 지은 당사자에게, 용서받고 싶은 당사자에게 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만 아시는 은밀한 죄는 하나님께만 해야 합니다. 셋째, 전체 모임에 대해서 범한 죄는 공적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은 대중 앞에서 고백해야 합니다. 성경의 원칙은 고백이라는 것은 죄를 지은 대상에게 행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성도간의 아름다운 화해와 진정한 영적 교통 속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기도의 능력을 말씀한 것도, 서로 죄를 고백하여 화해하는 진정한 영적 교통 속에서 드리는 기도가 “의인의 간구”일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성도간에 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이 의인입니다.
이어서 “의인의 기도”가 어떤 능력이 있는가를 가르칩니다. 유대인은 엘리야를 초인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야보고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도 깊은 실망과 의기소침에 떨어질 수 있는(왕상 19:4), 죽음의 회오리바람 앞에서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망치는 사람이었습니다(왕상 19:3). 그런 약한 사람이었으나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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