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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상남도 거창군][상산김씨][거창사건]경상남도(경남) 거창군(거창)의 상산김씨, 경상남도(경남) 거창군(거창)과 거창사건, 경상남도(경남) 거창군(거창)과 거창민란, 경상남도(경남) 거창군(거창) 관광명소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경상남도(경남) 거창군(거창)의 상산김씨

Ⅲ. 경상남도(경남) 거창군(거창)과 거창사건

Ⅳ. 경상남도(경남) 거창군(거창)과 거창민란

Ⅴ. 경상남도(경남) 거창군(거창)의 관광명소
1. 수승대
2. 거창박물관
3. 월성계곡
4. 덕천서원
5. 송계사
6. 양평리 석조여래입상
7. 가섭사지마애삼존불상
8. 거창 둔마리벽화고분
9. 정온선생종택
10. 황산리 신씨고가
11. 갈계리 임씨고가
12. 동호리 이씨고가
13. 반구헌
14. 갈천서당
15. 하성

참고문헌

본문내용

충실히 드러났으며, 날씬하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이 남아 있다. 오른손은 내려 옷자락을 잡았고, 왼손은 배에 대어 검지손가락만 펴고 있다. 두 팔은 몸에 붙어 있어 조금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발밑에는 대좌에 꽂기 위해 만들었을 뾰족한 촉(觸)이 나와 있는데, 대좌는 지금 윗부분만 보이며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7. 가섭사지마애삼존불상
위치 :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 산 6-2(보물530호)
이 불상은 석굴의 암벽에 새긴 삼존불인데, 전체를 보주형으로 파서 광배인 동시에 빗물이 흘러내리는 홈의 구실을 하게 하였다. 본존불은 넓적한 얼굴에 삼각형의 코, 작은 눈과 입, 민틋한 귀 등 둔중하고 토속적인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좌우협시보살 역시 비슷한 형태의 얼굴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긴 체구의 신체는 양감이 거의 없이 조각되었는데, 각진 어깨, 밋밋한 가슴, 부자연스런 팔과 발목 등 신체 각 부분의 모습은 매우 도식적이며, 신체 양쪽으로 새깃같이 뻗친 옷자락은 삼국시대불상에서 보이는 표현이지만 삼국시대 양식이 아닌 고려시대에 새로 나타난 도식적인 수법임을 알 수 있다.
8. 거창둔마리벽화고분
위치 :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 산 298-2(사적239호)
금귀봉의 동남쪽으로 뻗어있는 산등성이에 자리잡고 있는 무덤으로, 무덤 내부구조는 상자형 쌍돌덧널로 먼저 땅을 판 후 판석으로 벽을 두르고 그 안에 덧널을 설치한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으로 서쪽에 있던 덧널에는 나무로 만든 널이 1개가 들어 있으며 동쪽 돌덧널은 비어 있다.
9. 정온선생종택
위치 :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50-1
동계 정온(1569~1641년)선생의 사당을 모시고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종택으로 대문채, 큰사랑채, 중문간과 중사랑채, 곳간채, 안채, 안사랑채, 사당, 토석 담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채는 솟을대문이며 인조임금이 내린「文簡公桐溪鄭蘊之門」의 정려 현판이 걸려 있다.
정면 6칸, 전퇴(前退)가 있는 2칸 반의 사랑채는 ㄱ자형이며 사랑채 상량대에는「崇禎紀元後四庚辰三月」이라 적혀 있다. 안채는 남향으로 정면 8칸, 측면 3칸 반의 전후퇴가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는 기단이 낮은 반면에 툇마루가 높게 설치되어 있다.
10. 황산리 신씨고가
위치 :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487(민속자료17호)
거창 신씨 집성촌인 황산 마을에 있으며 일명 「猿鶴古家」라 칭한다. 주요건물은 안채,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솟을대문, 후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27년에 건립한 것으로 검소한 양식에 서민적인 전통 한옥 특징을 갖추고 있다.
11. 갈계리 임씨고가
위치 :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1167
조선중기의 문신이며 효자로 이름이 높았던 갈천 임훈 선생이 거처하던 가옥으로 중종 2년(1507)에 지은 것이다.
가옥의 구조는 솟을 대문채, 사랑채, 안채, 장판각,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채에는 정려가 걸려 있고 홍문의 초석이 거북머리로 되어 있는데 작품성이 뛰어나다.
안채는 선생의 호를 따 자이당이라 부르며 정면 5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이다. 안채 옆에 갈천 선생과 동생 임운 선생의 문집책판을 보관한 장판각과 사당이 있다.
12. 동호리 이씨고가
위치 : 거창군 웅양면 동호리 848
조선 순조(1830년) 때 건립한 가옥으로 안채곳간채사랑채중문채대문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의 기단은 막돌 쌓기를 하였고 팔작지붕 이고 곳간채중문채는 맞배지붕이며, 대문채는 솟을대문이다. 곡간채의 벽채는 토담벽으로 두껍게 쌓았으며 안채의 전면에 원주로 사용했다. 사랑채의 전면에도 원주을 이용했고 가운데 방의 전면에 두 기둥은 팔모기둥으로 벽채 양모서리에 사용하였다.
13. 반구헌
위치 :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51
반구헌은 조선 헌종철종년간에 영양현감을 지낸 야옹 정기필 선생이 기거하던 주택이다. 반구헌은 현재 대문채와 사랑채만 남아 있는데, 사랑채는 팔작기와 지붕에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로 이루어진 비교적 큰 규모의 건물이며,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대청이 중앙에 있지 않고 규모가 1칸인 반면에 방이 3칸이라는 점이다. 또한 측면 1칸에 난간을 두룬누마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반구헌이란 이름은 스스로 자신을 뒤돌아보고 반성한다는 의미인「反求於諸心」에서 유래한다.
14. 갈천서당
위치 :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1073
갈천 임훈 선생이 아우 첨모당 임운과 함께 세워 후학들을 교육하던 곳이다. 임훈(1500~1584) 선생은 조선 명종 때의 문신으로 효행이 극진하여 명종 21년(1566)에는 효자 정려를 받았다.
선조 6년(1573)에 처음 세우고 고종 15년(1878)에 다시 지었다. 강당과 대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강당은 앞면 5칸옆면 1칸 반의 규모로 지붕의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 건물이다. 대문은 맞배지붕을 얹은 솟을대문이다.
15. 하성
위치 :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 64-1
이 산성은 산의 정상부를 성내로 하는 포곡성 형태를 취하고 있고 성벽은 자연석으로 쌓아 올린 협축수법으로 만들었다.
산성의 축조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 때 백제가 신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처음 쌓았다고 하며, 훗일 임진왜란 때 왜군의 침입을 방비하기 위해서 다시 수축하였다.
성의 주변 곳곳에 돌을 쌓아 놓은 돌무더기가 있는데, 이것은 남매가 성을 쌓다 남은 돌이라 하고 누이동생이 돌을 치마에 담아 운반하였으므로 이 성을 여성(女城) 또는 치마성이라고도 한다. 성의 길이는 1.5㎞, 높이는 2m 정도이며 성안은 현재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광주시립민속(2009) : 박물관 상산김씨 회곽묘 출토유물
김현영(2004) : 1862년 농민항쟁의 새 측면 : 거창 민란 관련 고문서의 소개, 한국고문서학회
김기곤(2009) : 국가폭력, 하나의 사건과 두 가지 재현 :거창사건의 기억과 문화적 재현과정,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박종섭(1997) : 거창 명승지의 역사와 전설, 문창사
이문수 외 3명(1995) : 거창지역 종합정보시스템 구축, ITFIND
한성훈(2006) : 거창사건의 정치사회적 분석 : 기억의 정치와 학살의 승인, 한국사회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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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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