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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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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시가(시가문학)와 전환기시가

Ⅱ. 시가(시가문학)와 개화기시가

Ⅲ. 시가(시가문학)와 신라시대시가

Ⅳ. 시가(시가문학)와 조선시대시가

Ⅴ. 시가(시가문학)와 서민시가

Ⅵ. 시가(시가문학)와 구비시가

Ⅶ. 시가(시가문학)와 상대시가

Ⅷ. 시가(시가문학)와 한역시가

참고문헌

본문내용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 시조의 한역에서 시조의 형식구조를 살리면서 동시에 한시로서의 정제된 형태를 갖춘 대표적 양식으로 계승되었다. 그리고 周世鵬의 <飜曲>, 崔慶昌의 <飜方曲>, 鄭徹의 <棲霞堂碧梧歌> 등은 자신의 작품을 57언 절구 형태로 번역한 것이며 林億齡의 <飜李後白瀟湘夜雨之曲>은 이후백의 <瀟湘八景歌>중 第一曲을 5언 절구로 9수로 한역한 것이다. 이들은 근체시의 절구 형태를 또 하나의 한역시가 양식으로 마련한 것이다. 한편 宋純은 자신의 시조 20여수와 가사 <仰亭歌>를 초사체로 한역하였다. 이 시기는 한역시가 양식의 형성기로서 작품은 많지 않지만 오언절구, 칠언절구, 5언6구, 장단구, 초사체 등 다양한 방법이 모색된 시기였다.
17세기에는 한역자 수가 대폭 증가하고 작품도 현저하게 많아지며 그 형식과 내용이 다양한 작품들이 나타난다. <何如歌> <丹心歌> <西山日落歌> <鐵嶺歌> <江湖期約歌> 등 사대부의 미의식과 정신세계를 표현한 특정 작품들을 여러 인물이 한역하였고 趙存性, 申欽, 李廷煥, 尹善道 등이 자신의 연작형 작품을 한역한 외에 李光胤, 李起渤, 宋時烈 등이 연작형으로 된 특정인물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한역하였다. 반면에 특정 작품이 아닌 항간에 유행하는 작품을 무작위로 수집하여 한역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李民宬은 ‘사람들이 우리말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고 운을 달아 시를 지었다’고 제목을 붙였는데 여태까지는 자신의 작품을 한역하거나 특정 인물의 연작형 작품을 한역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지만 이 작품은 당시에 널리 유행하는 다양한 작품을 수집하여 한역하는 선례를 마련하였다. 한편 김상헌의 <관동별곡> 한역은 이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송강가사 한역의 시초가 되었다.
이때까지는 주로 유교적 이념과 사대부적 미의식을 다룬 특정 작품이 한역되는 형편이었다. 이정환의 <悲歌> 10수는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노래한 것이고 이기발은 李德一의 <우국가> 28수에 나타난 우국충정에 감동하여 이를 번역한 것이다. 그리고 <고산구곡가> <관동별곡> 등은 사대부의 자연관과 미의식을 담은 것이다. 반면에 다양한 내용의 작품도 나타나는데 이광윤의 <藏六堂六歌>는 이른바 退溪가 완세불공의 뜻이 있다고 한 李鱉의 <六歌>를 한역한 것이고 신흠과 이민성의 작품은 사대부 문학의 일반적 작품세계와는 다른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노래한 것들이다.
한편 한역시가의 형식도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신흠, 이기발, 이광윤, 이정환, 송시열 등은 시조형식에 가까운 잡언체 장단구형, 초사체, 5언6구 등으로 옮기고 이민성은 5언4구형 고시를 선택하고, 송시열을 비롯한 노론계 인물들의 <고산구곡시>는 7언 절구에 맞추어 번역하였다. 이처럼 17세기는 시가한역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양식적 정착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18세기에는 시조의 한역이 가장 왕성하게 이루어졌다. 李의 <訓民歌>와 安昌後의 <閒說二十五歌>, 權燮의 <飜栗翁高山九曲歌>, 南極曄의 <愛景堂十二月歌> 등과 같이 특정 주제를 다룬 것도 물론 있지만 특히 항간에 유행하는 작품을 채집 한역하여 연작형을 이룬 것들이 대량으로 나타난다. 李基休, 南九萬, 李衡祥, 任珽, 南夏正, 南肅寬, 黃胤錫, 鄭鳳, 馬聖麟, 金良根, 洪良浩 등이 당시 유행하던 시조를 모아 한역함으로써 시조한역은 일대 유행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가사와 민요한역가의 경우 金萬重과 李揚烈의 한역이 18세기 초반에 이루어지고 김상숙의 한역이 18세기에 후반에 나왔으며 金相肅의 海東俚謠와 李思質의 <於難難曲> 등이 18세기에 나왔다.
이 시기의 작품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인생무상과 생의 고달픔 그리고 짙은 취락적 분위기와 애정 문제 등 생의 보편적 감정을 노래한 작품이 주류를 이루며 그 형식도 시조를 재현하기 용이한 6구 형태로 옮긴 것들이 대부분이다. 격식이 자유로운 양식을 개발 양식적 정착을 모색하면서 시조의 내용과 형식을 가급적 살리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한편 이경, 안창후, 권섭, 남극엽 등이 칠언절구형을 선택하였으며 특히 정봉과 마성린은 신위 등의 소악부 이전에 이미 민간에 유행하는 노래를 칠언절구 형태로 한역하여 이 시기에 이미 칠언절구형 한역시가 양식이 광범위하게 정착되었음을 보여준다.
19세기 역시 많은 작품이 나타났다, 우선 趙榥, 鄭顯錫 등이 100여수 이상을 한역한 것은 지금까지 없던 일이었다. 조황은 자신의 시조 작품을 다양한 근체시 양식으로 한역하여 그 작품이 183수에 이르며 특히 정현석이 기방에서 부르던 시조, 잡가 등을 한역하여 <교방가요>라는 이름으로 묶어 놓은 것은 가집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시기의 또 하나 주목되는 현상은 소악부의 출현이다. 그리고 이를 주도한 인물이 申緯이다. 그는 이제현의 <소악부>를 모델로 하여 주로 단형시조를 칠언절구 형식으로 재현하면서 이를 ‘소악부’라 이름하였고 이러한 신위의 전례는 李裕元, 李裕承, 元世洵 등에게 규범적으로 수용됨으로써 고려 말의 소악부가 조선 말에 재현되는 양상을 보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처럼 소악부를 제작한다는 뚜렷한 의도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권용정, 정현석 등도 많은 시조를 칠언절구로 한역하였다. 또 가사의 경우 成海應, 奇正鎭, 宋達洙 등의 송강가사 한역과 金逈洙의 <月餘農歌>가 이루어졌으며 李學逵, 권용정, 정현석 등의 잡가와 민요한역가도 나왔다. 이처럼 이시기의 특징으로 100수 이상 되는 방대한 연작형 작품의 등장, 소악부의 출현, 애정의 노래가 대폭 증가하고 7언 절구형이 주류를 차지한 점, 가사잡가민요한역가의 활발한 제작 등을 들 수 있다.
참고문헌
◎ 김교봉(1992), 근대 전환기 시가 연구의 성과와 전망, 한국어문연구학회
◎ 김태환(2000), 조선시대 시가문학의 소박미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 김상헌(2005), 구비시가 전통과 구비서정시의 발전토대에 관한 연구, 한국동유럽발칸학회
◎ 박애경(2009), 조선 후기, 개화기 시가 연구의 현황과 과제,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이종찬(1998), 신라시대 시가문학 보유, 한국불교어문학회
◎ 이정자(2003), 상대시가 배경 설화에 나타난 동화적 요소 고찰, 건국대학교 동화와번역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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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5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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