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동양의 신관
Ⅲ. 서양의 신관
1. 종교발생기원에 대한 비판적 설명
2. 원의(Wunsch)의 투사와 모상으로서의 신
3. 인간소외와 무신론
Ⅳ. 이슬람교의 신관
Ⅴ. 원시시대의 신관
Ⅵ. 단군신화의 신관
Ⅶ. 칼빈주의의 신관
Ⅷ. 보나벤투라(보나벤뚜라)의 신관
1. 하느님의 존재는 모든 이성적 영혼 안에 자연적으로 타고난(생득적) 진리라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2. 창조물을 통한 방법으로서 인과원리의 단순한 적용에 따른 추리이다
3. 제 1 원리를 통한 논증이다
참고문헌
Ⅱ. 동양의 신관
Ⅲ. 서양의 신관
1. 종교발생기원에 대한 비판적 설명
2. 원의(Wunsch)의 투사와 모상으로서의 신
3. 인간소외와 무신론
Ⅳ. 이슬람교의 신관
Ⅴ. 원시시대의 신관
Ⅵ. 단군신화의 신관
Ⅶ. 칼빈주의의 신관
Ⅷ. 보나벤투라(보나벤뚜라)의 신관
1. 하느님의 존재는 모든 이성적 영혼 안에 자연적으로 타고난(생득적) 진리라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2. 창조물을 통한 방법으로서 인과원리의 단순한 적용에 따른 추리이다
3. 제 1 원리를 통한 논증이다
참고문헌
본문내용
를 전제로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 점이 성 토마스와 큰 시각 차이를 보인다. 성 토마스는 신의 존재사실이 자명하지 않으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증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3. 제 1 원리를 통한 논증이다
이 점에서는 성 보나벤뚜라는 성 안셀무스의 충실한 제자로 남아 있다. 제 1 원리란 우리가 어떤 용어를 말할 때 그 즉시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진리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러한 명제에서는 주부가 술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은 존재한다는 명제가 바로 그러한 명제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최고의 진리로서 그 자체로 존재하며 더 완전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존재하지 않을 수 없고, 그의 존재의 본질적인 필연성은 어떻게든 우리의 생각에 반영되는 그런 것이다.
모든 긍정적인 명제는 어떤 것을 진리라고 긍정한다. 그 어떤 진리에 대한 긍정은 모든 진리의 근거를 긍정하는 것이다. 이 모든 진리의 근거가 되는 진리가 바로 제1원리이다. 부정명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진리이든 이 진리를 통하지 않고는 알려질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다른 모든 진리가 알려지는 그 진리는 의심할 수 없는 진리이다. 이 제1진리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할 수는 없다. 정신은 하느님의 빛에서만 영원의 진리를 파악하며 그것에서만 확실하고 필연적인 결론에 이를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지성은 진리 자체의 인도 없이는 어떠한 진리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없다.
성 보나벤뚜라의 주된 관심사는 하느님의 존재 증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명백히 존재하시는 하느님께 인간영혼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있었다. 이것은 그가 주장한 하급이성과 상급이성 중 상급이성의 기능에 해당한다. 이처럼 인간영혼이 하느님을 인식하고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방법에 관하여 그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정신의 여정>에서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성 보나벤뚜라는 창조된 우주 자체가 우리를 하느님께 이끌어 주는 사다리라고 본다. 피조물 가운데 어떤 것은 그분의 흔적이며 어떤 것들은 그분의 모상이다. 제일 원리는 온전히 영적이고 영원하며 온전히 우리 위에 있다. 그분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물질적, 일시적, 외부적 흔적들을 먼저 따라가야 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길로 인도됨을 의미한다. 그 다음에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이므로 영원하고 영적이며 내면적인 우리 자신의 영혼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진리 안에서 걸어감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제일원리이신 하느님을 우러러 봄으로써 우리 위에 있는 영원한 상태, 온전히 영적인 상태로 넘어가야 한다. 이것은 하느님을 알게 되어 기뻐하고 그분의 위엄을 보고 경배하며 기뻐함을 의미한다. 이 세 가지 방법에 맞게 우리의 영혼도 세 가지 주요 인식력을 지니고 있다. 먼저, 물질적 세계를 향한 인식으로 동물적 또는 감각적 인식이라 불린다. 그 다음, 내면세계를 향한 인식으로, 영혼 안에서 작용하며 영적 인식이라 불린다. 마지막으로, 영혼을 넘어선 세계를 향한 것으로 초자연적인 인식이라 불린다. 이 세 가지 과정은 하느님을 알파요 오메가로 보거나, 하느님을 거울을 통해서 보는 동시에 거울 속에서도 봄으로써 각 과정은 두 배로 될 수 있다. 즉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방법에는 여섯 가지가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사물을 ‘통해’ 파악된다는 것은 정신이 관찰된 사물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하느님께로 이끌어짐을 의미한다. 거울 ‘안에서’ 파악된다는 것은 정신이 관찰된 사물 ‘안에서’ 하느님이 행동하시고 현존하심을 인식함을 의미한다.
또 주의할 것은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는 것은 하느님의 존재증명이라기 보다 하느님의 인식이며, 하느님의 인식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인식을 통하여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첫째 방법에서는 사물들의 크기, 사물들의 수량, 사물들의 아름다움 등을 통하여 하느님을 인식하고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
둘째 방법에서는 우리는 오관을 통해 우리 마음에 들어오는 모든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을 관상하도록 인도된다. 우리는 하느님을 하느님의 흔적들 안에서 볼 수 있다.
위 두 단계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자아, 즉 다름 아닌 하느님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는 우리 자신의 정신에 들어가게 되는 지점까지 인도되었다.
셋째 방법에서는 우리 영혼의 능력인 기억, 지성, 의지를 통하여 하느님을 알아 볼 수 있다.
넷째 방법에서는 영혼이 정화되고 조명되고 완전해 짐으로써 우리의 정신이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 영혼 안에 들어감으로써 하느님을 바라본다.
위 두 단계에서 우리는 나아가 우리의 정신 위에서 빛나고 있는 빛, 영원한 진리의 빛을 통해서 우리 위에서 그분을 관상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다섯째 방법에서는 존재의 순수성, 무조건성, 절대성, 단순성, 현실성을 통하여 이 존재가 하느님임을 안다.
여섯째 방법에서는 순수한 선함을 드러내는 삼위일체 안에서 각 위격의 고유한 속성들을 관상하게 된다.
이 여섯째 단계에서 우리의 정신은 마침내 제일 원리이고 지고한 원리이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고찰하는 지점에까지 이르렀다. 이제 영혼에게는 그러한 것들을 고찰함으로써, 이 감각의 세계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자아까지도 초월하고 넘어서는 일만 남았다. 이 넘어섬에는 그리스도가 “길이요 문”이다. 이리하여 영혼은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어 영혼에게 휴식을 주는 신비로운 영적 황홀에 이르게 된다.
참고문헌
◈ 김영하(2010), 칼빈주의 구원론에 관한 고찰, 한국지역사회발전학회
◈ 김해원(2003), 성 프란치스꼬의 영적 성장 : 성 보나벤뚜라의 대전기를 중심으로, 가톨릭대학교
◈ 권진관(2004), 동학의 신관과 서학의 신관 : 민중신학적인 관점에서, 한국신학연구소
◈ 방석종(2004), 단군설화의 역사비평적 해석 : 신관을 중심으로, 고조선단군학회
◈ 이원삼(2005), 이슬람교의 신관 : 꾸란 속의 하나님, 본질과현상사
◈ Eun Hee Shin(2007), 동서양 범재신관에 관한 종교철학적 대화-영개념을 중심으로,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
3. 제 1 원리를 통한 논증이다
이 점에서는 성 보나벤뚜라는 성 안셀무스의 충실한 제자로 남아 있다. 제 1 원리란 우리가 어떤 용어를 말할 때 그 즉시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진리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러한 명제에서는 주부가 술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은 존재한다는 명제가 바로 그러한 명제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최고의 진리로서 그 자체로 존재하며 더 완전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존재하지 않을 수 없고, 그의 존재의 본질적인 필연성은 어떻게든 우리의 생각에 반영되는 그런 것이다.
모든 긍정적인 명제는 어떤 것을 진리라고 긍정한다. 그 어떤 진리에 대한 긍정은 모든 진리의 근거를 긍정하는 것이다. 이 모든 진리의 근거가 되는 진리가 바로 제1원리이다. 부정명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진리이든 이 진리를 통하지 않고는 알려질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다른 모든 진리가 알려지는 그 진리는 의심할 수 없는 진리이다. 이 제1진리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할 수는 없다. 정신은 하느님의 빛에서만 영원의 진리를 파악하며 그것에서만 확실하고 필연적인 결론에 이를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지성은 진리 자체의 인도 없이는 어떠한 진리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없다.
성 보나벤뚜라의 주된 관심사는 하느님의 존재 증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명백히 존재하시는 하느님께 인간영혼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있었다. 이것은 그가 주장한 하급이성과 상급이성 중 상급이성의 기능에 해당한다. 이처럼 인간영혼이 하느님을 인식하고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방법에 관하여 그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정신의 여정>에서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성 보나벤뚜라는 창조된 우주 자체가 우리를 하느님께 이끌어 주는 사다리라고 본다. 피조물 가운데 어떤 것은 그분의 흔적이며 어떤 것들은 그분의 모상이다. 제일 원리는 온전히 영적이고 영원하며 온전히 우리 위에 있다. 그분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물질적, 일시적, 외부적 흔적들을 먼저 따라가야 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길로 인도됨을 의미한다. 그 다음에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이므로 영원하고 영적이며 내면적인 우리 자신의 영혼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진리 안에서 걸어감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제일원리이신 하느님을 우러러 봄으로써 우리 위에 있는 영원한 상태, 온전히 영적인 상태로 넘어가야 한다. 이것은 하느님을 알게 되어 기뻐하고 그분의 위엄을 보고 경배하며 기뻐함을 의미한다. 이 세 가지 방법에 맞게 우리의 영혼도 세 가지 주요 인식력을 지니고 있다. 먼저, 물질적 세계를 향한 인식으로 동물적 또는 감각적 인식이라 불린다. 그 다음, 내면세계를 향한 인식으로, 영혼 안에서 작용하며 영적 인식이라 불린다. 마지막으로, 영혼을 넘어선 세계를 향한 것으로 초자연적인 인식이라 불린다. 이 세 가지 과정은 하느님을 알파요 오메가로 보거나, 하느님을 거울을 통해서 보는 동시에 거울 속에서도 봄으로써 각 과정은 두 배로 될 수 있다. 즉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방법에는 여섯 가지가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사물을 ‘통해’ 파악된다는 것은 정신이 관찰된 사물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하느님께로 이끌어짐을 의미한다. 거울 ‘안에서’ 파악된다는 것은 정신이 관찰된 사물 ‘안에서’ 하느님이 행동하시고 현존하심을 인식함을 의미한다.
또 주의할 것은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는 것은 하느님의 존재증명이라기 보다 하느님의 인식이며, 하느님의 인식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인식을 통하여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첫째 방법에서는 사물들의 크기, 사물들의 수량, 사물들의 아름다움 등을 통하여 하느님을 인식하고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
둘째 방법에서는 우리는 오관을 통해 우리 마음에 들어오는 모든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을 관상하도록 인도된다. 우리는 하느님을 하느님의 흔적들 안에서 볼 수 있다.
위 두 단계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자아, 즉 다름 아닌 하느님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는 우리 자신의 정신에 들어가게 되는 지점까지 인도되었다.
셋째 방법에서는 우리 영혼의 능력인 기억, 지성, 의지를 통하여 하느님을 알아 볼 수 있다.
넷째 방법에서는 영혼이 정화되고 조명되고 완전해 짐으로써 우리의 정신이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 영혼 안에 들어감으로써 하느님을 바라본다.
위 두 단계에서 우리는 나아가 우리의 정신 위에서 빛나고 있는 빛, 영원한 진리의 빛을 통해서 우리 위에서 그분을 관상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다섯째 방법에서는 존재의 순수성, 무조건성, 절대성, 단순성, 현실성을 통하여 이 존재가 하느님임을 안다.
여섯째 방법에서는 순수한 선함을 드러내는 삼위일체 안에서 각 위격의 고유한 속성들을 관상하게 된다.
이 여섯째 단계에서 우리의 정신은 마침내 제일 원리이고 지고한 원리이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고찰하는 지점에까지 이르렀다. 이제 영혼에게는 그러한 것들을 고찰함으로써, 이 감각의 세계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자아까지도 초월하고 넘어서는 일만 남았다. 이 넘어섬에는 그리스도가 “길이요 문”이다. 이리하여 영혼은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어 영혼에게 휴식을 주는 신비로운 영적 황홀에 이르게 된다.
참고문헌
◈ 김영하(2010), 칼빈주의 구원론에 관한 고찰, 한국지역사회발전학회
◈ 김해원(2003), 성 프란치스꼬의 영적 성장 : 성 보나벤뚜라의 대전기를 중심으로, 가톨릭대학교
◈ 권진관(2004), 동학의 신관과 서학의 신관 : 민중신학적인 관점에서, 한국신학연구소
◈ 방석종(2004), 단군설화의 역사비평적 해석 : 신관을 중심으로, 고조선단군학회
◈ 이원삼(2005), 이슬람교의 신관 : 꾸란 속의 하나님, 본질과현상사
◈ Eun Hee Shin(2007), 동서양 범재신관에 관한 종교철학적 대화-영개념을 중심으로,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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