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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몰락, 미국 엔론사, 아프간, 이스터섬]미국 엔론사의 몰락, 아프간의 몰락, 이스터섬의 몰락, 유고슬라비아의 몰락, 미국 엔론사 몰락의 교훈, 아프간 몰락의 교훈, 이스터섬 몰락의 교훈, 유고슬라비아 몰락 교훈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미국 엔론사의 몰락

Ⅱ. 아프간의 몰락

Ⅲ. 이스터섬의 몰락

Ⅳ. 유고슬라비아의 몰락

Ⅴ. 미국 엔론사 몰락의 교훈

Ⅵ. 아프간 몰락의 교훈

Ⅶ. 이스터섬 몰락의 교훈

Ⅷ. 유고슬라비아 몰락의 교훈

참고문헌

본문내용

게 손상되었다. 노출면이 늘어남에 따라 토양이 부식되고 필수 영양분이 빠져나갔다. 그 결과 작물 수확이 감소했다. 이러한 문제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유일한 식량은 닭뿐이었다. 닭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도둑을 방지할 필요도 커져서 이때쯤 돌로 만든 닭장이 섬에 등장한다. 점점 감소하는 자원만으로는 7000명의 인구를 먹여 살리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섬의 인구는 급격하게 줄어들어 갔다.
1600년 이후 이스터 섬 사회는 더욱 원시적인 상태로 쇠퇴해 갔다. 나무도 없고, 따라서 카누도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이 외딴 섬에 갇혀서 스스로 자초한 환경파괴의 결과를 피할 길이 없었다. 삼림 벌채의 사회적, 문화적 충격도 마찬가지로 중요했다. 더 이상 석상을 세울 수 없는 상황은 사회의 신앙 체계와 사회 조직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쳤고 복잡한 사회가 세워진 기반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줄어드는 자원을 둘러싼 갈등은 점점 심화되어 마침내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노예제도가 상습화되었고 구할 수 있는 단백질이 부족해짐에 따라 식인 풍습까지 생겨났다. 전쟁의 주목적 중 하나는 상대편 부족의 아후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몇 개만이 묘지로 남았을 뿐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너무 커서 파괴할 수 없는 석상들은 무너뜨렸다.
18세기에 처음 이 곳을 찾았던 유럽인들은 그나마 남아 있는 석상들을 몇 개 볼 수 있었지만 1830년대에 가서는 모두 다 무너져 내렸다. 외부의 방문객들이 원주민들에게 어떻게 이 석상들을 채석장에서 옮겨 왔느냐고 물으면 선조들의 업적을 기억 못하게 된 이들은 거대한 석상들이 섬을 가로질러 “걸어왔다”고 대답했다. 나무라고는 없는 섬의 풍경을 본 유럽인들은 논리적인 답을 발견할 수 없었기에 원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오리무중에 빠지고 말았다.
이스터 섬을 주민들은 난관을 헤쳐 가며 수세기에 걸쳐서 그 유형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사회를 건설해 냈다. 1000년 동안 이들은 생존 가능한 정도를 넘어 번성할 수 있도록 해준 정교한 사회 종교적 관습에 맞추어 생활을 유지했다. 많은 면에서 이것은 인간 재능의 승리였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위대한 승리였다. 하지만 늘어나는 인구와 섬 주민들의 문화적인 야심은 그들의 구할 수 있는 자원에 비해 너무 컸다. 압력에 의해서 환경이 파괴되자 사회는 빠른 속도로 붕괴되어 거의 야만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스터 섬 주민들은 자신들이 외부 세계로부터 거의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자신들의 생존 자체가 이 작은 섬의 한정된 자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어야만 했다. 어쨌거나 그 섬은 하루 정도면 섬 전체를 걸어서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작아서 숲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환경과 제대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체제를 고안해 낼 수 없었다. 대신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중요한 자원을 소비했던 것이다. 실제로 섬의 자원 고갈이 현격하게 드러났을 때쯤에 위신과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 더욱 많은 석상을 조각하고 섬을 가로질러 운반하기 위해 씨족들간에 목재를 구하기 위한 갈등이 점점 고조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나 많은 석상들이 미완성인 채 채석장 주변에 버려져 있다는 사실이 섬에 남아 있는 나무가 얼마나 조금이었는지를 전혀 고려치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스터 섬의 운명은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이스터 섬과 마찬가지로 지구에는 인간 사회와 그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자원이 제한되어 있다. 섬의 주민들처럼 인류도 지구를 떠날 방법이 없다. 세계의 환경이 어떻게 인류의 역사를 만들었으며 어떻게 인간이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만들고 변화시켰던가? 이 섬의 원주민들과 같은 전철을 밟은 사회는 없었을까? 지난 200만 년 동안 인간은 늘어나는 인구와 점점 복잡해지는 기술 문명과 진보하는 사회를 감당하기 위해 더 많은 식량을 확보하고 더 많은 자원을 뽑아 쓰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과연 인간은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치명적으로 고갈시키지 않고, 자신들의 생명 보전 체계를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파괴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는 데에 이스터 섬의 주민들보다 성공적이었는가?
Ⅷ. 유고슬라비아 몰락의 교훈
티토의 파르티잔이 나치에 승리하였을 때에는 유고는 마치 연합국참전국과 비슷한 대우를 받게 되어 영국을 비롯한 서방측이나 심지어 공산주의 본가인 소련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독자적 공산주의 국가 유고슬라비아를 건설한다. 티토사후에 여러 민족을 용광로 속에 넣고 하나로 묶었던 끈이 사라지자, 유고가 민족, 종교, 역사의 갈등이 터져 나오고 이에 불을 붙인 사건은 크게 2가지이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는 오스트리아 접경지역이라 공업기술 발전이 타 지역에 비하여 월등히 높은 수준으로 이들이 낸 세금이 가난한 지역 보스니아, 마케도니아 지역에 사용되는 것이 불만이다.
세르비아는 밀로세비치가 선거에서 승리를 위하여 지역감정을 부채질하는데 위대한 세르비아 건설을 주장하면서 세르비아 공화국선거에서 승리한다.
밀로세비치는 2차대전당시 세르비아인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던 크로아티아를 공격하고 이슬람교도인 보스니안을 인종 청소하는 지역감정에 모든 일을 판단하고 처리하다가 근자에 유엔의 공격에 세르비아 자체가 몇 십 년 후퇴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유고의 역사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주변에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호소하는지 우리민족을 망하게 하는지이다. 그리고 체트니크같이 민족보다 자신의 출세를 위하여 사상이라는 허울로 같은 민족을 억압하던 자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 배워야 한다.
참고문헌
김상헌, 유고슬라비아의 문화변동과 한국인의 이문화 갈등에 관한 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2008
김재관, 이스터섬 의 거상 모아이, 한국기술검정공단, 1981
박영수, 아프간 전쟁의 양상과 그 교훈, 한국국방연구원, 2002
서의남, 유고슬라비아 분쟁이 남긴 교훈, 국방부, 1999
신기철, 아프간 전쟁의 전쟁원인에 관한 연구, 대한민국 육군, 2010
카트린 소비아, 미국의 회계부정과 거대한 시장 실패 : 엔론사 사태를 중심으로, 참여연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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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23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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