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종교와 신권
Ⅱ. 종교와 권능
1. 방언
2. 방언 통역, 예언
3. 신령한 노래
4. 웃음
5. 기쁨
6. 진동
7. 쓰러지는 현상들
Ⅲ. 종교와 권세
1. 음녀권세
1) 음녀의 교만한 권세
2) 음녀의 극한 사치(奢侈)
3) 음녀의 기독교탄압
2. 짐승권세
1) 짐승권세의 실체
2) 짐승권세와 음녀권세의 야합
Ⅳ. 종교와 기독교권
참고문헌
Ⅱ. 종교와 권능
1. 방언
2. 방언 통역, 예언
3. 신령한 노래
4. 웃음
5. 기쁨
6. 진동
7. 쓰러지는 현상들
Ⅲ. 종교와 권세
1. 음녀권세
1) 음녀의 교만한 권세
2) 음녀의 극한 사치(奢侈)
3) 음녀의 기독교탄압
2. 짐승권세
1) 짐승권세의 실체
2) 짐승권세와 음녀권세의 야합
Ⅳ. 종교와 기독교권
참고문헌
본문내용
치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그들은 경제학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많은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지했다.
식민지들이 마침내 독립했을 때, 그 나라들은 이미 거의 황폐화되어 있었다. 국민들은 서로 싸우고 증오와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경제는 파탄지경이었고 이익이 되는 것은 모두 지주계급이나 구식민지배 강대국에 사는, 보이지 않는 투자가들이었다. 이들 투자자들이 그 나라에 남겨두고 온 개인기업을 통해 여전히 이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정치가 필요하지 않았다. 많은 신생독립국가가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공산화되었으나, 공산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제 그 나라들은 이슬람 쪽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슬람이 무슨 경제 프로그램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이슬람을 통해 그 많은 세월, 자신들을 착취하고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기독교도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그 분노가 얼마나 깊은지는, 교회를 불태우고 기독교인들을 암살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리스도인이 되거나 모하메드에 대해 폄하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응분의 처벌은 죽음이라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믿고 있다는 사실만 기억해도 충분할 것이다.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기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제국주의 열강들 중에는 많은 유익을 끼친 경우도 없지 않다. 그들은 도로를 닦고, 산업을 유치하고 건강진료를 도입했으며 교육제도를 확립시키고 다소간의 생활수준향상 및 외형적인 \"진보\"를 가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독립한 순간부터 통치권을 둘러싸고 많은 당파로 나뉘어, 독립 이전에 제국주의자들이 국가경제를 착취하던 방식 그대로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제국주의 세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거나 제국주의에 대항해 싸우는 경력을 거치면서 그 방면에서는 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탐욕과 권력욕으로 인해 그들의 나라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10-40 창에 있는 나라 중에는 독립 이후로 매년 정권이 바뀐 나라들도 있다. 불행과 가난에 찌들려 건강을 잃고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환경에서 지내거나 아예 거처가 없는 사람들이 직장을 얻을 가능성도 없이 분노와 원한에 사무쳐 살아간다. 그들의 산업, 농장, 관계시설이 내전(內戰)으로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설교할 수 있는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들이 과연 죽으면 가는 저 세상으로서의 구원을 받아들일까? 우리는 지극히 겸손하게 회개에 임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은 것은 \"우리 기독교인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 선교사들은 한번도 제국주의자들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좋다. 하지만 그들은 기독교인들이고, 기독교인들이기 때문에 그들도 제국주의의 도구이다. 왜냐하면 모든 제국주의자들은 일본인을 제외하고는 기독교인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왜 기독교에 대한 태도가 다른가? 이곳 한국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자유를 얻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고 독립투쟁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결코 일제 식민지 권력과 동일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일이 세계에서 거의 유래 없는 유일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선교사들을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가장 강력히 비난해 온 것은 중국 공산당이었지만, 정작 중국은 한번도 기독교국가의 지배하에 들어갔던 적은 없다. 기독교권인 영국이 대놓고 아편 무역을 계속하기 위해 중국과 몇 차례의 전쟁을 벌인 것은 사실이다. 아편무역을 통해 중국이 큰 피해를 입었고 영토 자체는 작지만 상징적 의미가 큰 홍콩을 빼앗긴 것은 사실이다. 중국이 전쟁에 패해 마약무역에 항구를 개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이후 선교사들이 마약 무역상들의 뒤를 따라 들어온 것도 사실이다. 이로 인해 아편 매매상들과 \"민중의 아편\"(기독교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별명) 전도자들 사이에는 무의식적인 공조가 생겨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군벌(軍閥), 대지주, 그리고 일본인들이 중국을 압제했으며, 따라서 그러한 압제자들과 선교사들을 한패거리로 바라보는 일은 없었다. 중국 공산당이 선교사들을 추방할 때 즈음에는 이미 아편전쟁에 대한 기억은 거의 잊혀졌으며 열심히 일하고, 사랑이 충만하고 자기희생적인 선교사들이 건강한 교회를 남겨두고 떠났다. 그 교회는 가난한 자들의 교회, 압제받는 자들의 교회였으니, 서양인 선교사들이 물러난 이후 처음 45년 동안 중국교회는 30배 이상 증가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 밖에 없다. 교회의 죄악은 우리의 죄악이다. 교회의 실수는 우리의 실수이다. 우리는 그러한 죄악과 실수에 대해 회개해야 하며 우리가 야기한 모든 고통에 대해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용서를 구하고, 복음은 가난한 자를 위한 것이며, 압제받는 자, 절름발이, 소경, 노숙자, 고아, 과부, 토지가 없는 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말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당신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때 이것이 온전히 성취될 것이라고 가르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바로 지금 성령의 코이노니아 안에서 우리가 한 가족이 되며 평생 서로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을 입증해 보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토지개혁이 시행되기 전이라 해도 그리스도인 사이에는 가난이 없을 것이다. 서로가 가진 것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고 공중의 새를 먹이시는 하나님이 당신의 기적적인 공급의 원천으로부터 무엇이든지 부족한 것을 공급하시는 것이다. 미가서 6장 8절. 공의가 첫째, 자비가 두 번째, 기적은 세 번째인 것이다!
참고문헌
오강남, 성해영(2011),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북성재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 헤드 저, 김희헌 역(2012), 진화하는 종교, 대한기독교서회
제시베링 저, 김태 외 1명 역(2012), 종교 본능, 필로소픽
지그문트 프로이트 저, 이윤기 역(2004), 종교의 기원, 열린책들
탁명환(1971), 신권도학 연구소, 국제종교문제연구소
하비 콕스 저, 김창락 역(2010), 종교의 미래, 문예출판사
식민지들이 마침내 독립했을 때, 그 나라들은 이미 거의 황폐화되어 있었다. 국민들은 서로 싸우고 증오와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경제는 파탄지경이었고 이익이 되는 것은 모두 지주계급이나 구식민지배 강대국에 사는, 보이지 않는 투자가들이었다. 이들 투자자들이 그 나라에 남겨두고 온 개인기업을 통해 여전히 이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정치가 필요하지 않았다. 많은 신생독립국가가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공산화되었으나, 공산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제 그 나라들은 이슬람 쪽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슬람이 무슨 경제 프로그램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이슬람을 통해 그 많은 세월, 자신들을 착취하고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기독교도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그 분노가 얼마나 깊은지는, 교회를 불태우고 기독교인들을 암살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리스도인이 되거나 모하메드에 대해 폄하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응분의 처벌은 죽음이라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믿고 있다는 사실만 기억해도 충분할 것이다.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기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제국주의 열강들 중에는 많은 유익을 끼친 경우도 없지 않다. 그들은 도로를 닦고, 산업을 유치하고 건강진료를 도입했으며 교육제도를 확립시키고 다소간의 생활수준향상 및 외형적인 \"진보\"를 가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독립한 순간부터 통치권을 둘러싸고 많은 당파로 나뉘어, 독립 이전에 제국주의자들이 국가경제를 착취하던 방식 그대로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제국주의 세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거나 제국주의에 대항해 싸우는 경력을 거치면서 그 방면에서는 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탐욕과 권력욕으로 인해 그들의 나라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10-40 창에 있는 나라 중에는 독립 이후로 매년 정권이 바뀐 나라들도 있다. 불행과 가난에 찌들려 건강을 잃고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환경에서 지내거나 아예 거처가 없는 사람들이 직장을 얻을 가능성도 없이 분노와 원한에 사무쳐 살아간다. 그들의 산업, 농장, 관계시설이 내전(內戰)으로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설교할 수 있는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들이 과연 죽으면 가는 저 세상으로서의 구원을 받아들일까? 우리는 지극히 겸손하게 회개에 임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은 것은 \"우리 기독교인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 선교사들은 한번도 제국주의자들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좋다. 하지만 그들은 기독교인들이고, 기독교인들이기 때문에 그들도 제국주의의 도구이다. 왜냐하면 모든 제국주의자들은 일본인을 제외하고는 기독교인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왜 기독교에 대한 태도가 다른가? 이곳 한국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자유를 얻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고 독립투쟁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결코 일제 식민지 권력과 동일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일이 세계에서 거의 유래 없는 유일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선교사들을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가장 강력히 비난해 온 것은 중국 공산당이었지만, 정작 중국은 한번도 기독교국가의 지배하에 들어갔던 적은 없다. 기독교권인 영국이 대놓고 아편 무역을 계속하기 위해 중국과 몇 차례의 전쟁을 벌인 것은 사실이다. 아편무역을 통해 중국이 큰 피해를 입었고 영토 자체는 작지만 상징적 의미가 큰 홍콩을 빼앗긴 것은 사실이다. 중국이 전쟁에 패해 마약무역에 항구를 개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이후 선교사들이 마약 무역상들의 뒤를 따라 들어온 것도 사실이다. 이로 인해 아편 매매상들과 \"민중의 아편\"(기독교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별명) 전도자들 사이에는 무의식적인 공조가 생겨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군벌(軍閥), 대지주, 그리고 일본인들이 중국을 압제했으며, 따라서 그러한 압제자들과 선교사들을 한패거리로 바라보는 일은 없었다. 중국 공산당이 선교사들을 추방할 때 즈음에는 이미 아편전쟁에 대한 기억은 거의 잊혀졌으며 열심히 일하고, 사랑이 충만하고 자기희생적인 선교사들이 건강한 교회를 남겨두고 떠났다. 그 교회는 가난한 자들의 교회, 압제받는 자들의 교회였으니, 서양인 선교사들이 물러난 이후 처음 45년 동안 중국교회는 30배 이상 증가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 밖에 없다. 교회의 죄악은 우리의 죄악이다. 교회의 실수는 우리의 실수이다. 우리는 그러한 죄악과 실수에 대해 회개해야 하며 우리가 야기한 모든 고통에 대해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용서를 구하고, 복음은 가난한 자를 위한 것이며, 압제받는 자, 절름발이, 소경, 노숙자, 고아, 과부, 토지가 없는 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말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당신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때 이것이 온전히 성취될 것이라고 가르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바로 지금 성령의 코이노니아 안에서 우리가 한 가족이 되며 평생 서로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을 입증해 보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토지개혁이 시행되기 전이라 해도 그리스도인 사이에는 가난이 없을 것이다. 서로가 가진 것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고 공중의 새를 먹이시는 하나님이 당신의 기적적인 공급의 원천으로부터 무엇이든지 부족한 것을 공급하시는 것이다. 미가서 6장 8절. 공의가 첫째, 자비가 두 번째, 기적은 세 번째인 것이다!
참고문헌
오강남, 성해영(2011),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북성재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 헤드 저, 김희헌 역(2012), 진화하는 종교, 대한기독교서회
제시베링 저, 김태 외 1명 역(2012), 종교 본능, 필로소픽
지그문트 프로이트 저, 이윤기 역(2004), 종교의 기원, 열린책들
탁명환(1971), 신권도학 연구소, 국제종교문제연구소
하비 콕스 저, 김창락 역(2010), 종교의 미래,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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