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조선전기의 행정환경
제1절 조선시대의 행정 환경
1. 정치
2. 경제
3. 사회
4. 교육
제2절 조직과 운영
1. 중앙의 정치조직
2. 지방통치구조
제3절 집권체제의 정비
1. 태조(1392-1398)
2. 태종(1400-1418)
3. 세종(1418-1450)
4. 세조(1455-1468)
5. 성종(1469-1494)
제4절 성리학과 유교사상
1. 성리학
2. 유교사상
< 양반정치 >
제1절 양반의 개념
제2절 양반관료의 선출 방식
제3절 양반 관료조직의 특성과 운영 방식
제4절 양반 관료제의 특징
1.과거의 중시
2. 신분에 따른 한품서용의 제도
3. 문관우위
4. 광범위한 겸임제
5. 관직 구조의 다양성
< 당쟁 >
제1절 조선전기의 당쟁
1. 당쟁의 의미
2.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
3. 당쟁의 시작
4. 서인의 실각
5. 정여립의 난과 동인의 실각
6. 세자 건저 문제와 서인의 실각
7. 정철 처벌 문제로 갈라지는 동인
8. 임진왜란 때의 당쟁
9. 임진왜란 때 각 당파의 공
제2절 조선후기의 당쟁
1. 북인의 분열
2. 선조의 죽음과 소북의 분열
3. 광해군과 대북정권의 혁신 정치
4. 인조반정(계해정변)과 이괄의 난
5. 인조, 효종 , 현종까지의 문묘종사 논쟁
6. 제 1, 2차 예송논쟁
7. 송시열의 처벌 문제로 인한 남인의 분당
9. 허적의 기름 유용 사건과 경신환국
10. 서인의 노론과 소론으로의 분당
12. 기사환국과 남인의 집권
13. 갑술환국과 서인의 집권
14. 신임사화과 소론의 정권장악
15. 남인의 왕 영조에서 정미환국까지
16. 사도세자(영조의 아들)의 죽음에 대한 노론의 분열
17. 신서파와 공서파
제1절 조선시대의 행정 환경
1. 정치
2. 경제
3. 사회
4. 교육
제2절 조직과 운영
1. 중앙의 정치조직
2. 지방통치구조
제3절 집권체제의 정비
1. 태조(1392-1398)
2. 태종(1400-1418)
3. 세종(1418-1450)
4. 세조(1455-1468)
5. 성종(1469-1494)
제4절 성리학과 유교사상
1. 성리학
2. 유교사상
< 양반정치 >
제1절 양반의 개념
제2절 양반관료의 선출 방식
제3절 양반 관료조직의 특성과 운영 방식
제4절 양반 관료제의 특징
1.과거의 중시
2. 신분에 따른 한품서용의 제도
3. 문관우위
4. 광범위한 겸임제
5. 관직 구조의 다양성
< 당쟁 >
제1절 조선전기의 당쟁
1. 당쟁의 의미
2.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
3. 당쟁의 시작
4. 서인의 실각
5. 정여립의 난과 동인의 실각
6. 세자 건저 문제와 서인의 실각
7. 정철 처벌 문제로 갈라지는 동인
8. 임진왜란 때의 당쟁
9. 임진왜란 때 각 당파의 공
제2절 조선후기의 당쟁
1. 북인의 분열
2. 선조의 죽음과 소북의 분열
3. 광해군과 대북정권의 혁신 정치
4. 인조반정(계해정변)과 이괄의 난
5. 인조, 효종 , 현종까지의 문묘종사 논쟁
6. 제 1, 2차 예송논쟁
7. 송시열의 처벌 문제로 인한 남인의 분당
9. 허적의 기름 유용 사건과 경신환국
10. 서인의 노론과 소론으로의 분당
12. 기사환국과 남인의 집권
13. 갑술환국과 서인의 집권
14. 신임사화과 소론의 정권장악
15. 남인의 왕 영조에서 정미환국까지
16. 사도세자(영조의 아들)의 죽음에 대한 노론의 분열
17. 신서파와 공서파
본문내용
다.
정철은 어쩔 수 없이 동인 유성룡과 합의해 임금께 나가는데 선조는 아직 때가 아니라며 노했다. 이 일로 인해 서인과 선조의 사이가 멀어지게 되고 정철은 실각하며, 더불어 서인 또한 정계를 떠나게 된다.
7. 정철 처벌 문제로 갈라지는 동인
(1) 온건파: 대개 이황의 문인들로 유성룡, 우성전, 이원익, 이수광, 이덕형 등등이 포진-남인
(2) 강경파: 대개 조식의 문인들로 이산해, 유영경, 기자헌, 유몽인, 박승종 등등이 포진-북인
→이후 북인이 정권 장악
8. 임진왜란 때의 당쟁
(1) 성흔에 대한 동인 이홍로의 무고: 선조가 의주로 파천시, 파주에 있는 성흔의 집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성흔이 나오지 않자 이홍로가 그를 매도 했던 일
(2) 정철에 대한 계속된 동인의 비난
9. 임진왜란 때 각 당파의 공
(1) 북인: 강경주전파로 김덕령, 곽재우와 같은 의병장 등장
(2) 남인: 유성룡이 이순신과 권율 등의 중용을 주장
(3) 서인: 이이의 십만 양병설과 부사 황윤길의 침략 예언보고, 조헌과 고경명 같은 의병장
제2절 조선후기의 당쟁
1. 북인의 분열
임진왜란이 끝나고 새 왕비인 인목대비가 영창대군을 낳아, 광해군의 입지가 흔들리게 되는데, 이로 인해 북인은 정인홍을 중심으로 한 대북(광해군 지지), 유영경을 중심으로 한 소북(영창대군지지)으로 나뉘어졌다.
2. 선조의 죽음과 소북의 분열
1608년 선조가 병으로 죽음에 임박했을 때 영창대군은 두 살의 나이로 현실적으로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주어야 하는 것으로 판단하여, 원임대신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소북의 유영경(당시 영의정)은 혼자 선조의 유명을 듣고, 이후 궁궐을 군사로 둘러싼다.
이런 상황이 되자 소북내에서 반대파가 속출하여 허욱, 송응순, 이효원, 이유홍, 김개래 등 유영경을 지지하는 유당과, 남이공, 김기국, 박이서등의 반대파인 남당으로 갈리었다.
3. 광해군과 대북정권의 혁신 정치
선조가 죽은 후 인목대비는 현실적 판단으로 광해군을 즉위시킨다는 교지를 내리고, 즉위한 광해군은 자신을 지지했던 대북을 중용하고 혁신 정치(대동법, 양전사업, 실리외교, 일본과의 수교 등)를 펼친다.
@인목대비의 폐모론에 의한 당쟁
대북과 남인은 폐모론에 반대, 서인은 폐모에 반대. 대북 정권은 죽이려함
(1) 대북-골북, 육북, 중북
①골북: 이산해 중심
②육북: 홍여순, 이이첨 중심
③중북: 유몽인 중심
⇒골북과 육북은 영창대군과 인목대비 폐위를 주도, 중북은 폐위 반대
(2) 소북-청소북(남이공), 탁소북(유영경)
⇒영수격인 두 사람의 틈이 벌어져서 갈림
4. 인조반정(계해정변)과 이괄의 난
이귀, 김자점, 김류, 최명길, 이괄등의 서인들이 주도하고 남인 이원익(영의정)을 끌어들여 광해군을 폐하고 이후 서인세력은 남인 세력을 끌어들여 연립정권을 구축한다.
(1) 공서: 송익필계열 (이귀, 김류) : 권모술수의 권력지향형-정치참여, 반정에 가담, 후에 노서 로 개편, 원당과 낙당으로 나뉘어짐
청서: 정통이이계열 (김장생, 김상헌) : 순수 유학-정치참여거부, 반정에 가담 안함, 후에 소 서로 개편
(2) 노서: 김상헌을 필두로 남인을 정치에 참여시킬 것을 주장
소서: 최명길을 필두로 서인만의 정치 주장
5. 인조, 효종 , 현종까지의 문묘종사 논쟁
인조가 집권했을 시기 서인이 이이와 성흔의 문묘종사 운동을 실시한다. 하지만 남인의 반대와 인조의 견제로 효종, 현종까지 계속된다.
@한당과 산당: 대동법의 실시 여부에 따른 분당
(1) 한당(서울): 김육을 필두로 대동법 실시 주장
(2) 산당(충청지역-산림적 기반): 김집을 필두로 대동법 반대
6. 제 1, 2차 예송논쟁
조선 현종·숙종대에 효종과 효종비에 대한 자의대비(인조의 계비)의 복상기간을 둘러싸고 2차에 걸쳐 일어난 남인·서인간의 논쟁
7. 송시열의 처벌 문제로 인한 남인의 분당
(1) 청남: 허목과 윤휴를 중심의 강경파로 송시열을 죽여야한다고 주장
(2) 탁남: 허적을 중심으로 송시열을 죽이면 안된다고 주장
⇒송시열은 온건 처벌론 덕에 유배형으로 낙착됨
9. 허적의 기름 유용 사건과 경신환국
허적의 기름 유용사건으로 경신환국이 일어나고, 이 일(경신환국)을 계기로 서인이 정권을 잡게 된다.
10. 서인의 노론과 소론으로의 분당
윤증이 제시했던 3가지(남인과 서인의 화해, 척신 정치 구조의 타파, 당색을 배제한 고른 등용) 에 대한 찬반여부로 분열.
(1) 노론: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강건 보수파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음
(2) 소론: 윤증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
12. 기사환국과 남인의 집권
숙종의 세자책봉 문제로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집권을 잡는다.
13. 갑술환국과 서인의 집권
서인 김춘택의 폐비민비의 복위운동을 발단으로 남인과 서인의 집권이 뒤바뀌게 된다.
⇒특히 노론은 숙종과 독대를 할 정도로 가까워짐.
14. 신임사화과 소론의 정권장악
숙종 이후의 경종 때 노론의 대리청정 주장에 대한 소론의 탄핵 성공으로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 등 노론 4대신을 비롯한 노론의 대다수 인물이 화를 입었다.
15. 남인의 왕 영조에서 정미환국까지
영조는 노론의 지지를 받았던 인물로 경종의 죽음 이후, 영조는 소론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결국 1725년 을사환국의 단행으로 노론이 정권을 잡았으며, 이후 원흉오적과 소하오적의 처형을 주장하였으나 영조는 이에 반대하며 다시 소론으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이후 이인좌의 난으로 다시금 소론의 입지는 좁아진다.
@노론이 경종의 죽음에 관련했다는 데에 대한 소론의 노론에 대한 처벌
(1)완소-주모자만 처벌
(2)준소-강경파
16. 사도세자(영조의 아들)의 죽음에 대한 노론의 분열
(1) 시파-사도세자의 죽음을 동정하는 세력: 정조(사도세자의 아들)를 지지
(2) 벽파-사도세자의 죽음을 당연시하는 세력: 정조를 반대
17. 신서파와 공서파
(1) 신서파: 조선 정조·순조 때 서양의 과학사상과 천주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던 남 인 계열의 학자들
(2) 공서파: 정조가 즉위하여 노론을 견제할 목적으로 남인 시파를 비호·육성하자, 이들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노론 벽파에 가담했던 남인 벽파의 무리.
정철은 어쩔 수 없이 동인 유성룡과 합의해 임금께 나가는데 선조는 아직 때가 아니라며 노했다. 이 일로 인해 서인과 선조의 사이가 멀어지게 되고 정철은 실각하며, 더불어 서인 또한 정계를 떠나게 된다.
7. 정철 처벌 문제로 갈라지는 동인
(1) 온건파: 대개 이황의 문인들로 유성룡, 우성전, 이원익, 이수광, 이덕형 등등이 포진-남인
(2) 강경파: 대개 조식의 문인들로 이산해, 유영경, 기자헌, 유몽인, 박승종 등등이 포진-북인
→이후 북인이 정권 장악
8. 임진왜란 때의 당쟁
(1) 성흔에 대한 동인 이홍로의 무고: 선조가 의주로 파천시, 파주에 있는 성흔의 집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성흔이 나오지 않자 이홍로가 그를 매도 했던 일
(2) 정철에 대한 계속된 동인의 비난
9. 임진왜란 때 각 당파의 공
(1) 북인: 강경주전파로 김덕령, 곽재우와 같은 의병장 등장
(2) 남인: 유성룡이 이순신과 권율 등의 중용을 주장
(3) 서인: 이이의 십만 양병설과 부사 황윤길의 침략 예언보고, 조헌과 고경명 같은 의병장
제2절 조선후기의 당쟁
1. 북인의 분열
임진왜란이 끝나고 새 왕비인 인목대비가 영창대군을 낳아, 광해군의 입지가 흔들리게 되는데, 이로 인해 북인은 정인홍을 중심으로 한 대북(광해군 지지), 유영경을 중심으로 한 소북(영창대군지지)으로 나뉘어졌다.
2. 선조의 죽음과 소북의 분열
1608년 선조가 병으로 죽음에 임박했을 때 영창대군은 두 살의 나이로 현실적으로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주어야 하는 것으로 판단하여, 원임대신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소북의 유영경(당시 영의정)은 혼자 선조의 유명을 듣고, 이후 궁궐을 군사로 둘러싼다.
이런 상황이 되자 소북내에서 반대파가 속출하여 허욱, 송응순, 이효원, 이유홍, 김개래 등 유영경을 지지하는 유당과, 남이공, 김기국, 박이서등의 반대파인 남당으로 갈리었다.
3. 광해군과 대북정권의 혁신 정치
선조가 죽은 후 인목대비는 현실적 판단으로 광해군을 즉위시킨다는 교지를 내리고, 즉위한 광해군은 자신을 지지했던 대북을 중용하고 혁신 정치(대동법, 양전사업, 실리외교, 일본과의 수교 등)를 펼친다.
@인목대비의 폐모론에 의한 당쟁
대북과 남인은 폐모론에 반대, 서인은 폐모에 반대. 대북 정권은 죽이려함
(1) 대북-골북, 육북, 중북
①골북: 이산해 중심
②육북: 홍여순, 이이첨 중심
③중북: 유몽인 중심
⇒골북과 육북은 영창대군과 인목대비 폐위를 주도, 중북은 폐위 반대
(2) 소북-청소북(남이공), 탁소북(유영경)
⇒영수격인 두 사람의 틈이 벌어져서 갈림
4. 인조반정(계해정변)과 이괄의 난
이귀, 김자점, 김류, 최명길, 이괄등의 서인들이 주도하고 남인 이원익(영의정)을 끌어들여 광해군을 폐하고 이후 서인세력은 남인 세력을 끌어들여 연립정권을 구축한다.
(1) 공서: 송익필계열 (이귀, 김류) : 권모술수의 권력지향형-정치참여, 반정에 가담, 후에 노서 로 개편, 원당과 낙당으로 나뉘어짐
청서: 정통이이계열 (김장생, 김상헌) : 순수 유학-정치참여거부, 반정에 가담 안함, 후에 소 서로 개편
(2) 노서: 김상헌을 필두로 남인을 정치에 참여시킬 것을 주장
소서: 최명길을 필두로 서인만의 정치 주장
5. 인조, 효종 , 현종까지의 문묘종사 논쟁
인조가 집권했을 시기 서인이 이이와 성흔의 문묘종사 운동을 실시한다. 하지만 남인의 반대와 인조의 견제로 효종, 현종까지 계속된다.
@한당과 산당: 대동법의 실시 여부에 따른 분당
(1) 한당(서울): 김육을 필두로 대동법 실시 주장
(2) 산당(충청지역-산림적 기반): 김집을 필두로 대동법 반대
6. 제 1, 2차 예송논쟁
조선 현종·숙종대에 효종과 효종비에 대한 자의대비(인조의 계비)의 복상기간을 둘러싸고 2차에 걸쳐 일어난 남인·서인간의 논쟁
7. 송시열의 처벌 문제로 인한 남인의 분당
(1) 청남: 허목과 윤휴를 중심의 강경파로 송시열을 죽여야한다고 주장
(2) 탁남: 허적을 중심으로 송시열을 죽이면 안된다고 주장
⇒송시열은 온건 처벌론 덕에 유배형으로 낙착됨
9. 허적의 기름 유용 사건과 경신환국
허적의 기름 유용사건으로 경신환국이 일어나고, 이 일(경신환국)을 계기로 서인이 정권을 잡게 된다.
10. 서인의 노론과 소론으로의 분당
윤증이 제시했던 3가지(남인과 서인의 화해, 척신 정치 구조의 타파, 당색을 배제한 고른 등용) 에 대한 찬반여부로 분열.
(1) 노론: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강건 보수파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음
(2) 소론: 윤증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
12. 기사환국과 남인의 집권
숙종의 세자책봉 문제로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집권을 잡는다.
13. 갑술환국과 서인의 집권
서인 김춘택의 폐비민비의 복위운동을 발단으로 남인과 서인의 집권이 뒤바뀌게 된다.
⇒특히 노론은 숙종과 독대를 할 정도로 가까워짐.
14. 신임사화과 소론의 정권장악
숙종 이후의 경종 때 노론의 대리청정 주장에 대한 소론의 탄핵 성공으로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 등 노론 4대신을 비롯한 노론의 대다수 인물이 화를 입었다.
15. 남인의 왕 영조에서 정미환국까지
영조는 노론의 지지를 받았던 인물로 경종의 죽음 이후, 영조는 소론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결국 1725년 을사환국의 단행으로 노론이 정권을 잡았으며, 이후 원흉오적과 소하오적의 처형을 주장하였으나 영조는 이에 반대하며 다시 소론으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이후 이인좌의 난으로 다시금 소론의 입지는 좁아진다.
@노론이 경종의 죽음에 관련했다는 데에 대한 소론의 노론에 대한 처벌
(1)완소-주모자만 처벌
(2)준소-강경파
16. 사도세자(영조의 아들)의 죽음에 대한 노론의 분열
(1) 시파-사도세자의 죽음을 동정하는 세력: 정조(사도세자의 아들)를 지지
(2) 벽파-사도세자의 죽음을 당연시하는 세력: 정조를 반대
17. 신서파와 공서파
(1) 신서파: 조선 정조·순조 때 서양의 과학사상과 천주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던 남 인 계열의 학자들
(2) 공서파: 정조가 즉위하여 노론을 견제할 목적으로 남인 시파를 비호·육성하자, 이들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노론 벽파에 가담했던 남인 벽파의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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