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하며, 상호 보완적인 결혼 생활이 준비부터 어긋남을 이야기한다. 남성의 재력에 대한 보답으로 혼수와 예단은 그 규모가 점점 커지고, 이에 대한 부담이 늘어날수록 집안의 원조를 바라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결혼하기 전에는 부모에게,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됨으로써 여성의 자립도는 점점 낮아지거나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만 길러지게 된다.
“집도, 혼수도 같이 했으면 좋겠는데.. 안 그러면, 꼭 팔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조원 A
결혼이 하나의 상업문화로 자리매김하면서 혼수 풍토는 여전히 불건전한 상태로 지속되고 있다. 중매결혼일 경우 더 심해지긴 하지만 연애결혼일 경우에도 만만치 않은데, 소박하게 결혼하고자 하는 당사자들일지라도 막상 결혼 준비에 들어가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부모나 가족의 간섭은 결혼이 아닌 연애에서부터 시작되며, 본격적으로 결혼 얘기가 나오게 되면 부모와 친지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딸 가진 죄’라는 말이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전통사회처럼 여자는 시집을 가는 위치에 있고, 그로서 출가외인이 되며, 집안의 대를 잇고 일을 해야 하는 ‘며느리’가 되기 때문이다. 소위 시댁은 아들 가진 자로서 무엇보다 당당한 자리에 놓이게 되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 결혼 협상의 룰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결혼이라는 것은 한 가족의 구성원이 아니라 며느리로서 지위가 바뀌는 것을 의미하며, 그에 합당한 일들(출산, 대 잇기, 자녀 양육, 시댁 봉사, 헌신적인 아내, 살림 등)을 모두 잘 해내야 함을 말한다. 남성보다 여성이 결혼을 더 기피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구시대적인 가부장적 사고와 유교적 전통의 잔재가 뿌리 깊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못된 시댁 만나서 시집살이 독하게 할 거 상상만 해도 결혼하기 싫던데요.” -조원 A
“시어머니랑 시누이는 자기도 여자고 같은 며느리면서 막상 며느리 들인다 그러면 이상하게 변하잖아요. 딸 같은 며느리는 다 거짓말이에요.” -조원 B
여성이 연애를 거쳐 결혼을 함에 있어 또 하나의 걸림돌처럼 존재하는 것은 성에 관한 것이다. 서구처럼 성 개방이 사람들의 새로운 목표가 되면서 한국에서도 남성들의 뒤를 이어 여성들의 성을 자유롭게 하자는 담론들이 나왔다. 실제로 남녀의 성 인식은 달라졌으며 그것은 명백히 행동으로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정조와, 순결은 아직도 많은 가치를 내포하고 있으며 순결과 문란 사이에서 한국의 여성들은 갈등과 괴로움을 겪고 있다. 연애할 때는 자유로운 성 생활을 외치다가도 결혼할 때가 되면 순결한 여성을 찾는(혹은 기대하는)남성들의 이기적인 태도와 사고방식은 여성들이 감당해야 할 짐들이 더 늘어남을 보여준다. 자립적이지 않은 생활 속에서 나타난 성 개방에 대한 주장은 남성들에겐 일시적 쾌락을 증가시켰을지 모르나 여성에게는 순결의 굴레와, 낙태의 위험이라는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렇듯 근대가 불러 온 낭만적인 사랑과 연애, 자본주의, 전통적 사고방식의 충돌은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내는 디딤돌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여전히 혼란함 속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여성들의 결혼 연령, 결혼에 대한 인식, 조건들이 변화 하였지만, 결혼에서 진행되는 나이와 외모의 상품화, 성 경험 정도, 혼수와 예단에 관한 기본적인 틀은 이러한 것들에 전면적으로 대응한 소수의 사람들만을 진정으로 해방시켰을 뿐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연애와 결혼에 있어 독립성을 확보하고, 자신이 원하는 사랑의 형태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지금 세대부터라도 전 세대의 악습을 끊고 새로운 시대를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연애와 결혼의 이중성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더 많은 차별과 유용하지 않은 관계를 만들어내고, 조건으로만 결합되는 기계적인 사회를 청산하지 못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며 “1+1=2+α가 되기 위한 연애를 위해...”
우리가 위에서 논했던 연애에 대한 주제들과 수많은 사례, 생각들은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을 만큼 우리 삶에 맞닿아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학습되고 주입된 성과 사랑, 연애에 대한 고정관념은 과거, 현재 뿐 만 아니라 미래에도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치며, 개인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권력의 상자 안에 가둔다. 개인적으로 치부되는 연애라는 사생활은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도 어느 한 접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여성의 상품화, 순결주의, 성 역할에 대한 편견, 개방된 성 속에 감추어진 폭력, 생산적이지 못한 관계 등은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지배 구조 속에 뿌리 깊게 내재된 억압 수단이다.
그렇다면, 연애 관계를 둘러 싼 차별의 폐해와 올바르지 못한 관계 맺기를 멈추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여성학을 배우고 접한 것만으로 자신의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심층 밑에 드리워진 편견의 굴레를 성찰해야 하고, 주관적 시선으로 타인을 판단하지 말아야 하며, 그로 말미암아 눈앞에 펼쳐진 성 이데올로기와 지배 관계를 다시 고려하고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 여성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런 변화를 통해서 개개인의 삶이 억압과 차별, 금기 속에 파묻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이렇듯, 우리가 사생활이라 치부하는 것을 사회라는 넓은 틀 안에서 사고하고 인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정하기 싫고 파헤치기 두려운 마음을 겨우 비집고 들어가 상처를 내는 일이 될 수도 있고, 겉으로 보기에는 온전했던 삶을 뒤집어 버리는 고행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력 없는 기쁨과 대가 없는 행복은 존재하지 않듯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방편은 작은 시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몇 십 년 전부터 여성과, 여성주의에 대한 담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비교적 제자리걸음인 현실은,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될 방향이 무엇이며, 나아가야 할 길이 아직 멀었음을 뚜렷하게 시사하고 있다.
“집도, 혼수도 같이 했으면 좋겠는데.. 안 그러면, 꼭 팔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조원 A
결혼이 하나의 상업문화로 자리매김하면서 혼수 풍토는 여전히 불건전한 상태로 지속되고 있다. 중매결혼일 경우 더 심해지긴 하지만 연애결혼일 경우에도 만만치 않은데, 소박하게 결혼하고자 하는 당사자들일지라도 막상 결혼 준비에 들어가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부모나 가족의 간섭은 결혼이 아닌 연애에서부터 시작되며, 본격적으로 결혼 얘기가 나오게 되면 부모와 친지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딸 가진 죄’라는 말이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전통사회처럼 여자는 시집을 가는 위치에 있고, 그로서 출가외인이 되며, 집안의 대를 잇고 일을 해야 하는 ‘며느리’가 되기 때문이다. 소위 시댁은 아들 가진 자로서 무엇보다 당당한 자리에 놓이게 되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 결혼 협상의 룰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결혼이라는 것은 한 가족의 구성원이 아니라 며느리로서 지위가 바뀌는 것을 의미하며, 그에 합당한 일들(출산, 대 잇기, 자녀 양육, 시댁 봉사, 헌신적인 아내, 살림 등)을 모두 잘 해내야 함을 말한다. 남성보다 여성이 결혼을 더 기피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구시대적인 가부장적 사고와 유교적 전통의 잔재가 뿌리 깊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못된 시댁 만나서 시집살이 독하게 할 거 상상만 해도 결혼하기 싫던데요.” -조원 A
“시어머니랑 시누이는 자기도 여자고 같은 며느리면서 막상 며느리 들인다 그러면 이상하게 변하잖아요. 딸 같은 며느리는 다 거짓말이에요.” -조원 B
여성이 연애를 거쳐 결혼을 함에 있어 또 하나의 걸림돌처럼 존재하는 것은 성에 관한 것이다. 서구처럼 성 개방이 사람들의 새로운 목표가 되면서 한국에서도 남성들의 뒤를 이어 여성들의 성을 자유롭게 하자는 담론들이 나왔다. 실제로 남녀의 성 인식은 달라졌으며 그것은 명백히 행동으로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정조와, 순결은 아직도 많은 가치를 내포하고 있으며 순결과 문란 사이에서 한국의 여성들은 갈등과 괴로움을 겪고 있다. 연애할 때는 자유로운 성 생활을 외치다가도 결혼할 때가 되면 순결한 여성을 찾는(혹은 기대하는)남성들의 이기적인 태도와 사고방식은 여성들이 감당해야 할 짐들이 더 늘어남을 보여준다. 자립적이지 않은 생활 속에서 나타난 성 개방에 대한 주장은 남성들에겐 일시적 쾌락을 증가시켰을지 모르나 여성에게는 순결의 굴레와, 낙태의 위험이라는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렇듯 근대가 불러 온 낭만적인 사랑과 연애, 자본주의, 전통적 사고방식의 충돌은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내는 디딤돌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여전히 혼란함 속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여성들의 결혼 연령, 결혼에 대한 인식, 조건들이 변화 하였지만, 결혼에서 진행되는 나이와 외모의 상품화, 성 경험 정도, 혼수와 예단에 관한 기본적인 틀은 이러한 것들에 전면적으로 대응한 소수의 사람들만을 진정으로 해방시켰을 뿐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연애와 결혼에 있어 독립성을 확보하고, 자신이 원하는 사랑의 형태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지금 세대부터라도 전 세대의 악습을 끊고 새로운 시대를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연애와 결혼의 이중성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더 많은 차별과 유용하지 않은 관계를 만들어내고, 조건으로만 결합되는 기계적인 사회를 청산하지 못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며 “1+1=2+α가 되기 위한 연애를 위해...”
우리가 위에서 논했던 연애에 대한 주제들과 수많은 사례, 생각들은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을 만큼 우리 삶에 맞닿아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학습되고 주입된 성과 사랑, 연애에 대한 고정관념은 과거, 현재 뿐 만 아니라 미래에도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치며, 개인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권력의 상자 안에 가둔다. 개인적으로 치부되는 연애라는 사생활은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도 어느 한 접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여성의 상품화, 순결주의, 성 역할에 대한 편견, 개방된 성 속에 감추어진 폭력, 생산적이지 못한 관계 등은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지배 구조 속에 뿌리 깊게 내재된 억압 수단이다.
그렇다면, 연애 관계를 둘러 싼 차별의 폐해와 올바르지 못한 관계 맺기를 멈추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여성학을 배우고 접한 것만으로 자신의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심층 밑에 드리워진 편견의 굴레를 성찰해야 하고, 주관적 시선으로 타인을 판단하지 말아야 하며, 그로 말미암아 눈앞에 펼쳐진 성 이데올로기와 지배 관계를 다시 고려하고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 여성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런 변화를 통해서 개개인의 삶이 억압과 차별, 금기 속에 파묻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이렇듯, 우리가 사생활이라 치부하는 것을 사회라는 넓은 틀 안에서 사고하고 인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정하기 싫고 파헤치기 두려운 마음을 겨우 비집고 들어가 상처를 내는 일이 될 수도 있고, 겉으로 보기에는 온전했던 삶을 뒤집어 버리는 고행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력 없는 기쁨과 대가 없는 행복은 존재하지 않듯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방편은 작은 시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몇 십 년 전부터 여성과, 여성주의에 대한 담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비교적 제자리걸음인 현실은,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될 방향이 무엇이며, 나아가야 할 길이 아직 멀었음을 뚜렷하게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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