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건 축 조 형 분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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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불국사 건 축 조 형 분 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간구성
극락전 일곽은 서쪽의 석단 위에 남향하여 자리하고 있는데, 이 구역에는 안양문과 극락전 그리고 남, 서, 북 회랑이 있는 비교적 단순한 공간 배치를 나타내고 있다. 1973년 중창 불사 이전에는 안양문과 극락전만이 있었는데 중창 때 회랑이 복구되었고 안양문은 그 이전 1960년대 초에 복원되었다.
극락전의 남회랑 동단 주열에서부터 서단 주열 사이의 거리는 125.12곡척, 남회랑 남단 주열에서부터 북회랑 북단 주열 사이는 140곡척 이다. 안양문 동서 중심선에서 극락전 동서 중심선 사이의 거리는 69.6곡척, 극락전 동서 중심선에서 북회랑 동서 중심선까지는 60.2곡척으로 되어있다.
3-2. 현존 극락전의 건축양식
극락전은 평면 규모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3.5곡척의 기단 위에 총높이 30.33곡척 크기의 건물로 정면이 측면보다 8곡척 정도 긴 정방형에 가까운 건물이다.
내부에는 고주를 2개 두었고, 고주머리에 퇴량을 얹었으며 대량 없이 고주 위에 초화각 판재를 얹어 종도리를 그 위에 놓는 특이한 수법을 사용하였다. 구조적으로 대량 없는 내부 구조를 보강하기 위해 종량 바로 위에서 빗장목을 상하 방향으로 끼워 넣고 초화각 판재와 종량이 일체가 되도록 하였다.
공포는 다포식으로 내외 모두 2출목을 낸 5포작으로 살미 첨차에는 초화무늬와 봉황머리를 조각하였다.
건물 내부의 불단은 중수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현재 아미타여래 금동불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그 크기는 높이 1.8m, 양 무릎의 너비는 1.25m이다.
극락전의 기단과 초석도 대웅전의 것과 같은 형식이다. 계단은 전,후면에만 있다.
3-3. 극락전의 평면 분석
극락전 건물은 평면 규모가 정면 3간, 측면 3간으로 현존하는 극락전은 내부 기둥열에는 감주법이나 이주법이 사용되지 않았다. 이는 전면 고주를 생략하여 넓은 예불공간을 확보하려는 조선 후기적 경향에 따르지 않고, 원래의 주초 배열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극락전 평면의 기둥 배열은 일반적 전통 목조건물과는 판이한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목조건물에서 가장 긴 주간 길이는 측면 중앙의 주간으로 이곳에는 가장 큰 부재인 들보가 걸리게 된다. 그러나 극락전 평면에서는 정면 어간의 길이가 측면 중앙 주간의 길이보다 훨씬 크게 되어 있어 매우 특이하다.
정면 3칸의 길이는 8.87곡척-17.74곡척-8.9곡척으로 대웅전과 마찬가지로 정면 어간이 변간보다 2배의 크기를 갖는다. 측면 3칸의 길이는 8.81곡척-9.76곡척-8.81곡척으로 거의 동일하다. 현재 평면에서의 특이한 점은 뒷면의 도리칸 주칸은 어칸 중앙에 기둥을 세운 점이며, 정면에서도 중앙칸에 2개의 샛기둥을 사용하였다.
전후면 변간 평균 8.87 곡척 ( 268.73cm)
전후면 어간 평균 17.74 곡척 ( 537.46cm)
동서면 변간 평균 8.81 곡척 ( 266.93cm)
동서면 어간 평균 9.76 곡척 ( 295.79cm)
전 기단돌출거리 5.48곡척 ( 165.93cm)
후 기단돌출거리 6.19 곡척 ( 187.57cm)
동 기단돌출거리 5.95 곡척 ( 180.35cm)
서 기단돌출거리 5.95 곡척 ( 180.35cm)
Ⅳ 맺음말
불국사는 정치적 삼국통일이 문화적 통일로 완성된 한국건축의 원류다. 신라가 백제를 병합하고 고구려를 멸망케 한 것이 정치적 삼국통일이라면 백제와 고구려의 미학을 신라가 받아들인 것이 문화적 삼국통일이다.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짓고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짓기 시작하였으나 석굴암은 만들었고 불국사는 완성하지 못하자 국가가 나서 2000여 칸에 이르는 80여 동의 대 건축군을 30여 년 동안 완성하였다. 절이 별처럼 가득하고 탑이 기러기 떼 같이 이어지던 서라벌 최대의 절인 불국사는 왕궁까지 비를 맞지 않고 갈 수 있던 도시형 가람이었다.
1000년 후 2000여 칸의 불국사 대가람을 일본인이 불태우고 이후에도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문화재 파괴가 일본인에 의해 계속 되었다. 17세기 초 불국사 중건이 시작된 후 40여 차례에 걸쳐 중수가 이루어졌으나 창건 당시의 원형을 복구하지 못하였다. 오늘의 모습은 박정희 대통령이 학자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복원한 것이나 박정희 정권에 의해 이뤄진 불국사 대복원 공사는 불국사의 원형을 일그러뜨렸다고 두고두고 비판받고 있다. 불국사가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복원공사를 통해 조선시대의 건축양식이 많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한 시대의 사회상을 총체적으로 함축시켜 표출된 속성을 지니고 있는 건축은 나타난 형상에 따른 조형 자체로서의 해석보다 건립의 시대적인 배경과 사상적인 배경을 기저에 놓고 심미적인 안목에서 형태적인 조형의 특질을 파악함으로서 본질적인 조형의식 및 체계형성의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앞으로 불국사의 건축조형에 대하여 보다 체계적이며,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심층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겠다. 불국사는 사적·명승 제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불국사내 주요 문화재로는 다보탑(국보 제20호), 석가탑(국보 제21호),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제23호), 연화교와 칠보교(국보 제22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비로자나불(국보 제26호)등이 있으며, 불국사는 1995년 12월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되었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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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불국사, 대원사』, 1997
하일식,『경주역사기행 - 역사를 알면 유물이 보인다』, 그린글, 1999
곽철환,『불교길라잡이』, 시공사, 1995
김현준,『사찰, 그속에 깃든 의미』, 교보문고, 1991
이강근,『경복궁에 관한 건축사적 연구』,한국정신문화연구원 부속대학원, 1983.
이강근,『경복궁, 대원사』, 1998.
이강근,『한국의 궁궐, 대원사』, 1993.
정기호,『1993 동국대학교『불국사의 배치 및 세부형식』
경주시,『불국사의 종합적 고찰』, 1997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토함산 불국사의 재조명』, 1990
동국대학교 사찰조경연구소,『사찰조경 연구 제8집』, 2000
  • 가격3,300
  • 페이지수15페이지
  • 등록일2013.12.29
  • 저작시기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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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0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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