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중앙군영의 정비와 정예화
2) 지방군영의 정비
3) 무기개발을 위한 노력
2) 지방군영의 정비
3) 무기개발을 위한 노력
본문내용
술이나 야금, 주조의 기술에 뚜렷한 발전이 없는 상황에서, 외형만 양무서적에 의존하여 제작하거나 획득품을 단순히 모방하는 형식에 그쳤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원군은 비록 획기적인 방책은 없었지만 새로운 군사기술을 습득해야 한다는 인식은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것은 바로 진무영의 무기 개발을 위해 대원군이 직접 양무서적들을 내려 준 것에서 알 수 있다. 그 서적들은 영환지략(瀛環志略), 해국지도, 칙극록(則克錄) 등이다. 이 양무서적 중 주목해야 할 서적이 바로 칙극록이다. 칙극록은 서양 선교사인 아담 샬(J. Adam Schall Von Bell)이 구수(口授)한 것을 1643년 초욱(焦)이 저술한 것이다. 비록 원본이 아닌 증보칙극록(增補則克錄)이었지만 당시 중국 화포 기술상 최고 수준의 전문가에 의해 증보되었을 이 서적을 대원군이 내려 주었다는 것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이런 사실에 대해 연갑수는 첫째, 대원군이 서양 군사 기술에 대한 관심이 더욱 심화 혹은 구체화되고 있었고, 둘째, 대원군이 직접 서적을 구입하고 배포한 것에서 대원군의 거처였던 운현궁이 삼군부보다 선진적인 지식이 앞서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신무기 개발에서도 확인되었듯이 적절한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단지 서적이나 획득품에 의존하는 지식의 습득은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한계는 대원군이 무기의 성능보다는 병사의 수에 의존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조선은 국가방위에 충분한 병사를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머지않아 제국주의국가들의 전쟁터로 영토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대원군은 비록 획기적인 방책은 없었지만 새로운 군사기술을 습득해야 한다는 인식은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것은 바로 진무영의 무기 개발을 위해 대원군이 직접 양무서적들을 내려 준 것에서 알 수 있다. 그 서적들은 영환지략(瀛環志略), 해국지도, 칙극록(則克錄) 등이다. 이 양무서적 중 주목해야 할 서적이 바로 칙극록이다. 칙극록은 서양 선교사인 아담 샬(J. Adam Schall Von Bell)이 구수(口授)한 것을 1643년 초욱(焦)이 저술한 것이다. 비록 원본이 아닌 증보칙극록(增補則克錄)이었지만 당시 중국 화포 기술상 최고 수준의 전문가에 의해 증보되었을 이 서적을 대원군이 내려 주었다는 것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이런 사실에 대해 연갑수는 첫째, 대원군이 서양 군사 기술에 대한 관심이 더욱 심화 혹은 구체화되고 있었고, 둘째, 대원군이 직접 서적을 구입하고 배포한 것에서 대원군의 거처였던 운현궁이 삼군부보다 선진적인 지식이 앞서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신무기 개발에서도 확인되었듯이 적절한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단지 서적이나 획득품에 의존하는 지식의 습득은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한계는 대원군이 무기의 성능보다는 병사의 수에 의존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조선은 국가방위에 충분한 병사를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머지않아 제국주의국가들의 전쟁터로 영토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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