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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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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개선될 수 있다. 이렇게 여성의 가정 내외의 사회적 지위가 남성과 대등해짐에 따라서 불균등 교환으로서 예단과 혼수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4) 상업주의와 의례의 상품화
혼인 의례 전반에 걸쳐 각각의 절차와 관행은 시장과 연결되어 있으며 상업주의적 이익 극대화 동기에 의하여 좌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부 화장과 드레스 대여, 사진관과 예식장, 신혼여행 등 모든 것들은 서로 연계되어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를 반강제적으로 묶어 놓는 상행위의 일부로 정착해 있으며, 새로운 품목과 절차들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다. 의상 패션과 유사하게 혼례 패션도 조금씩 변화를 주어 유행을 만들어 내면서 ‘요즘은 이렇게 한다’ 든가 ‘누구누구가 이렇게 했다’ 등으로 소비자를 교육시키고 부담을 준다.
혼인 의례에 영향을 미치는 또 하나의 상업주의는 부부의 사랑과 낭만이라는 이미지를 상품화하는 경향이다. 야외 촬영이나 신혼여행 등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나듯이 신혼 남녀간의 사랑을 가식적이리 만치 과도하게 상품화시킴으로서 소비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상품화는 단순히 혼인 관련 산업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작업은 아니며, 여성지, 매스컴, 영상 미디어 등에 의하여 사랑의 이미지를 가식적으로 상품화하면 이를 일반인들이 모방하는 방식으로 추종하고 이러한 모방을 혼인 산업 종사자들이 부추기고 확산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혼인 의례에서 부부간의 사랑과 낭만이라는 실질적 내용은 탈색되어지거나 혹은 실제 이상으로 이상화되어지면서 상품으로서만 존재하는 이미지, 즉 실질과 그것을 반영하는 형식간의 괴리 상태가 커지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상품화의 문제는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확대되고 자본주의적 상품화 경향이 지속되는 한 개인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압력으로 다가온다. 빚을 내서라도, 결혼후 큰 부담이 되더라도 또 본인이 실속없는 비싼 상품의 구입을 하고 싶지 않더라고 이러한 압력에 굴복하여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보통 사람의 행태이다. 여기에 바로 혼례의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고 집단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4) 聖의 요소의 탈색과 편의주의의 확대
혼례란 하나의 ‘의례’로서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계기를 맞이하여 이러한 사건에 대하여 뜻 깊은 ‘상징성’을 부여하는 행위이다. 인류학에서는 인간이 일생에서 맞이하는 몇 번의 ‘통과 의례’중의 하나로서 혼례를 파악한다. 이러한 통과의례를 통하여 시간적인 흐름 속에서 삶의 의미가 부과되며, 상징적인 의미에서 사건이 발생되기 전과 후는 다른 사람과 사회적 관계로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혼례란 뜻 깊은 삶의 사건을 혼례의 당사자만이 아니라 관계된 주위 사람들 모두 함께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의례의 상징성은 요즈음의 혼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단순히 혼례에 해당되는 문제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삶의 거의 대부분이 聖적인 요소가 탈색되고 지극히 세속적인, 도구적인, 수단적인 행위로 구성되어 가는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어떤 행위가 단순히 다른 어떤 것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미만을 가질 때, 당연히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러한 수단적인 과정을 간단히 고통 없이 ‘해치울’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혼례란 부부가 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만 존재하지 그것 자체에서 어떠한 의미나 상징성을 찾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의례 그 자체는 가능한 한 쉽게 해치우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요즈음 결혼식장에서 치르는 혼례에서 ‘뜻 깊은’ 삶의 사건을 경험하기란 어렵다.
부조금을 모아야 한다는 실용적 목적에서 혼례를 치르고, 부부의 사랑과 낭만이 이미지화된 상품을 소비하기 위하여 야외 촬영을 하고, 화려하게 혼례를 치르고, 멋진 신혼여행을 가는 것이다. 즉 혼례 행위는 하나의 소비 행위이며 편하게 비용 효율적으로 치러야 할 과정으로서만 존재한다. 예식장에 가는 것도 나에게 중요한 사람 혹은 가족의 중요한 통과의례에 함께 참가한다는 의미보다는, 부조금 받은 것에 대한 교환 행위로서 혹은 사회경제 활동에서 이익을 보거나 최소한 불이익을 입지 않기 위한 실용적 목적에서 가게 된다. 따라서 이들에게서 의례의 경건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들에게 혼례란 당연히 부조금을 내고 점심을 먹거나 답례품을 타는 것 및 혼주에게 내가 왔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이들에게도 혼례에 참가하는 것은 가능한 효율적으로 짧은 시간에 마쳐야 할 편리성을 추구하는 하나의 행위로서만 존재한다.
4) 상업주의와 의례의 상품화
혼인 의례 전반에 걸쳐 각각의 절차와 관행은 시장과 연결되어 있으며 상업주의적 이익 극대화 동기에 의하여 좌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부 화장과 드레스 대여, 사진관과 예식장, 신혼여행 등 모든 것들은 서로 연계되어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를 반강제적으로 묶어 놓는 상행위의 일부로 정착해 있으며, 새로운 품목과 절차들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다. 의상 패션과 유사하게 혼례 패션도 조금씩 변화를 주어 유행을 만들어 내면서 ‘요즘은 이렇게 한다’ 든가 ‘누구누구가 이렇게 했다’ 등으로 소비자를 교육시키고 부담을 준다.
혼인 의례에 영향을 미치는 또 하나의 상업주의는 부부의 사랑과 낭만이라는 이미지를 상품화하는 경향이다. 야외 촬영이나 신혼여행 등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나듯이 신혼 남녀간의 사랑을 가식적이리 만치 과도하게 상품화시킴으로서 소비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상품화는 단순히 혼인 관련 산업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작업은 아니며, 여성지, 매스컴, 영상 미디어 등에 의하여 사랑의 이미지를 가식적으로 상품화하면 이를 일반인들이 모방하는 방식으로 추종하고 이러한 모방을 혼인 산업 종사자들이 부추기고 확산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혼인 의례에서 부부간의 사랑과 낭만이라는 실질적 내용은 탈색되어지거나 혹은 실제 이상으로 이상화되어지면서 상품으로서만 존재하는 이미지, 즉 실질과 그것을 반영하는 형식간의 괴리 상태가 커지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상품화의 문제는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확대되고 자본주의적 상품화 경향이 지속되는 한 개인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압력으로 다가온다. 빚을 내서라도, 결혼후 큰 부담이 되더라도 또 본인이 실속없는 비싼 상품의 구입을 하고 싶지 않더라고 이러한 압력에 굴복하여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보통 사람의 행태이다. 여기에 바로 혼례의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고 집단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4) 聖의 요소의 탈색과 편의주의의 확대
혼례란 하나의 ‘의례’로서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계기를 맞이하여 이러한 사건에 대하여 뜻 깊은 ‘상징성’을 부여하는 행위이다. 인류학에서는 인간이 일생에서 맞이하는 몇 번의 ‘통과 의례’중의 하나로서 혼례를 파악한다. 이러한 통과의례를 통하여 시간적인 흐름 속에서 삶의 의미가 부과되며, 상징적인 의미에서 사건이 발생되기 전과 후는 다른 사람과 사회적 관계로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혼례란 뜻 깊은 삶의 사건을 혼례의 당사자만이 아니라 관계된 주위 사람들 모두 함께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의례의 상징성은 요즈음의 혼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단순히 혼례에 해당되는 문제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삶의 거의 대부분이 聖적인 요소가 탈색되고 지극히 세속적인, 도구적인, 수단적인 행위로 구성되어 가는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어떤 행위가 단순히 다른 어떤 것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미만을 가질 때, 당연히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러한 수단적인 과정을 간단히 고통 없이 ‘해치울’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혼례란 부부가 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만 존재하지 그것 자체에서 어떠한 의미나 상징성을 찾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의례 그 자체는 가능한 한 쉽게 해치우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요즈음 결혼식장에서 치르는 혼례에서 ‘뜻 깊은’ 삶의 사건을 경험하기란 어렵다.
부조금을 모아야 한다는 실용적 목적에서 혼례를 치르고, 부부의 사랑과 낭만이 이미지화된 상품을 소비하기 위하여 야외 촬영을 하고, 화려하게 혼례를 치르고, 멋진 신혼여행을 가는 것이다. 즉 혼례 행위는 하나의 소비 행위이며 편하게 비용 효율적으로 치러야 할 과정으로서만 존재한다. 예식장에 가는 것도 나에게 중요한 사람 혹은 가족의 중요한 통과의례에 함께 참가한다는 의미보다는, 부조금 받은 것에 대한 교환 행위로서 혹은 사회경제 활동에서 이익을 보거나 최소한 불이익을 입지 않기 위한 실용적 목적에서 가게 된다. 따라서 이들에게서 의례의 경건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들에게 혼례란 당연히 부조금을 내고 점심을 먹거나 답례품을 타는 것 및 혼주에게 내가 왔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이들에게도 혼례에 참가하는 것은 가능한 효율적으로 짧은 시간에 마쳐야 할 편리성을 추구하는 하나의 행위로서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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