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학] 영혼 사랑 - 사랑의 위대성, 용서하는 사랑, 연합을 통해 세워주는 사랑(타인의 삶에 참여,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참여, 타인을 영적 성숙에로 세우줌)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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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목회학] 영혼 사랑 - 사랑의 위대성, 용서하는 사랑, 연합을 통해 세워주는 사랑(타인의 삶에 참여,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참여, 타인을 영적 성숙에로 세우줌) (기독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사랑의 위대성

2. 용서하는 사랑

3. 연합을 통해 세워주는 사랑
 1) 타인의 삶에 참여
 2)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참여  
 3) 타인을 영적 성숙에로 세워줌

4. 나가면서

본문내용

있다. 하나님은 왜곡되고 완악하며 목이 곧은 자들의 삶에 지칠 줄 모르는 열성으로 개입하신다. 왜곡, 완악, 목이 곧음 등과 같은 성벽으로 우리 자신을 두르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지속적으로 그 강력한 진들을 꿰뚫어 버리면서 부드럽고 온유하고 순종적인 마음으로 변화시킨다.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시키며 영광의 영광에 이르도록 이 사랑은 우리를 감싸 안아 거룩함으로 인도한다. 아가페 사랑은 이웃의 영적 성숙 또는 유익을 위해 그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이다. 사랑은 이웃이 우리의 삶 안에 들어오도록 개방하고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조개가 자신의 아늑한 방에 거친 모래가 들어오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사랑은 그 거친 모래와 함께 껍질 속에서 아름다운 진주로 만들어 가듯이, 이웃과의 함께 하는 가운데 영적인 성숙을 이루게 한다. 그러므로 사랑은 진리에로의 혹독한 여정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진리와 상관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예수님의 우리를 위한 사랑은 진리에로의 하나 됨을 위한 사랑이며, 하나님과의 하나 됨에로 이끌기 위한 사랑이다. 우리가 진리와 상관없이 그저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버릇없는 자로 만드는 방관이다. 진리와 사랑은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이단들의 주장들과 타종교를 존중하면서 사랑으로 연합해야 된다는 것은 분명 아가페 사랑은 아니다. 사랑은 철저히 진리이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위한 사랑의 고투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이웃을 향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이웃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것을 굳게 다져주는 것이다. 즉 시간을 들여서, 상대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가장 그 사람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알아보고, 인정과 격려를 통해 그것을 굳게 다져 주는 일이다.” 내면의 진실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약점을 잡거나 흠집을 내려 하지 않으며, 속마음을 알아주며 신념에 따르는 삶의 어려움을 이해해주고, 내면 깊은 곳을 굳게 다져준다.
부모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아이들이 미래에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집에서도 배우고 가르쳐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러나 부부가 함께 사업을 하거나 직장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피곤하기에 아이들을 훈련시키기 보다는 방관으로 일관해 버릴 때가 있다. 문제가 나타나면 윽박지르고 소리를 지른다. 문제가 나타나는 것은 훈련을 시키지 못하고 방관해 버렸기 때문이다. 사랑은 아이들이 아름다운 인격을 지닌 자들로 자랄 수 있도록 그 삶에 참여한다. 그리고 그들의 개성에 빛을 발하는 방향으로 세워준다. 내가 아는 집에는 초등학교 아들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경질적이다. 조금만 자신의 마음에 안 맞으면 신경질을 부린다. 이런 습관이 굳어져 어떤 잘못된 성격으로 형성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 문제를 갖고 문제를 삼으면서 엄마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면 유익이 없다. 엄마는 아이의 아름다운 인격형성을 위해 사랑의 고투에 참여한다. 인내 속에서 아이의 특성을 파악한다. 아침에는 신경질적이지만 밤 시간에는 그렇게도 마음이 좋아 보인다. 엄마는 아침에는 아들의 신경질 내는 것을 참는다. 그리고 그녀는 밤에 아이가 기분 좋을 때 아침에 있었던 신경질이 문제였음을 제기한다. 아들은 자신의 신경질이 잘못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엄마는 잘못에 대한 대가로 체벌을 주지만, 아이는 반항이 아닌 순응으로 체벌을 받는다. 점차로 아이의 아침 신경질은 사라진다. 그리스도의 한 인격을 반영하는 온순함으로 변화를 경험한다. 올바른 인격으로 주님과의 아름다운 관계에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사랑의 고투는 바로 주님의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온다.
4. 나가면서
십자가 형체의 사랑은 자기 유익을 결코 추구하지 않는다. 이기적, 계산적, 조건적, 이용하는 사랑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음에 넘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아가페 사랑과 함께 사랑의 삶에로 일어난다. 이 사랑은 다양성 안에서의 연합으로서 천차만별의 개성을 지닌 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띠의 역할을 한다. 이 사랑은 만물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에로 이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로서 우리는 휘황찬란하게 다채로운 빛깔들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통로자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우리는 가족, 교회, 그리고 사회에서 만나는 자들을 사랑의 동기로 섬기면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하나 됨을 이루어가야 한다. 각자의 개성에 빛을 발하는 방향으로 세워줌을 통해서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사랑해 가는 법을 배워가면서이다. 한 예로 교회 안에 우울증 환자가 있다.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며 그 삶에 참여하길 원한다. 그러나 우울증에 대해 아는 것은 없다. 어떻게 사랑으로 아름답게 참여해야 할지를 모른다. 무지 속에서의 기도와 자기 방식대로의 섬김 보다는 인터넷이나 상담 책을 통해서 우울증에 대한 증상을 살펴본다. 요즘은 전문적인 카페들이 많아서 우울증 모임이 있는 카페를 찾아들어가서 어떻게 섬기는 것이 아름다운 것인가를 살펴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그 사람의 우울증에 대한 내력을 본인이나 그분을 알고 있는 타인으로부터 들으면서 그리고 기도 가운데 아름다운 섬김을 위한 지혜를 구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운 사랑으로 구체적으로 섬기며 들어간다. 사랑은 관심이며, 시간을 아름답게 소비하는 것이며, 물질을 가치 있게 소비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사랑함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사랑해 가는 것이다. 한꺼번에 모두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두루뭉술하고 자기 방식대로의 사랑은 사랑이 아닌 상처일 수가 있다. 사랑의 삶에 관심을 갖다보면 다채로운 사랑의 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랑이 동기가 된 삶은 가장 가치 있는 삶이며 생명이 충만한 삶이다. 우리는 관계성의 존재로서 이웃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가 결정해야 할 일이 있다: “자신의 삶을 움직여 가는 수단으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힘인가, 아니면 사랑인가? 통제권을 쥐기 위해 조종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기 위해 관대하고 마음을 여는 사람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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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9.22
  • 저작시기2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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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38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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