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손잡고 걸어오고 있다. 다시 한 번“ 봉쥬루- ” 하고 입은 얼어 붙은 채 프랑스인 남편에게 또다시 종이만 들이민다. 이게 왠일인가. 그 아저씨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펜을 붙잡고 열심히 읽기 시작한다. “~@!@#$!@$!@#!@” 알아 들을 수가 없다. 단 한단어도. 하지만 너무나 적극적인 것은 알 수 있다. 틀린 부분도 직접 고쳐주기까지. 나는 괜스레 감동이 밀려온다. 부인도 남편이 도와준다는 것에 긍정하듯 아이와 옆에서 여유롭게 기다린다. 계속 프랑스 말로 중얼거리며 너무나 열심히 써준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많은 제스처를 취해가며 " OK, OK " 라고 대답한다. 다 읽은 프랑스 아저씨는 웃으며 다시 종이를 나에게 건네신다. 나는 너무나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 Thank you very very much! " 라고 말한다. 영어지만 말이다. 곧바로 대답이 날아온다.
“ You're welcom "
이것이야말로 전 세계 나라에서 쓰는 대화가 아니던가― 다시 한 번 감동을 느낀다.
오늘 포근한 날씨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으로 집을 향한다.
여섯 번째 방문기 (11.27)
종이 한 장으로 그들과 소통하다. _
항상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신기하게도 서래마을은 언제와도 새롭다. 같은 장소, 같은 거리임에도 이곳을 항상 새롭게 느끼는 힘. 어디서 흘러나오는 것일까. 이쯤 되고나니 어떻게든 프랑스인들과 소통하고 싶다. 서래마을에서 살면서 하는 생각들과 한국의 이미지에 대해서. 말은 통하지 않겠지만 언어 말고도 소통할 수 있는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설문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렵게 그것을 불어로 번역해줄 사람을 구해 불어 설문지를 만들었다. 찬바람이 유난히도 부는 날 종이 한 장만 믿고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한다.
시작은 파리크라상이다. 2층 안쪽에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와 60대가 넘은 노인이 함께 빵을 먹고 있었다. 조심스레 그들에게 설문지를 내민다. 파란 눈의 남자가 우리를 보며 했던 첫마디는 ‘ 이게 뭐예요. ’라는 한국말이다. 진심으로 안심한다. 며칠 전 인터뷰에서도 들었듯 영어를 못하는 프랑스인이 많기 때문에 여기서 막히면 그 다음이 어렵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거주자는 아니나, 서래마을에 자주 오는 스위스인 이다. 첫 시작이 좋다. 왠지 앞으로 술술 잘 풀릴 것만 같은 기분을 한 사람 했을 뿐인데 두려움은 온데간데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거침없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면서 보이는 외국인마다 온 몸이 반응한다. 날씨가 너무 추워 편의점에 따뜻한 음료수 하나를 들고 있더라도 저 멀리서 프랑스인이 보인다 싶으면 일단 내달린다.
철물점 앞에 몇 분간 서서 기다린 끝에 만난 프랑스인과는 설문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영어 가능자다.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지금 만큼 영어가 좋았던 적은 없다. “ 내 부인이 한국인이다. 그녀를 통해 한국을 알았고, 지금은 내가 직접 피부로 느끼며 한국을 알아가는 중에 있다. 그리고 그 부분에 있어 난 아주 흥미롭게 받아들이며, 보고 있다. 단 한 가지, 교통이 불편하다. 지하철이라도 있다면 더욱 살기 편할 것 같다. ”며 서툰 설문지에 서툰 영어임이 너무나 빤히 들어나는 상황에서도 그는 시종일관 웃으면서 말을 건네면서 설문에 응해준다. 그리고 서래마을에 지하철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말을 특히나 강조한다. 이다도시도 설문자 중에 포함되어 외견상으로는 어떠한 부러움을 탈지도 모르지만, 그녀를 통해 얻은 것이라곤 설문지뿐이다. 그 외의 어떠한 내용도 정보도 얻지 못해 아쉬웠으나, 그곳에 사는 현지인들이 오히려 친절하게 대답해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물론, 모든 프랑스인이 우리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긴 했지만, 대부분 정중히 거절한다. 그 중에는 바삐 걸어 가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 WE LOVE KOREAN TOO. "
우리는 중심 길가가 아닌 안쪽에서 막 장을 보고 돌아오시는 40대 초반의 프랑스인 아주머니를 만난다. 그 날의 프랑스인 중에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그녀는 수수한 옷차림의 라틴계였다. 그녀는 친절하게도 한 질문 한 질문에 답을 해주면서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까지 덧붙인다. “우리도 한국인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지만 너무나도 언어가 틀리고 문화가 틀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들이 많다. 한국어가 특히 너무 어렵다. 그래서 영어를 배울 수밖에 없다. 이곳 서래마을은 프랑스인 마을이라 불리고 있는지 몰라도 실제 프랑스와 너무나도 틀리다. 외국처럼 길마다 표시가 되어있지 않아 어떠한 상점이나 장소를 찾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영어로 표기가 잘 안되어 있을뿐더러 아예 없는 곳이 많아 불편하다. 그래서 우리에겐 프랑스 학교가 매우 중요하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그를 중심으로 여러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용해서 좋지만, 대형마트 등이 없어서 한남동이나 그런 곳으로 물품을 사러 가야한다는 불편함, 교통 또한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만 제외한다면 난 이곳이 너무 좋다. 살기도 편하고 앞으로도 장기간 한국에 머무를 계획이다.”는 말들을 해준다. 그녀는 헤어지면서 오히려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어주어 고맙다며, 축복의 말도 잊지 않는다.
설문을 하면서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그들이 저녁시간이 되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 바로 은행이다. 은행에서만 설문자의 반 정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녁때가 되니 은행으로 프랑스인들이 몰려들었다. 어떠한 일을 은행에서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로부터 꼼꼼함을 느껴진다. 작은 프랑스인 사회이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를 알고 있다. 인사를 건네며, 오늘 하루 일과를 얘기하며, 은행이 그들의 바쁜 삶 가운데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돌아오는 약간의 이점이 있다. 설문자의 친구이기에 말을 더 쉽게 건넬 수 있고 설문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벽 너머 어렵게 설문지를 주고 받아야할 것 같았던 시간들은 프랑스인들의 따뜻함과 말들로 끝이 난다.
" We Love Korean Too. "
“ You're welcom "
이것이야말로 전 세계 나라에서 쓰는 대화가 아니던가― 다시 한 번 감동을 느낀다.
오늘 포근한 날씨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으로 집을 향한다.
여섯 번째 방문기 (11.27)
종이 한 장으로 그들과 소통하다. _
항상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신기하게도 서래마을은 언제와도 새롭다. 같은 장소, 같은 거리임에도 이곳을 항상 새롭게 느끼는 힘. 어디서 흘러나오는 것일까. 이쯤 되고나니 어떻게든 프랑스인들과 소통하고 싶다. 서래마을에서 살면서 하는 생각들과 한국의 이미지에 대해서. 말은 통하지 않겠지만 언어 말고도 소통할 수 있는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설문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렵게 그것을 불어로 번역해줄 사람을 구해 불어 설문지를 만들었다. 찬바람이 유난히도 부는 날 종이 한 장만 믿고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한다.
시작은 파리크라상이다. 2층 안쪽에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와 60대가 넘은 노인이 함께 빵을 먹고 있었다. 조심스레 그들에게 설문지를 내민다. 파란 눈의 남자가 우리를 보며 했던 첫마디는 ‘ 이게 뭐예요. ’라는 한국말이다. 진심으로 안심한다. 며칠 전 인터뷰에서도 들었듯 영어를 못하는 프랑스인이 많기 때문에 여기서 막히면 그 다음이 어렵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거주자는 아니나, 서래마을에 자주 오는 스위스인 이다. 첫 시작이 좋다. 왠지 앞으로 술술 잘 풀릴 것만 같은 기분을 한 사람 했을 뿐인데 두려움은 온데간데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거침없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면서 보이는 외국인마다 온 몸이 반응한다. 날씨가 너무 추워 편의점에 따뜻한 음료수 하나를 들고 있더라도 저 멀리서 프랑스인이 보인다 싶으면 일단 내달린다.
철물점 앞에 몇 분간 서서 기다린 끝에 만난 프랑스인과는 설문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영어 가능자다.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지금 만큼 영어가 좋았던 적은 없다. “ 내 부인이 한국인이다. 그녀를 통해 한국을 알았고, 지금은 내가 직접 피부로 느끼며 한국을 알아가는 중에 있다. 그리고 그 부분에 있어 난 아주 흥미롭게 받아들이며, 보고 있다. 단 한 가지, 교통이 불편하다. 지하철이라도 있다면 더욱 살기 편할 것 같다. ”며 서툰 설문지에 서툰 영어임이 너무나 빤히 들어나는 상황에서도 그는 시종일관 웃으면서 말을 건네면서 설문에 응해준다. 그리고 서래마을에 지하철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말을 특히나 강조한다. 이다도시도 설문자 중에 포함되어 외견상으로는 어떠한 부러움을 탈지도 모르지만, 그녀를 통해 얻은 것이라곤 설문지뿐이다. 그 외의 어떠한 내용도 정보도 얻지 못해 아쉬웠으나, 그곳에 사는 현지인들이 오히려 친절하게 대답해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물론, 모든 프랑스인이 우리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긴 했지만, 대부분 정중히 거절한다. 그 중에는 바삐 걸어 가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 WE LOVE KOREAN TOO. "
우리는 중심 길가가 아닌 안쪽에서 막 장을 보고 돌아오시는 40대 초반의 프랑스인 아주머니를 만난다. 그 날의 프랑스인 중에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그녀는 수수한 옷차림의 라틴계였다. 그녀는 친절하게도 한 질문 한 질문에 답을 해주면서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까지 덧붙인다. “우리도 한국인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지만 너무나도 언어가 틀리고 문화가 틀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들이 많다. 한국어가 특히 너무 어렵다. 그래서 영어를 배울 수밖에 없다. 이곳 서래마을은 프랑스인 마을이라 불리고 있는지 몰라도 실제 프랑스와 너무나도 틀리다. 외국처럼 길마다 표시가 되어있지 않아 어떠한 상점이나 장소를 찾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영어로 표기가 잘 안되어 있을뿐더러 아예 없는 곳이 많아 불편하다. 그래서 우리에겐 프랑스 학교가 매우 중요하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그를 중심으로 여러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용해서 좋지만, 대형마트 등이 없어서 한남동이나 그런 곳으로 물품을 사러 가야한다는 불편함, 교통 또한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만 제외한다면 난 이곳이 너무 좋다. 살기도 편하고 앞으로도 장기간 한국에 머무를 계획이다.”는 말들을 해준다. 그녀는 헤어지면서 오히려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어주어 고맙다며, 축복의 말도 잊지 않는다.
설문을 하면서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그들이 저녁시간이 되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 바로 은행이다. 은행에서만 설문자의 반 정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녁때가 되니 은행으로 프랑스인들이 몰려들었다. 어떠한 일을 은행에서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로부터 꼼꼼함을 느껴진다. 작은 프랑스인 사회이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를 알고 있다. 인사를 건네며, 오늘 하루 일과를 얘기하며, 은행이 그들의 바쁜 삶 가운데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돌아오는 약간의 이점이 있다. 설문자의 친구이기에 말을 더 쉽게 건넬 수 있고 설문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벽 너머 어렵게 설문지를 주고 받아야할 것 같았던 시간들은 프랑스인들의 따뜻함과 말들로 끝이 난다.
" We Love Korean T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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