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서 론 ………………………………………………………1
1.1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 ……………………………………1
1.2 연구의 범위와 방법…………………………………………1
II. 제1공화국과 민군관계 ……………………………………2
2.1 개요……………………………………………………………2
2.2 제1공화국의 민군관계……………………………………3
2.3 제1공화국의 민군관계 평가………………………………5
III. 제 2공화국과 민군관계 ……………………………………6
3.1 개요 …………………………………………………………6
3.2 제2공화국의 민군관계 ……………………………………7
3.3 제2공화국의 민군관계 평가 ……………………………8
IV. 제3.4공화국과 민군관계 …………………………………8
4.1 개요……………………………………………………………8
4.2 제3.4공화국과 민군관계……………………………………9
4.3 제3.4공화국과 민군관계의 평가…………………………9
V. 제5.6공화국과 민군관계 ……………………………………10
5.1 개요……………………………………………………………8
5.2 제5.6공화국과 민군관계……………………………………9
5.3 제5.6공화국과 민군관계의 평가…………………………9
VI. 결 론 ………………………………………………………10
1.1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 ……………………………………1
1.2 연구의 범위와 방법…………………………………………1
II. 제1공화국과 민군관계 ……………………………………2
2.1 개요……………………………………………………………2
2.2 제1공화국의 민군관계……………………………………3
2.3 제1공화국의 민군관계 평가………………………………5
III. 제 2공화국과 민군관계 ……………………………………6
3.1 개요 …………………………………………………………6
3.2 제2공화국의 민군관계 ……………………………………7
3.3 제2공화국의 민군관계 평가 ……………………………8
IV. 제3.4공화국과 민군관계 …………………………………8
4.1 개요……………………………………………………………8
4.2 제3.4공화국과 민군관계……………………………………9
4.3 제3.4공화국과 민군관계의 평가…………………………9
V. 제5.6공화국과 민군관계 ……………………………………10
5.1 개요……………………………………………………………8
5.2 제5.6공화국과 민군관계……………………………………9
5.3 제5.6공화국과 민군관계의 평가…………………………9
VI. 결 론 ………………………………………………………10
본문내용
기에 국가가 안정되면 물러난다는 계획은 온데간데 없어진 것이다. 권력의 맛은 꿀물과 같은것인거 같다.
4.2 제3.4공화국의 민군관계
1963년 10월 15일 제5대 대통령으로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이대 군부는 실용적이고 국가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위계적이고 권위주의 적인 통치방법을 구축하고 수출산업,해외자본 및 기술도입을 강조하는 개방적 국제주의 경제정책을 채택하였다.
제3공화국은 정치윤리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보다 민족주의에 따른 경제발전에 큰 관심과 노력을 들였고, 계속되는 북한의 위협에 군사적인 행동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실리적인 행동을 많이 했다. 한일국교정상화, 베트남전 파병, 서울도시정비계획, 경제개발계획의 과감한 도입은 군부의 집단주의가 아니였다면, 절대 이루어질수 없었다. 그러면서 경제정책의 결정과 집행은 민간지도자에게 의존하고 서로 공존했다.
제4공화국은 대통령의 권한이 강화되고 사소한곳 까지 신경을 쓴다. 각 관료들이 중임되고, 일이 지속적으로 확인 행정이 진행된다. 그리고 수출을 위해서 모든 역량이 집중되었다. 국가를 전부 군대화, 그리고 공장화 시키는 결과를 놓았다.
하지만, 신속성과 능률성이 역기능을 불러오기도 했다. 초기에는 폐쇄적인 경향에서 민간엘리트와 융화하려 했지만 결론은 도구로 전락하고 군부가 득세하여 추진하였다.
4.3 제3.4공화국의 민군관계 평가
제 3.4공화국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군부들이 정치지배체제의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건 한국정치를 지배한 문민지배가 중,상층부인 군부에게 넘어간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권력구도의 뒤바뀜이고, 이성계의 역성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의 발전이라고도 볼수 있다.
그래서 군역량을 국가발전에 전적으로 투입시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장기집권을 위해서 유신체제로 제4공화국을 출범해서 국민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국가자립의 경제기반형성, 베트남전파병으로 외화수입 및 민간경제 활성화, 산업화로 기술인력 공급, 국민교육수준 향상, 투철한 국가안보관 정립, 대민지원활동의 강화로 순기능적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역기능적으로 민간엘리트를 정치에서 제외시키고 다원주의적 사회발전을 저지했다. 그렇지만 지속적으로 민간엘리트들이 정치를 지배했다면 이 순간까지도 우리나라는 동남아의 어느나라처럼 자전거를 타면서 지냈을지 모른다.
V. 제 5,6공화국과 민군관계
5.1 개 요
1976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고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으며, 1979년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는 제10대 대통령으로 최규하 위기관리정부가 탄생하였으나, 유신체제하에서 억눌려온 정치참여에의 욕구가 마치 봇물 터지듯 민간엘리트들이 주도권을 잡고자 경합을 벌였다.
1980년 5월 17일 신군부세력은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실시하자 5월 18일 광주민주화 항쟁이 일어났다.
국가 비상대책위원회가 추진되고 정치,사회,경제,언론 등 각 분야에 걸쳐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특히 민간정치인을 막기위해 안간힘을 썼다. 정치활동금지, 삼청교육대, 그러는 중에 전두환대통령은 제5공화국, 노태우대통령은 제6공화국을 탄생시켰다.
5.2 제5,6공화국의 민군관계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는 보안사령관 전두환 소장과 하나회 중심의 소장파 신군부 엘리트와 노장파 군부엘리트간의 주도권을 쟁취하는 하극상 군사쿠데타였다. 최규하 대통령이 있었지만 군부앞에 사임을 하고 전두환위원장이 대통령이 되었다.
5.16혁명이후 군부의 통치로 억압받던 민중들은 민주화가 될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속적인 군부통치에 국민의 지탄과 도전을 받았다. 유신체제이후 군부의 인기는 땅에 곤두박칠 쳤다. 이때 또 군부가 집권을 하려고 하자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군부엘리트는 절대명령과 절대복종을 미덕으로 하는데 문민출신의 지도자들처럼 개방성과 유연성이 부족했다. 1950년대처럼 민중이 우매하지도 않았고, 군대가 가장 선진화된 집단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전역한 군인이 민중사회 여기저기 가게됨으로서 사회가 점점 군대화 되는 그리고 수직화 되는 계기도 낫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게 피라미드 구조에서 탈락된 인원을 공무원사회로 이전시켜 민군이 갈등이 빚게 되었다. 그리고 민주화항쟁으로 군인에 대한 불신도가 극에 다 달았다. 이런 제5공화국의 상처를 제6공화국에서는 치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5.3 제5,6공화국의 민군관계 평가
제 3.4공화국이 국가발전의 에너지를 얻었고 국가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제5공화국은 비판을 받기만 한다. 그 당시 민군의 관계가 갈등이 심화되고 사이가 안좋으며, 군부엘리트가 민간엘리트보다 뒤처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6공화국은 이를 수용하여 민주화된 군대로 이미지를 탈바꿈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고 오직 신성한 국방의 의무만 수행하기 위해서 군대문화를 민간사회로 이식되는걸 막기위해 다양한 이념이 나왔다. 이때 군인복무규율이 새로 재정립되면서 군인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게 되었다.
요컨대 한국군은 선진 민주국가형 민군관계 발전을 위해 문민통제의 원치고가 군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이때부터 국가안보 전문집단으로서 국방본연의 임무에만 전심전력함으로써 군 스스로의 긍지는 물론 국민으로 진심어린 신뢰와 애정을 받아 국가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V. 결 론
제1공화국부터 제6공화국까지 알아보았다. 군부세력을 뺀다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는 설명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가 군부에 대해서 생각하는게 엇갈린다. 새마을운동으로 혜택받은 사람들은 박정희대통령을 그리워 하고 민주화를 열망하던 자들에게는 독재자로 불릴 것이다. 밥한끼 따스하게 먹기 힘든시기에 세끼를 배불리 먹게 해준 것은 엄청난 업적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 그에 맞게 변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다. 독재를 계속하면서 권력의 맛을 계속 보면 그렇게 사람이 변하는거 같다. 민군관계는 뗄수가 없다. 우리가 안보라는 것을 계속 생각한다면 절대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앞으로도 우리는 민군관계에 대해서 깊은 성찰이 필요 할 것이다.
4.2 제3.4공화국의 민군관계
1963년 10월 15일 제5대 대통령으로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이대 군부는 실용적이고 국가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위계적이고 권위주의 적인 통치방법을 구축하고 수출산업,해외자본 및 기술도입을 강조하는 개방적 국제주의 경제정책을 채택하였다.
제3공화국은 정치윤리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보다 민족주의에 따른 경제발전에 큰 관심과 노력을 들였고, 계속되는 북한의 위협에 군사적인 행동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실리적인 행동을 많이 했다. 한일국교정상화, 베트남전 파병, 서울도시정비계획, 경제개발계획의 과감한 도입은 군부의 집단주의가 아니였다면, 절대 이루어질수 없었다. 그러면서 경제정책의 결정과 집행은 민간지도자에게 의존하고 서로 공존했다.
제4공화국은 대통령의 권한이 강화되고 사소한곳 까지 신경을 쓴다. 각 관료들이 중임되고, 일이 지속적으로 확인 행정이 진행된다. 그리고 수출을 위해서 모든 역량이 집중되었다. 국가를 전부 군대화, 그리고 공장화 시키는 결과를 놓았다.
하지만, 신속성과 능률성이 역기능을 불러오기도 했다. 초기에는 폐쇄적인 경향에서 민간엘리트와 융화하려 했지만 결론은 도구로 전락하고 군부가 득세하여 추진하였다.
4.3 제3.4공화국의 민군관계 평가
제 3.4공화국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군부들이 정치지배체제의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건 한국정치를 지배한 문민지배가 중,상층부인 군부에게 넘어간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권력구도의 뒤바뀜이고, 이성계의 역성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의 발전이라고도 볼수 있다.
그래서 군역량을 국가발전에 전적으로 투입시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장기집권을 위해서 유신체제로 제4공화국을 출범해서 국민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국가자립의 경제기반형성, 베트남전파병으로 외화수입 및 민간경제 활성화, 산업화로 기술인력 공급, 국민교육수준 향상, 투철한 국가안보관 정립, 대민지원활동의 강화로 순기능적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역기능적으로 민간엘리트를 정치에서 제외시키고 다원주의적 사회발전을 저지했다. 그렇지만 지속적으로 민간엘리트들이 정치를 지배했다면 이 순간까지도 우리나라는 동남아의 어느나라처럼 자전거를 타면서 지냈을지 모른다.
V. 제 5,6공화국과 민군관계
5.1 개 요
1976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고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으며, 1979년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는 제10대 대통령으로 최규하 위기관리정부가 탄생하였으나, 유신체제하에서 억눌려온 정치참여에의 욕구가 마치 봇물 터지듯 민간엘리트들이 주도권을 잡고자 경합을 벌였다.
1980년 5월 17일 신군부세력은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실시하자 5월 18일 광주민주화 항쟁이 일어났다.
국가 비상대책위원회가 추진되고 정치,사회,경제,언론 등 각 분야에 걸쳐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특히 민간정치인을 막기위해 안간힘을 썼다. 정치활동금지, 삼청교육대, 그러는 중에 전두환대통령은 제5공화국, 노태우대통령은 제6공화국을 탄생시켰다.
5.2 제5,6공화국의 민군관계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는 보안사령관 전두환 소장과 하나회 중심의 소장파 신군부 엘리트와 노장파 군부엘리트간의 주도권을 쟁취하는 하극상 군사쿠데타였다. 최규하 대통령이 있었지만 군부앞에 사임을 하고 전두환위원장이 대통령이 되었다.
5.16혁명이후 군부의 통치로 억압받던 민중들은 민주화가 될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속적인 군부통치에 국민의 지탄과 도전을 받았다. 유신체제이후 군부의 인기는 땅에 곤두박칠 쳤다. 이때 또 군부가 집권을 하려고 하자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군부엘리트는 절대명령과 절대복종을 미덕으로 하는데 문민출신의 지도자들처럼 개방성과 유연성이 부족했다. 1950년대처럼 민중이 우매하지도 않았고, 군대가 가장 선진화된 집단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전역한 군인이 민중사회 여기저기 가게됨으로서 사회가 점점 군대화 되는 그리고 수직화 되는 계기도 낫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게 피라미드 구조에서 탈락된 인원을 공무원사회로 이전시켜 민군이 갈등이 빚게 되었다. 그리고 민주화항쟁으로 군인에 대한 불신도가 극에 다 달았다. 이런 제5공화국의 상처를 제6공화국에서는 치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5.3 제5,6공화국의 민군관계 평가
제 3.4공화국이 국가발전의 에너지를 얻었고 국가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제5공화국은 비판을 받기만 한다. 그 당시 민군의 관계가 갈등이 심화되고 사이가 안좋으며, 군부엘리트가 민간엘리트보다 뒤처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6공화국은 이를 수용하여 민주화된 군대로 이미지를 탈바꿈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고 오직 신성한 국방의 의무만 수행하기 위해서 군대문화를 민간사회로 이식되는걸 막기위해 다양한 이념이 나왔다. 이때 군인복무규율이 새로 재정립되면서 군인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게 되었다.
요컨대 한국군은 선진 민주국가형 민군관계 발전을 위해 문민통제의 원치고가 군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이때부터 국가안보 전문집단으로서 국방본연의 임무에만 전심전력함으로써 군 스스로의 긍지는 물론 국민으로 진심어린 신뢰와 애정을 받아 국가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V. 결 론
제1공화국부터 제6공화국까지 알아보았다. 군부세력을 뺀다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는 설명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가 군부에 대해서 생각하는게 엇갈린다. 새마을운동으로 혜택받은 사람들은 박정희대통령을 그리워 하고 민주화를 열망하던 자들에게는 독재자로 불릴 것이다. 밥한끼 따스하게 먹기 힘든시기에 세끼를 배불리 먹게 해준 것은 엄청난 업적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 그에 맞게 변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다. 독재를 계속하면서 권력의 맛을 계속 보면 그렇게 사람이 변하는거 같다. 민군관계는 뗄수가 없다. 우리가 안보라는 것을 계속 생각한다면 절대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앞으로도 우리는 민군관계에 대해서 깊은 성찰이 필요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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