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두 명의 등장인물을 선택하여 인물의 이야기 요약 분석
1) 이문구, 우리 동네
2) 김소진, 장석조네 사람들
2. 주장의 근거가 되는 작품의 대목
1) 이문구, 우리 동네
2) 김소진, 장석조네 사람들
3. 등장인물의 특징과 갈등양상, 형상화방식 등을 비교
1) 이문구, 우리 동네
(1) 등장인물의 특징
(2) 갈등양상
(3) 형상화방식
2) 김소진, 장석조네 사람들
(1) 등장인물의 특징
(2) 갈등양상
(3) 형상화방식
4. 감상문
1) 이문구, 우리 동네
2) 김소진, 장석조네 사람들
Ⅲ. 결론
참고문헌
Ⅱ. 본론
1. 두 명의 등장인물을 선택하여 인물의 이야기 요약 분석
1) 이문구, 우리 동네
2) 김소진, 장석조네 사람들
2. 주장의 근거가 되는 작품의 대목
1) 이문구, 우리 동네
2) 김소진, 장석조네 사람들
3. 등장인물의 특징과 갈등양상, 형상화방식 등을 비교
1) 이문구, 우리 동네
(1) 등장인물의 특징
(2) 갈등양상
(3) 형상화방식
2) 김소진, 장석조네 사람들
(1) 등장인물의 특징
(2) 갈등양상
(3) 형상화방식
4. 감상문
1) 이문구, 우리 동네
2) 김소진, 장석조네 사람들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장편의 형식을 갖추어 엮어낸 연작장편이다. 이 작품에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산동네 빈민촌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등장한다. 따라서 본론에서는 두 연작소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중 두 명(연작소설 두 편)을 골라, 등장인물의 특징과 갈등양상, 형상화방식 등을 비교하여 분석한 후 감상을 서술해 보겠다.
Ⅱ. 본론
1. 두 명의 등장인물을 선택하여 인물의 이야기 요약 분석
1) 이문구, 우리 동네
‘우리동네 황씨’는 매점매석을 통해 치부한 황선주와 농민들 간의 갈등을 통해 농촌 사회의 빈부격차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진 농촌 소외 문제와 농민들 사이의 갈등, 전통적 농촌 공동체의 해체 과정 등을 비판적 시각을 바탕으로 제시하고 있다. 작가 특유의 유장한 문체와 충청도 사투리를 통해 농촌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으며, 부정적 농촌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작품의 풍자 대상인 ‘황 씨(황선주)’는 왜곡된 근대화로 인해 생겨난 전형적인 물질만능주의자이다. ‘황 씨’는 고리대금업으로 농토를 넓힌 인물로,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공동체를 위한 일에는 무관심한 인물이다. 이러한 ‘황 씨’의 성격은 반상회의 장면이나, 구호물자를 걷으러 다니는 장면 등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농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공동체 의식을 지닌 사람들이므로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황 씨’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작품 말미에서 이장은 이러한 ‘황 씨’를 비판하면서도 포용하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공동체 회복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2) 김소진, 장석조네 사람들
‘양은 장수 끝방 최씨’에서 성금어메와 장석조의 관계는 남녀관계와 자본의 소유에 대한 수직적인 갈등양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장석조는 성금어메의 육체를 탐하고 우연한 사고로 머리가 다 빠져버린 성금어메를 돈 몇 푼 쥐어주고 내친다. 성금어메는 여자로서의 수치심과 유부녀가 외도를 저지른 것에 대한 도덕적 죄책감으로 야밤을 틈 타 가정에 조용히 되돌아온다. 그렇게 되돌아 온 아내를 오영감 또한 큰 문제 삼지 않고 조용히 받아들인다. 장석조와 성금어메의 행태가 강자와 약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오영감과 성금어메의 관계는 빈민층 약자들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영감은 장석조와 아내에게 절대적인 약자일 수밖에 없다. 장석조와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내를 탐한 장석조에게도 아무런 항의도 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 아내에게도 어떤 이의제기도 하지 못한다. 그는 어린 아이가 있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침묵을 택한다.
2. 주장의 근거가 되는 작품의 대목
1) 이문구, 우리 동네
“그전 같으면 이 찌는 복중에 무슨 장맛으로 굴속 같은 집구석에만 움닥거릴 터인가. 마당에 평상이나 멍석을 펴고 모깃불을 놓으면 절로 땀이 가시고, 끓는 화덕에서 갓 떠낸 수제비를 훌훌 들어 마셔도 더운 법이 없었다. 뉘 집 마당을 가보아도 으레 이웃집 마실꾼이 있기 마련이고, 가리마타고 흐르는 은하수가 가끔 훑어가며 논밭 되어가는 이야기, 나가서 묻어들인 시국이야기로 담배가 떨어져도 심심함 줄을 몰랐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런 풍속이 되풀이될 성싶지 않았다. 아무리 삶는 날이라도 TV 앞에다 상을 놓았고, 그 바람에 하늘이 덮이기 무섭게 대문부터 걸어닫지 않는 집이 없었다. 안식구 따라 사내들 마저 그 지경이고 보니 더러 들어볼 말이 있어도 마실 갈 데가 없었다. 내 집뉘 집 없이 낮에는 죄다 들에 나가 살고 날만 저물면 빗장 걸고 틀어박히기를 다투니, 추녀를 나란히 하고 한 우물을 길어 먹는 이웃 사람도 며칠씩 얼굴 얻어 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동네에 무슨 일이 생겨도 일삼아 가보기 전에는 얼굴 한번 내밀지 않던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우리동네 황씨, 44~46쪽)
황씨를 통해 우리는 농촌에서 가족 서로의 의사소통이 단절되어가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황씨는 삶을 보다 윤택하고 편안하게 하고자 TV를 구입했다. 그러나 TV는 더불어 살아가던 공동체의 해체를 가져왔으며, 사회적 상호관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관계의 보완을 어렵게 만들었다. 인간의 자기 정체성이라는 것이 타인들과의 관계 맺음 속에서 온전하게 형성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때, 그러한 관계의 부재 혹은 관계 맺기의 불가능성은 자기 상실을 가속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가족의 파탄을 가져오거나 가족의 구성 자체를 처음부터 방해하는 힘은 주인공 자신의 의지나 노력에 반(反)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외부적인 것이다.
“겉보매가 깨끗하다는 이유로 두어 번 헹구어 거의 날로 먹다시피 해 온 김칫 거리에 농약을 퍼붓는 것을 김도 싸가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구태여 없어진 지 오래인 양심이란 것을 뒤져낼 건더기는 없다더라도, 어쩌다가 TV에서 농약 공해가 어떻다고 떠드는 소리가 귓결에 닿으면 한참씩이나 뒷맛이 개운찮던게 사실이었다. 그러면서도 김은 공연히 자기만 주눅들어할 까닭이 없다고 여겼다. 김은 농약 우린 물을 김칫국이랍시고 먹는 도시 사람들에게도 책임의 절반을 물어야 한다고 믿었다. 배추잎새에 벌레 지나간 자국이 뚫려 있거나 진딧물이 붙은 건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먹는 사람들은 벌레기미가 있을 듯한 채소라면 진저리를 쳐가며 젖혀놓고 매끈한 것만 첫째로 여긴다. 장사꾼들도 양잿물로 씻었건, 농약에서 건졌던, 아랑곳없이 물건이 깨끗한 것만 찾는다.“(우리동네 황씨, 75~76쪽)
「우리동네 황씨」에서 물론 TV에서 농약 공해가 어떻다고 떠드는 소리가 귓결에 닿으면 한참씩이나 뒷맛이 개운찮던게 사실이었다. 에서 알 수 있듯이 농민들도 농약이 안 좋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인 문제 앞에서는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 농민들은 어수룩하게 안 보이는 사람들의 먼 장래 건강까지 걱정하며 농약 극약을 피해 영농한다면, 결국 이쪽으로 돌아오는 것은 다만 실농이 있을 따름 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만큼 양심에 맞게 윤리적으로 살아간다면 퇴색된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 서울 것들이나 서루 저기허기는 매일반인 겨. 서루 다다
Ⅱ. 본론
1. 두 명의 등장인물을 선택하여 인물의 이야기 요약 분석
1) 이문구, 우리 동네
‘우리동네 황씨’는 매점매석을 통해 치부한 황선주와 농민들 간의 갈등을 통해 농촌 사회의 빈부격차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진 농촌 소외 문제와 농민들 사이의 갈등, 전통적 농촌 공동체의 해체 과정 등을 비판적 시각을 바탕으로 제시하고 있다. 작가 특유의 유장한 문체와 충청도 사투리를 통해 농촌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으며, 부정적 농촌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작품의 풍자 대상인 ‘황 씨(황선주)’는 왜곡된 근대화로 인해 생겨난 전형적인 물질만능주의자이다. ‘황 씨’는 고리대금업으로 농토를 넓힌 인물로,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공동체를 위한 일에는 무관심한 인물이다. 이러한 ‘황 씨’의 성격은 반상회의 장면이나, 구호물자를 걷으러 다니는 장면 등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농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공동체 의식을 지닌 사람들이므로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황 씨’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작품 말미에서 이장은 이러한 ‘황 씨’를 비판하면서도 포용하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공동체 회복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2) 김소진, 장석조네 사람들
‘양은 장수 끝방 최씨’에서 성금어메와 장석조의 관계는 남녀관계와 자본의 소유에 대한 수직적인 갈등양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장석조는 성금어메의 육체를 탐하고 우연한 사고로 머리가 다 빠져버린 성금어메를 돈 몇 푼 쥐어주고 내친다. 성금어메는 여자로서의 수치심과 유부녀가 외도를 저지른 것에 대한 도덕적 죄책감으로 야밤을 틈 타 가정에 조용히 되돌아온다. 그렇게 되돌아 온 아내를 오영감 또한 큰 문제 삼지 않고 조용히 받아들인다. 장석조와 성금어메의 행태가 강자와 약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오영감과 성금어메의 관계는 빈민층 약자들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영감은 장석조와 아내에게 절대적인 약자일 수밖에 없다. 장석조와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내를 탐한 장석조에게도 아무런 항의도 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 아내에게도 어떤 이의제기도 하지 못한다. 그는 어린 아이가 있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침묵을 택한다.
2. 주장의 근거가 되는 작품의 대목
1) 이문구, 우리 동네
“그전 같으면 이 찌는 복중에 무슨 장맛으로 굴속 같은 집구석에만 움닥거릴 터인가. 마당에 평상이나 멍석을 펴고 모깃불을 놓으면 절로 땀이 가시고, 끓는 화덕에서 갓 떠낸 수제비를 훌훌 들어 마셔도 더운 법이 없었다. 뉘 집 마당을 가보아도 으레 이웃집 마실꾼이 있기 마련이고, 가리마타고 흐르는 은하수가 가끔 훑어가며 논밭 되어가는 이야기, 나가서 묻어들인 시국이야기로 담배가 떨어져도 심심함 줄을 몰랐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런 풍속이 되풀이될 성싶지 않았다. 아무리 삶는 날이라도 TV 앞에다 상을 놓았고, 그 바람에 하늘이 덮이기 무섭게 대문부터 걸어닫지 않는 집이 없었다. 안식구 따라 사내들 마저 그 지경이고 보니 더러 들어볼 말이 있어도 마실 갈 데가 없었다. 내 집뉘 집 없이 낮에는 죄다 들에 나가 살고 날만 저물면 빗장 걸고 틀어박히기를 다투니, 추녀를 나란히 하고 한 우물을 길어 먹는 이웃 사람도 며칠씩 얼굴 얻어 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동네에 무슨 일이 생겨도 일삼아 가보기 전에는 얼굴 한번 내밀지 않던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우리동네 황씨, 44~46쪽)
황씨를 통해 우리는 농촌에서 가족 서로의 의사소통이 단절되어가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황씨는 삶을 보다 윤택하고 편안하게 하고자 TV를 구입했다. 그러나 TV는 더불어 살아가던 공동체의 해체를 가져왔으며, 사회적 상호관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관계의 보완을 어렵게 만들었다. 인간의 자기 정체성이라는 것이 타인들과의 관계 맺음 속에서 온전하게 형성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때, 그러한 관계의 부재 혹은 관계 맺기의 불가능성은 자기 상실을 가속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가족의 파탄을 가져오거나 가족의 구성 자체를 처음부터 방해하는 힘은 주인공 자신의 의지나 노력에 반(反)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외부적인 것이다.
“겉보매가 깨끗하다는 이유로 두어 번 헹구어 거의 날로 먹다시피 해 온 김칫 거리에 농약을 퍼붓는 것을 김도 싸가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구태여 없어진 지 오래인 양심이란 것을 뒤져낼 건더기는 없다더라도, 어쩌다가 TV에서 농약 공해가 어떻다고 떠드는 소리가 귓결에 닿으면 한참씩이나 뒷맛이 개운찮던게 사실이었다. 그러면서도 김은 공연히 자기만 주눅들어할 까닭이 없다고 여겼다. 김은 농약 우린 물을 김칫국이랍시고 먹는 도시 사람들에게도 책임의 절반을 물어야 한다고 믿었다. 배추잎새에 벌레 지나간 자국이 뚫려 있거나 진딧물이 붙은 건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먹는 사람들은 벌레기미가 있을 듯한 채소라면 진저리를 쳐가며 젖혀놓고 매끈한 것만 첫째로 여긴다. 장사꾼들도 양잿물로 씻었건, 농약에서 건졌던, 아랑곳없이 물건이 깨끗한 것만 찾는다.“(우리동네 황씨, 75~76쪽)
「우리동네 황씨」에서 물론 TV에서 농약 공해가 어떻다고 떠드는 소리가 귓결에 닿으면 한참씩이나 뒷맛이 개운찮던게 사실이었다. 에서 알 수 있듯이 농민들도 농약이 안 좋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인 문제 앞에서는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 농민들은 어수룩하게 안 보이는 사람들의 먼 장래 건강까지 걱정하며 농약 극약을 피해 영농한다면, 결국 이쪽으로 돌아오는 것은 다만 실농이 있을 따름 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만큼 양심에 맞게 윤리적으로 살아간다면 퇴색된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 서울 것들이나 서루 저기허기는 매일반인 겨. 서루 다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