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머리말
2.프로시의 생성과 흐름
3.프로시론
3-1. 1920년대 초, 순수시를 비판한 초기 프로시론
3-2. 프로시론의 새로운 방향
4.맺음말
2.프로시의 생성과 흐름
3.프로시론
3-1. 1920년대 초, 순수시를 비판한 초기 프로시론
3-2. 프로시론의 새로운 방향
4.맺음말
본문내용
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프로 예술은 일부 지식 청년들에게만 작용하고 그들에 의해 성장해 왔다.
사실, 이와 같이 당시 프로시의 대중화가 미흡했던 것은 시를 민중에게 직접 보여주지 못했던 점, 알기 쉽게 쓰지 못했던 점, 그리고 그들의 흥미를 끌거나 취향에 맞게 만들지 못했다는 점에 이유가 있었다. 이런 현실적인 배경을 놓고 봤을 때 김기진을 비롯한 이론가들이 프로시의 대중화를 꾀한 것과 특히, 김기진이 ‘시’의 차원을 넘어서 ‘시가’의 측면에서 대중화를 논의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하겠다.
이미 ‘단편서사시’에 대한 주장을 피력한 바 있는 김기진이 ‘시’가 아닌 ‘시가’를 통해 대중화를 실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마 시가 지닌 전달상의 한계와 무산대중에게 시는 감상이나 창작 면에서 어려운 장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그는 조선의 노동자는 대부분 의식화되지 못한 상태이고, 교양정도가 낮으며 민요나 잡가를 즐겨 부르는 상황이어서 그들에게 더 익숙한 시가 장르에서 대중화의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박정선「카프 목적의식기의 프로시 대중화론 연구」『어문총론』제 40호, 한국어문학회, 2004. p.162.
김기진으로서나, 프로시의 대중화 모색에 대한 논의의 측면에서는 진일보 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하여 김기진은 시가의 임무에 대해 “정치적 의견의 전개”가 아닌 “감정의 전달과 선동”에 있다고 정의 내렸다. 프로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본래 ‘시’의 양식과 적절히 융합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다시 한 번 제시 했던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프로시 대중화의 방법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이 ‘시가’의 형식을 취할 것과 ‘흥미가 가미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한편, 임화와의 대립은 이 대중화 논쟁에서도 계속 되었다.
대중화 논의의 촉매적 존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던 임화는 김기진이 “대중이 알아보기 쉽게 작품을 써야 하며 객관적 정세의 악화라는 조건하에서는 연장으로서의 문학은 그 정도를 수그려야 한다”고 주장한데에 대해 “원칙의 치명적인 무장 해제적 오류, 합법성의 추수, 의식적인 퇴각”이라 규정하면서 맹렬히 비난했다. 임화에 따르면 객관적 정세의 악화에 대처하는 방법은 김기진처럼 형식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철저하게 원칙을 고수하면서 투쟁하는 것밖에 없다. 김기진이 어쨌든 검열의 장벽을 넘기 위해서 사상은 견지하되 표현 강도를 낮추어야 한다고 보았다면, 임화는 그러한 상황을 야기한 요소들과의 투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니 표현 기술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대중화의 방법에 대해서도 차이를 보였는데 대중의 감수성에 부합하면서도 검열을 통과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서 합법적이면서도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는 김기진의 의견에 반해 임화는 작품 자체의 대중성 확보 문제는 시인이 프롤레타리아화 하면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프로 시인들이 프롤레타리아 전위의 일원으로서 대중 결합력을 높이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상, 프로시의 대중화에 대한 논의를 김기진의 시론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김기진은 그가 간과되어온 시의 형식과 창작법을 중심으로 대중화론을 전개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조직의 강화와 확대를 통한 대중화, 혹은 기관지 확보를 통한 대중화와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진정 올바른 대중화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작품과 조직 모두를 고려해야 했지만, 당시 프로 이론가들은 작품 아니면 조직, 이념성 혹은 형식, 어느 한 쪽에만 치중했고, 상호 소통을 전제로 한 논의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한 번 더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면, 서로 중요시 하는 문학적 가치가 달랐을 뿐, 당시의 프로시론 이론가들은 통상적으로 시의 대중화에 대해서는 그 필요성을 공감하였다는 점이다. 비록 많은 한계와 오류가 있었지만 특히, 1920년대 후반에 벌어진 프로시 대중화 논쟁은 한국 근대 문예 운동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4. 맺음말
석송 김기진은 문학을 일종의 선전문처럼 사용하는 일에 대해 예술지상주의자들 못지않은 슬픔을 느낀다며 고뇌를 드러냈었다. 카프의 문인들에게도 문학 자체가 소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에게는 그 소중함을 지키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그들은 현실이 문학에 미치는 힘이 지대하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 암울한 현실을 타개하지 않고는 자유로운 문학 활동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그러한 판단에 따라 자신들의 길을 간 것이었다.
혹자는 오늘날 문학은 독자가 없는 시대에 이르렀다고들 한다. 문학인들끼리 모여 방언만을 교환하는 현상에 대한 비판이 담긴 말이다. 하지만 본고는 지금까지의 고찰 결과 현시대를 독자가 아닌 작가가 없는 시대라고 명명하려한다. 1920년대의 프로시에 대한 논의들에 비추어본다면 상업주의에 물들어 주체성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지금의 문단현실은 크게 반성되어야 할 것이다. 현실 반영에 대해 고뇌하고 또 대중과의 융화를 생각해보고자 했던 당시의 문단의 움직임은 오늘날 상업성 짙은 우리 문단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타계책이 될 것이다.
참고도서
『신경향파시기의 프로문학』, 임규찬/한기형 태학사 1989. 6.
『林和 文學硏究-이데올로기와 詩의 길』, 김용직 세계사 1991. 3.
『작가론 및 작품론』, 임규찬/한기형 태학사 1990. 10.
『1910-1980 한국 현대시론사』, 이승훈 고려원 1993. 5.
『한국근대 리얼리즘 문학 비판』, 김외곤 태학사 1995. 11.
『韓國 近代詩史』, 김용직 학연사 1986. 10.
『한국 리얼리즘 문학론』, 장백일 심구당 1995. 10.
『韓國現代詩의 意識現象學的 硏究』, 최동호 高大民族文學硏究所 出版部 1989. 4.
『현대 경향시 해석/비판』, 김용직 느티나무 1991. 9.
『現代詩論』, 장도준 태학사 1995. 2.
참고논문
「논쟁의 의미와 문학사의 전개」 김대행 2003.
「카프 목적의식기의 대중화론 연구」 막정선 2004.
「한국의 비평논쟁사 연구 -내용-형식 논쟁과 프로문학의 운명」 윤병로 임규찬 1997.
사실, 이와 같이 당시 프로시의 대중화가 미흡했던 것은 시를 민중에게 직접 보여주지 못했던 점, 알기 쉽게 쓰지 못했던 점, 그리고 그들의 흥미를 끌거나 취향에 맞게 만들지 못했다는 점에 이유가 있었다. 이런 현실적인 배경을 놓고 봤을 때 김기진을 비롯한 이론가들이 프로시의 대중화를 꾀한 것과 특히, 김기진이 ‘시’의 차원을 넘어서 ‘시가’의 측면에서 대중화를 논의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하겠다.
이미 ‘단편서사시’에 대한 주장을 피력한 바 있는 김기진이 ‘시’가 아닌 ‘시가’를 통해 대중화를 실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마 시가 지닌 전달상의 한계와 무산대중에게 시는 감상이나 창작 면에서 어려운 장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그는 조선의 노동자는 대부분 의식화되지 못한 상태이고, 교양정도가 낮으며 민요나 잡가를 즐겨 부르는 상황이어서 그들에게 더 익숙한 시가 장르에서 대중화의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박정선「카프 목적의식기의 프로시 대중화론 연구」『어문총론』제 40호, 한국어문학회, 2004. p.162.
김기진으로서나, 프로시의 대중화 모색에 대한 논의의 측면에서는 진일보 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하여 김기진은 시가의 임무에 대해 “정치적 의견의 전개”가 아닌 “감정의 전달과 선동”에 있다고 정의 내렸다. 프로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본래 ‘시’의 양식과 적절히 융합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다시 한 번 제시 했던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프로시 대중화의 방법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이 ‘시가’의 형식을 취할 것과 ‘흥미가 가미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한편, 임화와의 대립은 이 대중화 논쟁에서도 계속 되었다.
대중화 논의의 촉매적 존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던 임화는 김기진이 “대중이 알아보기 쉽게 작품을 써야 하며 객관적 정세의 악화라는 조건하에서는 연장으로서의 문학은 그 정도를 수그려야 한다”고 주장한데에 대해 “원칙의 치명적인 무장 해제적 오류, 합법성의 추수, 의식적인 퇴각”이라 규정하면서 맹렬히 비난했다. 임화에 따르면 객관적 정세의 악화에 대처하는 방법은 김기진처럼 형식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철저하게 원칙을 고수하면서 투쟁하는 것밖에 없다. 김기진이 어쨌든 검열의 장벽을 넘기 위해서 사상은 견지하되 표현 강도를 낮추어야 한다고 보았다면, 임화는 그러한 상황을 야기한 요소들과의 투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니 표현 기술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대중화의 방법에 대해서도 차이를 보였는데 대중의 감수성에 부합하면서도 검열을 통과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서 합법적이면서도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는 김기진의 의견에 반해 임화는 작품 자체의 대중성 확보 문제는 시인이 프롤레타리아화 하면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프로 시인들이 프롤레타리아 전위의 일원으로서 대중 결합력을 높이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상, 프로시의 대중화에 대한 논의를 김기진의 시론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김기진은 그가 간과되어온 시의 형식과 창작법을 중심으로 대중화론을 전개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조직의 강화와 확대를 통한 대중화, 혹은 기관지 확보를 통한 대중화와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진정 올바른 대중화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작품과 조직 모두를 고려해야 했지만, 당시 프로 이론가들은 작품 아니면 조직, 이념성 혹은 형식, 어느 한 쪽에만 치중했고, 상호 소통을 전제로 한 논의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한 번 더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면, 서로 중요시 하는 문학적 가치가 달랐을 뿐, 당시의 프로시론 이론가들은 통상적으로 시의 대중화에 대해서는 그 필요성을 공감하였다는 점이다. 비록 많은 한계와 오류가 있었지만 특히, 1920년대 후반에 벌어진 프로시 대중화 논쟁은 한국 근대 문예 운동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4. 맺음말
석송 김기진은 문학을 일종의 선전문처럼 사용하는 일에 대해 예술지상주의자들 못지않은 슬픔을 느낀다며 고뇌를 드러냈었다. 카프의 문인들에게도 문학 자체가 소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에게는 그 소중함을 지키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그들은 현실이 문학에 미치는 힘이 지대하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 암울한 현실을 타개하지 않고는 자유로운 문학 활동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그러한 판단에 따라 자신들의 길을 간 것이었다.
혹자는 오늘날 문학은 독자가 없는 시대에 이르렀다고들 한다. 문학인들끼리 모여 방언만을 교환하는 현상에 대한 비판이 담긴 말이다. 하지만 본고는 지금까지의 고찰 결과 현시대를 독자가 아닌 작가가 없는 시대라고 명명하려한다. 1920년대의 프로시에 대한 논의들에 비추어본다면 상업주의에 물들어 주체성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지금의 문단현실은 크게 반성되어야 할 것이다. 현실 반영에 대해 고뇌하고 또 대중과의 융화를 생각해보고자 했던 당시의 문단의 움직임은 오늘날 상업성 짙은 우리 문단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타계책이 될 것이다.
참고도서
『신경향파시기의 프로문학』, 임규찬/한기형 태학사 1989. 6.
『林和 文學硏究-이데올로기와 詩의 길』, 김용직 세계사 1991. 3.
『작가론 및 작품론』, 임규찬/한기형 태학사 1990. 10.
『1910-1980 한국 현대시론사』, 이승훈 고려원 1993. 5.
『한국근대 리얼리즘 문학 비판』, 김외곤 태학사 1995. 11.
『韓國 近代詩史』, 김용직 학연사 1986. 10.
『한국 리얼리즘 문학론』, 장백일 심구당 1995. 10.
『韓國現代詩의 意識現象學的 硏究』, 최동호 高大民族文學硏究所 出版部 1989. 4.
『현대 경향시 해석/비판』, 김용직 느티나무 1991. 9.
『現代詩論』, 장도준 태학사 1995. 2.
참고논문
「논쟁의 의미와 문학사의 전개」 김대행 2003.
「카프 목적의식기의 대중화론 연구」 막정선 2004.
「한국의 비평논쟁사 연구 -내용-형식 논쟁과 프로문학의 운명」 윤병로 임규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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