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사기
2. 정관정요
2. 정관정요
본문내용
한다. 하지만 세계제국의 황제였던 당태종이 신하를 등용하는데 있어서 장점을 먼저 보려했고 상대방과의 차이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인 것 같다. 지위가 올라가면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그런 관계에서는 대등한 소통이 힘들기 때문이다. 황제와 신하라는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소통의 장이 형성되었다는 것은 그런 무대를 만들기 위한 당태종의 엄청난 노력이 선행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관계를 맺고 소통을 하는데 있어서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의 교류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유지하고 그 과정에서 나와 다른 의견을 경청하고 다양한 시각이 있음을 인지하여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태종은 인문학을 육성하여 사서를 편찬했고 사관의 역할에 있어서 선과 악을 모두 기록할 것을 강조했다. 문치로 수성하고자 유학을 숭상하여 공자의 묘를 수도에 있는 학교인 국학 안에 세웠고 홍문관을 정비하여 주역, 상서, 시경, 예기 등의 유학 경전의 교정 작업에 착수하여 오류를 바로잡았다. 또한 균전제를 실시하고 황무지를 개간하도록 했고 의창을 설치하고 혼인을 장려하여 인구를 육성하는데 큰 힘을 쏟았다.
멈춤의 지혜를 터득하여 혼란을 평정한 뒤에는 무기를 쉬게 하고 문치로 수성하고자 했다. 당태종의 경영 방식은 큰 틀에서 능신을 중용하고 인문학 육성을 통해 역사의식을 고취하여 과거의 진나라와 수나라의 실패 사례를 경계하고 신하들과의 열린 소통의 관계를 통해 간언과 언로확대를 추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하를 믿어야 조직이 상생할 수 있고 수평적 인간관계를 추구했으며 자기 자신은 검소와 절약을 몸소 실천했다. 백성의 고달픈 삶을 측은히 여겨 결혼 적령기의 궁녀들이 궁 밖으로 나가 자유롭게 배우자를 구하도록 했다. 궁녀들 또한 백성이므로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면 결국 인구를 늘려 국가를 부강하게 하는 바탕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태종 역시 말년에는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사치와 방종을 행하면서 백성들의 요역 비중이 증가했고 고구려를 침략하고 영토 확장 정책을 펼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문제점들을 희석시킬 만큼 당태종의 공은 크다고 할 수 있다. 간언을 수용하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인문학을 육성한 것이 당태종의 열린 리더십의 요체가 아닐까 싶다. 창업과 수성을 겸하는 것은 예로부터 드문 일이지만 고된 창업 과정을 통해 22년 동안 당 제국을 수성하면서 세계제국으로 도약시킨 과정을 보면 창업과 수성은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함께 가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군주와 신하가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 열띤 토론을 이어간 정관정요는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는 측면과 신하의 간언을 그대로 현실 정치에 반영했다는 측면에서 오늘날 정치인들에게도 큰 귀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의 나의 삶을 설계하는데 있어서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들과 비판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의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나를 발전시키는 첫 단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태종은 인문학을 육성하여 사서를 편찬했고 사관의 역할에 있어서 선과 악을 모두 기록할 것을 강조했다. 문치로 수성하고자 유학을 숭상하여 공자의 묘를 수도에 있는 학교인 국학 안에 세웠고 홍문관을 정비하여 주역, 상서, 시경, 예기 등의 유학 경전의 교정 작업에 착수하여 오류를 바로잡았다. 또한 균전제를 실시하고 황무지를 개간하도록 했고 의창을 설치하고 혼인을 장려하여 인구를 육성하는데 큰 힘을 쏟았다.
멈춤의 지혜를 터득하여 혼란을 평정한 뒤에는 무기를 쉬게 하고 문치로 수성하고자 했다. 당태종의 경영 방식은 큰 틀에서 능신을 중용하고 인문학 육성을 통해 역사의식을 고취하여 과거의 진나라와 수나라의 실패 사례를 경계하고 신하들과의 열린 소통의 관계를 통해 간언과 언로확대를 추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하를 믿어야 조직이 상생할 수 있고 수평적 인간관계를 추구했으며 자기 자신은 검소와 절약을 몸소 실천했다. 백성의 고달픈 삶을 측은히 여겨 결혼 적령기의 궁녀들이 궁 밖으로 나가 자유롭게 배우자를 구하도록 했다. 궁녀들 또한 백성이므로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면 결국 인구를 늘려 국가를 부강하게 하는 바탕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태종 역시 말년에는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사치와 방종을 행하면서 백성들의 요역 비중이 증가했고 고구려를 침략하고 영토 확장 정책을 펼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문제점들을 희석시킬 만큼 당태종의 공은 크다고 할 수 있다. 간언을 수용하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인문학을 육성한 것이 당태종의 열린 리더십의 요체가 아닐까 싶다. 창업과 수성을 겸하는 것은 예로부터 드문 일이지만 고된 창업 과정을 통해 22년 동안 당 제국을 수성하면서 세계제국으로 도약시킨 과정을 보면 창업과 수성은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함께 가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군주와 신하가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 열띤 토론을 이어간 정관정요는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는 측면과 신하의 간언을 그대로 현실 정치에 반영했다는 측면에서 오늘날 정치인들에게도 큰 귀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의 나의 삶을 설계하는데 있어서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들과 비판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의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나를 발전시키는 첫 단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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