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서론 >
< 본론 >
《 결 론 》
< 본론 >
《 결 론 》
본문내용
인류의 생사 여탈의 시기를 알아 준비를 하며!
증산도는 전 인류의 구원의 진리를 가지고 있고!
증산도는 전 인류와 역사의 뿌리 점에서 시작해 그 진실을 알고 있으며!
증산도는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합니다!」라는 글이 있다. 이 글을 보면 증산도만을 추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상 증산도의 연혁과 신도의 입장 그리고 신앙예법 등을 알아보았다. 사람들이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도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이러한 질문을 하는 신도들은 대개 ‘대순진리교’이다. 이러한‘대순진리교’에 대해서 알아보자.
대순진리교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대순진리교의 대순(大巡)의 뜻은 큰 대(大) 돌 순(巡), 그러므로 크게 돈다는 것이며 둥근 것이다. 걸리는 데가 없고 막히는 것이 없으므로 이것을 원(圓)이라 하고 원이 즉, 무극(无極)인 것이다. 무극은 극이 없는 것이고, 무극이 태극(太極)이다. 그러므로 전 우주의 모든 천지일월과 삼라만상의 진리가 대순, 무극의 진리다. 우리는 이 진리를 통해가는 것이고, 전우주의 진리가 이 대순진리(大巡眞理)에 다 들어있다. 무궁무진한 이 진리를 가르치는 것을 교(敎)라 한다.
대순진리교의 교조는 강일순이며 호는 증산으로 강증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강일순이 사망하자 뿔뿔이 흩어진 제자들에 의해 수십 개의 증산계 분파가 형성되었는데 그 중 조철제란 사람에 의해 오늘날 대순진리회의 전신인 무극도가 창도되었다. 호가 정산인 그는 김제에서 증산의 교통계승을 위해 수도하면서 개간사업에 손을 대 경제적인 기반을 잡고, 2년 후인 1921년에 전북 정읍군 해인면에 '무극도'를 세우고 교세가 번창하자 1925년에 '무극대도교' 라 개칭하였다 그러나 1941년 일제의 해산명령으로 무극도는 막을 내리고, 해방후 1948년 부산 보수동에 근거지를 두고 '태극도'라 개칭하여 다시 재건되었다. 1955년에는 부산시 서구 감천동으로 본부를 옮기고 활동하다가 1958년 조정산이 사망하자 뒤를 이어 박한경(78)이 도전(都典)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신파와 반대하는 구파 신도간의 세력다툼으로 인한 폭행, 금품탈취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자 1968년 태극도를 떠나 이듬해인 1969년 중곡동의 1천 8백평의 임야에 본부를 둔 태극진리회를 개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72년에 대순진리회로 개칭, 현재는 여주에 본부를 두고 중곡동에 도장과 포천과 제주에 수령도장을 운영하며 대진 남, 여 고등학교와 대진학원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대순진리교에는 여러 가지 비리와 같은 문제점이 많아 이슈가 되고있는데 이를 보여줄 수 있는 단적인 기사를 찾아보았다. 그 기사는 다음과 같다.
「PD수첩 ‘연천 종교단체’ 실명보도
언론사들이 연천 종교단체 살인사건을 다루면서 집단반발과 명예훼손 등을 우려해 종교단체의 실명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MBC PD수첩이 이 종교집단의 실명을 공개해 주목을 받았다. MBC PD수첩은 27일 <너희가 생명수를 아느냐?> 편에서 대순진리성도회의 시신보관 등 엽기적 사건의 배경과 이들의 실체, 이들이 맹신하는 ‘생명수’를 통한 부활의 연원이 무엇인지 등을 집중 조명했다. 또 대순진리성도회가 대순진리회의 분파 중에서 파생돼 나온 종파라는 점도 소개했다. 최진용 PD수첩 팀장은 “대순진리성도회가 얼마 전까지 대순진리회에 매월 상납해온 과정도 드러났다”며 “아무리 종교집단의 힘이 크다해도 언론이 문제점을 분명하게 밝혀줘야 유사한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실명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근행 PD는 “왜 언론이 하나같이 D성도회 등 익명으로 계속 처리하는지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며 “대순진리성도회는 종교단체로 정식 등록이 돼있는 단체”라고 말했다.최 팀장은 “취재과정에서 신도들이나 관계자들로부터 협박까지는 아니어도 ‘집단대응이 있을 수 있다’는 등의 말을 듣긴 했다”며 “아마도 방영된 다음 날(28일) 소란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PD수첩팀은 지난 16일 사건이 터지자마자 PD 4명을 투입하는 등 적지 않은 공력을 들였다.다른 언론사들이 실명 표기를 기피한 까닭은 종교단체의 격렬한 반발과 명예훼손 소송 등을 우려한 몸사리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SBS 보도국의 한 부장은 “아직 사건이 진행 중인데다 이들 단체들의 연관성 여부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실명을 밝히기가 상당히 어렵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지난 17일자 1면에서 이를 크게 다룬 국민일보는 ‘대순성도회’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이를 기사화 했으나 그 뒤에는 연천 종교집단으로 표기했다. 또 대다수 언론이 D성도회, 모 종교단체로 표기하거나 대순성도회로 표기했다가 사과문을 게재했을 뿐 실명을 거론한 매체는 한 곳도 없었다. 대한매일 편집국 간부는 “비우호적인 언론보도에 대해 극성을 부리는 종교단체가 있기 때문”이라며 “D성도회 정도의 표기도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MBC 구영회 보도국장은 “종교문제가 잘못 보도되면 언론사에 밀고 들어와 업무 마비를 일으키는 사례가 많았다”며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종교집단의 무력 점거로 피해가 컸던 만큼 특정종교집단 관련기사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기사 뿐 아니라 대순진리교에 대해 알아보면 여러 가지 사기 행각과 비리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종교를 믿는 신도들은 이러한 행각들을 합리적인 생각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종교에 대한 신념과 신앙심을 가지고 이런 행위들을 일삼고 있다.
《 결 론 》
지금까지 이단에 대해 알아보았다. 사람들은 아직도 사람들이 메스컴등을 통해서 비춰지는 이단의 비리나 한쪽으로 치우친 정보만을 보기 때문에 이단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얻어진 정보만을 가지고 이단을 나쁘다 비난하기 보다는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이단이 추구하는 주의, 이단의 정식적인 활동 등 좀 더 심층적으로 이단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지금처럼 이단을 무조건 적으로 배척하기 보다는 하나의 다른 종교로 이단을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증산도는 전 인류의 구원의 진리를 가지고 있고!
증산도는 전 인류와 역사의 뿌리 점에서 시작해 그 진실을 알고 있으며!
증산도는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합니다!」라는 글이 있다. 이 글을 보면 증산도만을 추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상 증산도의 연혁과 신도의 입장 그리고 신앙예법 등을 알아보았다. 사람들이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도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이러한 질문을 하는 신도들은 대개 ‘대순진리교’이다. 이러한‘대순진리교’에 대해서 알아보자.
대순진리교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대순진리교의 대순(大巡)의 뜻은 큰 대(大) 돌 순(巡), 그러므로 크게 돈다는 것이며 둥근 것이다. 걸리는 데가 없고 막히는 것이 없으므로 이것을 원(圓)이라 하고 원이 즉, 무극(无極)인 것이다. 무극은 극이 없는 것이고, 무극이 태극(太極)이다. 그러므로 전 우주의 모든 천지일월과 삼라만상의 진리가 대순, 무극의 진리다. 우리는 이 진리를 통해가는 것이고, 전우주의 진리가 이 대순진리(大巡眞理)에 다 들어있다. 무궁무진한 이 진리를 가르치는 것을 교(敎)라 한다.
대순진리교의 교조는 강일순이며 호는 증산으로 강증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강일순이 사망하자 뿔뿔이 흩어진 제자들에 의해 수십 개의 증산계 분파가 형성되었는데 그 중 조철제란 사람에 의해 오늘날 대순진리회의 전신인 무극도가 창도되었다. 호가 정산인 그는 김제에서 증산의 교통계승을 위해 수도하면서 개간사업에 손을 대 경제적인 기반을 잡고, 2년 후인 1921년에 전북 정읍군 해인면에 '무극도'를 세우고 교세가 번창하자 1925년에 '무극대도교' 라 개칭하였다 그러나 1941년 일제의 해산명령으로 무극도는 막을 내리고, 해방후 1948년 부산 보수동에 근거지를 두고 '태극도'라 개칭하여 다시 재건되었다. 1955년에는 부산시 서구 감천동으로 본부를 옮기고 활동하다가 1958년 조정산이 사망하자 뒤를 이어 박한경(78)이 도전(都典)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신파와 반대하는 구파 신도간의 세력다툼으로 인한 폭행, 금품탈취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자 1968년 태극도를 떠나 이듬해인 1969년 중곡동의 1천 8백평의 임야에 본부를 둔 태극진리회를 개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72년에 대순진리회로 개칭, 현재는 여주에 본부를 두고 중곡동에 도장과 포천과 제주에 수령도장을 운영하며 대진 남, 여 고등학교와 대진학원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대순진리교에는 여러 가지 비리와 같은 문제점이 많아 이슈가 되고있는데 이를 보여줄 수 있는 단적인 기사를 찾아보았다. 그 기사는 다음과 같다.
「PD수첩 ‘연천 종교단체’ 실명보도
언론사들이 연천 종교단체 살인사건을 다루면서 집단반발과 명예훼손 등을 우려해 종교단체의 실명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MBC PD수첩이 이 종교집단의 실명을 공개해 주목을 받았다. MBC PD수첩은 27일 <너희가 생명수를 아느냐?> 편에서 대순진리성도회의 시신보관 등 엽기적 사건의 배경과 이들의 실체, 이들이 맹신하는 ‘생명수’를 통한 부활의 연원이 무엇인지 등을 집중 조명했다. 또 대순진리성도회가 대순진리회의 분파 중에서 파생돼 나온 종파라는 점도 소개했다. 최진용 PD수첩 팀장은 “대순진리성도회가 얼마 전까지 대순진리회에 매월 상납해온 과정도 드러났다”며 “아무리 종교집단의 힘이 크다해도 언론이 문제점을 분명하게 밝혀줘야 유사한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실명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근행 PD는 “왜 언론이 하나같이 D성도회 등 익명으로 계속 처리하는지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며 “대순진리성도회는 종교단체로 정식 등록이 돼있는 단체”라고 말했다.최 팀장은 “취재과정에서 신도들이나 관계자들로부터 협박까지는 아니어도 ‘집단대응이 있을 수 있다’는 등의 말을 듣긴 했다”며 “아마도 방영된 다음 날(28일) 소란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PD수첩팀은 지난 16일 사건이 터지자마자 PD 4명을 투입하는 등 적지 않은 공력을 들였다.다른 언론사들이 실명 표기를 기피한 까닭은 종교단체의 격렬한 반발과 명예훼손 소송 등을 우려한 몸사리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SBS 보도국의 한 부장은 “아직 사건이 진행 중인데다 이들 단체들의 연관성 여부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실명을 밝히기가 상당히 어렵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지난 17일자 1면에서 이를 크게 다룬 국민일보는 ‘대순성도회’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이를 기사화 했으나 그 뒤에는 연천 종교집단으로 표기했다. 또 대다수 언론이 D성도회, 모 종교단체로 표기하거나 대순성도회로 표기했다가 사과문을 게재했을 뿐 실명을 거론한 매체는 한 곳도 없었다. 대한매일 편집국 간부는 “비우호적인 언론보도에 대해 극성을 부리는 종교단체가 있기 때문”이라며 “D성도회 정도의 표기도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MBC 구영회 보도국장은 “종교문제가 잘못 보도되면 언론사에 밀고 들어와 업무 마비를 일으키는 사례가 많았다”며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종교집단의 무력 점거로 피해가 컸던 만큼 특정종교집단 관련기사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기사 뿐 아니라 대순진리교에 대해 알아보면 여러 가지 사기 행각과 비리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종교를 믿는 신도들은 이러한 행각들을 합리적인 생각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종교에 대한 신념과 신앙심을 가지고 이런 행위들을 일삼고 있다.
《 결 론 》
지금까지 이단에 대해 알아보았다. 사람들은 아직도 사람들이 메스컴등을 통해서 비춰지는 이단의 비리나 한쪽으로 치우친 정보만을 보기 때문에 이단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얻어진 정보만을 가지고 이단을 나쁘다 비난하기 보다는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이단이 추구하는 주의, 이단의 정식적인 활동 등 좀 더 심층적으로 이단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지금처럼 이단을 무조건 적으로 배척하기 보다는 하나의 다른 종교로 이단을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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