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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 외아들로 자란 저는 뭐든지 스스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어렸을 적부터 했고, 주위 어른들로부터 어른스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했습니다. 때문에 학창시절에는 남들보다 솔선수범 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리더쉽으로 친구들을 이끌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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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이 무료해질 때면 간호사 언니들은 친구가 되어 주었고, 맛있는 사탕도 주었습니다. 몇 마디 말 동무 해준 것 뿐이고, 몇 개의 사탕을 준 것이 전부지만, 그 시절 저에게 그것은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었기에 어른이 된 지금도 그 때의 감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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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바라만 봐도 배부르다"라고 항상 말씀하실만큼 자식욕심 많고, 자식을 위해 헌신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처럼 자상하신 어머니와 남자다우신 아버지를 통해 저는 조금씩 조금씩 미래를 향한 성장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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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서 저의 불우한 환경을 잠식시켜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저의 성장환경은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누구보다 행복했고, 물질이 풍요롭지 않았지만, 저의 꿈을 키우기에는 너무나도 따뜻하고, 충분했던 성장환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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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보다는 이타적인 인간이 되어 가난하게 사는 것이 낫다고 언제나 강조하셨습니다. 이렇듯 저는 화목한 가정 속에서 밝게 성장하였고 자율과 책임감이라는 의미를 깨우치며 남들보다는 조금은 일찍 철이 든 어른스러운 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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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하는데 첫째로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고 둘째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철없는 어린 아이였지만 가슴속 깊이 뭔가 뭉클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아버님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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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씨가 좋으셔서 사람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2-3배 몫을 해내신 다며 동네 어른들은 아버지를 진정한 기술자로써 존경했습니다. 물론 직업에는 귀천이 없지만 목수라는 직업이 흔히 말하는 ‘~사’자 직업이 아닌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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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원이신 아버지와 전업주부이신 어머니 사이에서 쌍둥이중 형으로 태어난 저는 어려서부터 활발한 성격이었습니다. 특히나 일란성 쌍둥이인 만큼 저희 형제는 어딜가든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얼굴만큼이나 성격도 비슷해, 아주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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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편리한 것인지 몸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어린시절 주위의 친구들이 내가 한국인이란 사실을 알고, 서먹서먹 해지기도 했지만 그들에게 외국인이 외계인이 아님을 설득시키고, 중국과 한국은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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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한국에 살지도 않으면서 한국어를 써야 하냐고 따진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조국은 부모님과도 같은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한마디 해주셨는데, 그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또한 부모님께서는 아무리 재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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