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나 외아들로 자란 저는 뭐든지 스스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어렸을 적부터 했고, 주위 어른들로부터 어른스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했습니다. 때문에 학창시절에는 남들보다 솔선수범 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리더쉽으로 친구들을 이끌었
|
- 가격 900원
- 등록일 2011.04.01
- 파일종류 한글(hwp)
- 직종구분 기타
|
 |
아이들에게 맞고 돌아오기도 했는데, 그 때면 저는 득달처럼 달려나가 나 보다 한 살 많은 형들에게 달려들곤 했습니다. 또 어린시절 저는 누구보다도 호기심이 왕성했습니다. 학교에서 전기 콘센트에 대해서 배우고 난 뒤, 한 여름 공을 찰
|
- 가격 700원
- 등록일 2011.04.01
- 파일종류 한글(hwp)
- 직종구분 기타
|
 |
서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기에 후회는 없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한편 언제나 외아들인 저를 위해 친구처럼 다정다감한 정신적 멘토가 되어주신 어머니는 혼자 자랐음에도 위축되거나, 내성적인 성격이 되지 않고, 오히려
|
- 가격 1,000원
- 등록일 2011.04.01
- 파일종류 한글(hwp)
- 직종구분 기타
|
 |
사회에 나가서도 항상 웃음이 많은 저의 모습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또 어렸을 적 농장에서 일하고 용돈을 받는 습관으로 인해 전 대학을 다닐 때도 항상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었고, 등록금도 모두 제 힘으로 해결했습니다. 이 모든 것
|
- 가격 600원
- 등록일 2011.04.01
- 파일종류 한글(hwp)
- 직종구분 기타
|
 |
굳이 한국에 살지도 않으면서 한국어를 써야 하냐고 따진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조국은 부모님과도 같은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한마디 해주셨는데, 그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또한 부모님께서는 아무리 재료를
|
- 가격 1,000원
- 등록일 2011.04.01
- 파일종류 한글(hwp)
- 직종구분 기타
|
 |
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또한 매사에 성실하셨던 아버지께서 항상 성실함을 강조하셨기에 저는 어렸을 적 늦잠 한번 잔적이 없을 정도로 성실함이 몸에 베었고, 이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재산이 되었습니다. 또 남들에 비해 형제가
|
- 가격 700원
- 등록일 2011.04.01
- 파일종류 한글(hwp)
- 직종구분 기타
|
 |
굳이 한국에 살지도 않으면서 한국어를 써야 하냐고 따진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조국은 부모님과도 같은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한마디 해주셨는데, 그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또한 부모님께서는 아무리 재료를
|
- 가격 900원
- 등록일 2011.04.01
- 파일종류 한글(hwp)
- 직종구분 기타
|
 |
서야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병상에서 일어서신 아버지께서는 친구의 회사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셨고, 어머니께서는 학교 앞에 작은 분식점을 시작하시며,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
- 가격 1,000원
- 등록일 2011.04.01
- 파일종류 한글(hwp)
- 직종구분 기타
|
 |
어 4년간 태권도를 배우고, 교내 격파왕이 되었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또 철이 든 이후에 처음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요리 잘하는 남자가 멋있다는 말에 자극을 받고 갖은 고생을 한 끝에 일식요리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끈기
|
- 가격 900원
- 등록일 2011.04.01
- 파일종류 한글(hwp)
- 직종구분 기타
|
 |
강해 지는 것을 싫어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기타를 배우면서부터 감수성이 풍부해져, 가끔 기타를 들고 공원에 나가 나지막하게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나름대로 음표를 짜 맞추어 엉성한 자작곡 몇 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한편 저는 성격
|
- 가격 900원
- 등록일 2011.04.01
- 파일종류 한글(hwp)
- 직종구분 기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