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김씨 매월당 김시습의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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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강릉김씨 매월당 김시습의 족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강릉김씨
2. 강릉김씨(江陵金氏)
1) [유래]
2) [가문의번영]
3) [계 파]
3. 강릉 김씨
1) 시조 : 김주원
○문성공 김인존
○충절공 김기혁
○김반
○청간공 김시습
[주요 집성촌]
4. 강릉 김씨
1> 시조 : 김주원[金周元]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5. 강릉김씨
김주원 [金周元, ?~?]

본문내용

다. 양역의 변통에 능란했다.
○문헌공 김상성
1703(숙종29)-1755(영조31)
자는 사정, 호는 도계·손곡.
판서 김시환의 아들. 영의정 김상철의 종형.
13세 때에《김수정기)》를 지어 신동으로 불렀고, 1723년(경종 3) 정시문과에 장원.
1725(영조 1) 부수찬·응교를 지내고..
이어 대사간·경상도 관찰사·이조참판·호조 판서·예조 판서를 역임 했다.
○충익공 김상철
1712(숙종38)-1791(정조15)
자는 사보, 호는 화서, 판돈령부사 김시혁의 아들.
1733년(영조 9) 사마시를 거쳐, 1736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지평·교리를 지내고, 1757년 충청도 관찰사 이어 대사간·한성부판윤을 거쳐..
이조·형조·병조의 판서를 지냈다.
평안도 관찰사를 거쳐 1766년(영조 42) 우의정, 1772년 좌의정, 1775년 영의정에 올랐다.
학덕이 뛰어나 영조의 신임을 받았고..
우의정 때 우리나라의 문물·제도를 부문별로 망라한 문헌의 필요성을 느껴..
왕에게 건의 찬집청을 두어 1770년(영조46)《동국문헌비고》를 편찬케 함으로써..
뒷날 많은 편의를 가져왔다.
이듬해 명사에 실린《강감합찬》에 조선 왕실의 계보가 잘못 적혀 있다는 대관의 상소가 있자..
자진해서 선계변무사로 북경에 가서 그 책의 개인 소장을 금하겠다는 청제의 약속을 받고 돌아와..
《신묘중광록》을 편집, 간행했다. 1781년(정조 5) 기로소에 들어간 후 영중추부사가 되었으나..
아들 김우진이 죄를 지어 유배되자 파멸되었다.
○문정공 김계락
1753(영조29)-1815(순조15)
자는 경순, 판중추부사 김화진의 아들.
1773년(영조49) 사마시를 거쳐 1783년(정조 7)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
병조좌랑·형조참판·동지의금부사 부총관 등을 지냈다.
순조 때 대사간을 거쳐 한성부판윤을 지내고 후에 공조·형조·예조의 판서, 우참찬, 대사헌 등을 역임했다.
병려문에 능했고, 경사백가에 통달했으며..
사부·시률·표전·頌(송)·詔(조)·誥(고)·策(책) 등의 문장에 모두 능했다.
서예에서도 뛰어났다.
[주요 집성촌]
강원 강릉시 일원, 강원 명주군 일원, 강원 삼척군 일원, 강원 횡성군 일원
강원 양양군 현북면 말곡리, 강원 정선군 임계면 송계리, 강원 철원군 원남면 남둔리
강원 철원군 마장면 대전리, 강원 평강군 고삼면 근남리, 강원 홍천군 서면 두미리
경기 개풍군 임한면 송촌리, 경기 김포군 고촌면 신곡리, 경기 양평군 지제면 망미리
경기 양주군 동두천 보산리, 경기 양주군 수동면 수산리, 경기 연천군 왕징면 귀존리
경기 옹진군 덕적면 문갑리, 경기 포천군 영북면 문암리, 경기 장단군 일원
경남 진양군 내동면 신율리, 경북 의성군 안계면 양곡동, 전북 익산군 낭산면 일원
충남 당진군 당진읍 일원, 충남 연기군 서면 청라리, 충남 예산군 봉산면 대지리
충남 천원군 성환면 일원, 충북 제천군 금성면 사곡리, 충북 진천군 마장면 대전리
함북 부령군 부령면 일원, 평북 철산군 일원
4. 강릉 김씨
1> 시조 : 김주원[金周元]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강릉(江陵)은 본래 예국(濊國 : 1세기 초에 임둔 옛 땅에서 자립한 부족국가)의
도성지(都城地)로서 상고시대에 창해(滄海)와 임둔(臨屯)에 속했으며, 서기 313년에
하서량(河西良) 또는 하슬라(河瑟羅)라 하였다.
서기 550년 신라의 영토가 되어 639년 2월 소경(小京)으로 삼았다가 685년 하서주(河西州)로
개편, 서기 776년 다시 명주(溟州)로 개편하였으며,
고려 태조(太祖) 때인 936년에는 동원경(東原京)이라 칭하고 임영관(臨瀛館)을 세웠다.
그후 우계,·연곡의 두 현을 두었다가, 조선 숙종 때인 1675년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강릉김씨(江陵金氏)의 시조는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21세손 김주원(金周元)이다.
사기(史記)에 의하면 그는 신라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태종무열왕 김춘추(金春秋)의
5세손으로, 서기 777년 시중(侍中)이 되었으며, 785년 (선덕왕 6) 선덕왕(宣德王)이 죽고
그의 아들이 없어 군신 들의 회의 끝에 왕으로 추대 되었으나 갑자기 그때 큰 비가 내려
알천(閼川: 경주부근의 하천)의 물이 불어나 건널 수 없어 입궐(入闕)을 못하게 되자
이는 하늘의 뜻이라 하며 즉위를 포기하였다 한다.
이에 원성왕이 즉위하고 그후 원성왕은 그에게 왕위에 오를 것을 권했으나 끝내 사양하며
강릉으로 은거하자, 원성왕은 그의 겸손함에 감복하여 명주군 왕으로 봉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강릉을 본관으로 삼아 계보를 이어오고 있으며, 후손으로는 수많은
명문들이 있으나 대표적으로 김시습[金時習]을 들수 있겠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은 세조의 폐륜에 통분하고 저항하여 절의를 지겼던 생육신의
한사람이다.
그는 주원[周元]의 22세손으로 금오신화, 매월당집, 십현담요해, 등의 명작을 남겼다.
3> 집성촌
강원도 삼척군 일원, 명주군 일원
충남 연기군 서면 청라리
강원도 철원군 마장면 대전리
충남 당진군 당진읍 일원
경기도 양주군 동두천읍 보산리
전북 익산군 낭산면 일원
5. 강릉김씨
김주원 [金周元, ?~?]
통일신라의 왕족. 태종무열왕의 6대손으로 강릉김씨의 시조. 785년(선덕왕 6) 왕이 후사가 없이 작고하자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되지 않았다. 후일 아들 헌창이 자기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된 것을 원망하여, 반란을 도모하였으나 실패하였다.
777년(혜공왕 13) 이찬(伊飡 )으로 시중(侍中)이 되었는데, 785년(선덕왕 6) 왕이 후사(後嗣)가 없이 작고하자 군신(群臣)이 그를 왕으로 추대하였으나, 때마침 그가 왕도 경주에서 200리나 떨어진 곳에 있었고, 홍수로 알천(閼川)이 범람하여 건너올 수 없게 되자, 대신들이 이는 하늘의 뜻이라 하여 상대등(上大等) 김경신(金敬信)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그러자 김주원은 자기에게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명주(溟州:강릉)에 도피하였는데, 2년 후에는 그곳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해졌다. 그의 아들 헌창(憲昌)은 후일 자기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된 것을 원망하여 822년(헌덕왕 14) 웅주(熊州:공주)에서 반란을 도모하였으나 실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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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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