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위 교수의 <크리스천 코칭>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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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손정위 교수의 <크리스천 코칭> 서평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요약
1.1. “나 다움”을 찾아가는 여행: 정체성 교육
1.2. 주제 중심의 교육: 내면화된 지식을 추구하는 교육
1.3. 크리스천 코칭: “나 다움”을 찾아가는 교육

2. 긍정과 찬사
2.1. 경쟁을 유발하는 객관주의 교육
2.2. 상대의 문제를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
2.3. 코칭의 목표
2.4. 고독의 중요성


3. 다른 시각
3.1. 정체성과 공동체를 잇는 축, “하나님”
3.2. ‘인정’이라는 단어의 재고찰, “받아들임”
3.3. 경험과 함께 고려되어야 할 요소, “삶”

4. 적용
4.1. 바른 목표의 추구
4.2. 정체성 추구의 방법
4.3. 정체성의 중심 틀
4.4. 결론
4.5. 구체적 적용

본문내용

인간으로서 내 자신을 알아야 하고, 전문적 코치가 되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바른 정체성을 갖도록 세우는 것이 사명자로서의 역할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소중한 인생으로 바로 서는 것을 모든 것의 목표로 잡는다.
4.2. 정체성 추구의 방법: 내게 있어 기술적인 방법보다는 원리적인 면이 더 중요하고 우선적이다. 이미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시대적 사상이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어떤 목표를 정해서 그것을 따라가는 것은 바람직한 정체성의 추구 방식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다르게 창조되었고, 또한 다른 은사를 받았다. 그러므로 나 자신으로서 바로 서는 것이 가장 정확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대로 인간은 죄인이고, 유한한 존재다. 나 자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어떻게 남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심지어 누군가는 나 자신까지도 받아들이지 못 하고, 어떤 권위자나 동경의 대상을 설정하고 쫓아간다. 이러한 우상숭배적 상황 속에서 과연 모든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대답은 ‘그렇다’인데, 그 유일한 방법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을 통해 부족함과 유한함이 채워진다. 물론 그 사랑은 사람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어야 한다. 죄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용서하고 받아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할 때, 그분께 용납된 나 자신과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4.3. 정체성의 중심 틀: 모두가 다르고 모두가 소중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은 인정되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근거는 -불신자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하나님께서 모두를 사랑하시고,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른 정체성의 방향은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어야 한다. 타락한 우리의 본래적 형상은,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회복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그러나 모두가 기회를 얻게 된 것이지, 모두가 회복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자녀 됨”이다.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과 방향, 속도 등은 다를 수 있지만, 그 근본적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4.4. 결론: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인도한다. 이와 같은 코칭을 통해 한 사람은 바른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고, 서로 다른 정체성들이 모여 하나님 나라를 세워 건강한 공동체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 공동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방법이지만, 비단 교회 뿐 아니라 세상 속의 모든 개인과 공동체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또한 교인에게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에게도 전해야 한다. 그들과 우리의 다름은 ‘하나님’의 존재 여부일 텐데, 바른 정체성과 공동체를 말하되 인간의 한계를 지적하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중심이 하나님의 사랑뿐임을 강조하여,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4.5. 구체적 적용: 난 아직 전문 코치가 아니다. 작은 개척교회에 있기에 선생님으로써 학생들 앞에 서지도 않는다. 그러나 코칭은 ‘선생님’의 자리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내겐 많은 친구들이 있고, 특히나 20대 중반을 넘어가는 그들은 사회에 대한 두려움이나 인생에 대한 무의미함을 토로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난 ‘선생님’이 아닌, 적어도 중심이 잡힌 ‘친구’로써, ‘신학생’으로써, ‘미래의 목회자’로써 그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얼마 전 “인생이 뭐야...”라고 물어온 친구가 있었다. 그는 가볍지 않게 나름대로 열심히 세상을 사는 친구였다. 이제 과거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나는 판단과 감정을 피해서 객관적으로 그에게 답을 해주려고 노력했다.
자화자찬이 될 것 같기에 그 내용을 말할 순 없지만, 그 친구는 고맙다면서 인생의 물음이 생기면 찾아와 도움을 청하겠다고 답글을 남겼다. 언젠가 내게 더 깊은 대답을 요구한다면, 난 하나님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 이외의 해답은 없을 테니까.
이 친구 외에도 이런 고민을 하는 친구가 많지 않을까? 더군다나 목회를 함에 있어서 이런 고민을 주를 이룰 것이다. 그때 내게 필요한 것은, 그를 인정하고 사랑하며 하나님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코칭이 그에게 온전히 다가갈 수 있도록 ‘바른 삶’을 살도록 노력할 것이다. 진리든 코칭이든 그것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내 입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내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다. 내가 배우고 전할 것에 악영향이 아닌,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나는 이것이 코칭의 기술 이전에 강력하게 확립되어야 할 원리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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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6.06.02
  • 저작시기2011.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03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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