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홍련전》을 통해 바라본 계모관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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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장화홍련전》을 통해 바라본 계모관의 형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장화홍련전》연구
2.1 계모형 소설로서의《장화홍련전》
2.1.1 《장화홍련전》의 배경
2.1.2 《장화홍련전》의 ‘계모’ 캐릭터 분석
2.2 《장화홍련전》를 통해 본 당대 사회상
2.2.1 성리학도입의 ‘동기이론’과 거주관행의 변화
2.2.2 ‘계모’와 관련된 법의 변화
2.3 다시 보는 《장화홍련전》
3. 나오며
※참고도서

본문내용

따라서 특히‘계모’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성립되었던 당대를 《장화홍련전》이 반영함에 따라‘계모’에 관한 나쁜 인식이 심어졌다고 볼 수 있다.
3. 나오며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현대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나쁜 계모’에 대한 고정관념은 성리학의 도입 이후에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는 ‘계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불과 몇 백 년 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것이다. 성리학 도입 이전에는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장가를 가는 것이 거주 관행이었다. 그러므로 처를 잃은 남자가 재취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설사 재취를 하더라도 전처자식은 처가에 두고 남자가 ‘가출’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전처의 자식을 못살게 구는 계모의 행태는 나타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당시 계모에 대한 인식은 단지 ‘아버지의 아내’였다.
그러나 ‘동기이론’을 중시하는 성리학의 도입 이후 ‘솔서혼’의 거주관행은 용인되기 힘들게 되었다. 즉, 부계 중심으로 거주관행이 바뀌면서 계모와 전처자식의 동거를 가능하게 하였던 것이다. 더불어 법제의 변화는 ‘계모’의 지위를 강화시켜 주었고, 재산상속의 기회까지 얻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전처의 자식과 계모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으며, 이는 재산문제에서 가장 극심한 갈등을 보인다. 이런 갈등구조에 따라 ‘계모’는 전처자식을 죽이려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나쁜 계모’에 대한 인식은 이때부터 라고 할 수 있다.
계모소설의 효시인《장화홍련전》은 이러한 그 당시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전처인 장씨의 재산이 장화와 홍련에게 상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두 딸을 모함해서 죽인 허씨는 이러한 과도기적 상황의 계모의 모습을 잘 나타내어준다. 이렇듯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 《장화홍련전》을 살펴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계모’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허씨가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서 우리는 고전소설이 당대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배웠다. 고전소설은 후대 사람들의 인식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장화홍련전》의 ‘계모’ 캐릭터를 통해서 알게 된다. 우리가 ‘계모’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의 근원을 찾아보면 그 끝에는《장화홍련전》이 있다. 당시 성리학의 수용으로 과도기를 겪던 조선의 모습과 ‘계모’와 관련된 법의 변화와 전처자식과 계모관의 갈등을 배경으로 《장화홍련전》이 나타나게 되었고 여기에 그려진 부정적인 계모상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참고도서
《경국대전주해》《예전(禮典)》봉사조
김재용, 1996《계모형 고소설의 시학》집문당
《세종실록》권47 권65. 권97
이병렬, 1993《꼭 읽어야 할 고전소설 27선》타임기획
이종서, 2004 <‘전통적’ 계모관의 형성과정과 그 의미>《역사와 현실》51호
정지영, 2003 <장화홍련전 ; 조선후기 재혼가족 구성원의 지위>《역사비평》통권 61호
《태종실록》권 12.
《흠흠신서》(법제처1987) 3책
  • 가격1,2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18.03.25
  • 저작시기2018.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50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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