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민속 - 개요 명칭 역사 및 유래 풍습 복의 기원과 액막이 설그림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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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설 민속 - 개요 명칭 역사 및 유래 풍습 복의 기원과 액막이 설그림 기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개요

2. 명칭

3. 역사 및 유래

4. 풍습
4.1 차례 및 세배
4.2 설빔, 덕담
4.3 설음식
4.4 놀이

5 복의 기원과 액막이
5.1 점복
5.2 복조리
5.3 야광귀

6. 설그림

7. 기타
7.1 공휴일 지정

8. 결론

본문내용

일본으로 전해져, 일본에서는 팽이를 고마[高麗]라고 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으며, 종류도 나무 ·대나무 ·금속 ·유리 등이 있고 모양도 다양하다.
옛날 시골에서는 아이들이 나무로 팽이를 직접 깎아 만들어 추운 겨울 강가 ·연못 ·논바닥 등의 얼음 위에서 팽이치기를 하였다.
팽이를 치는 채는 40∼50cm의 싸리나무 같은 막대기 한 끝에 40∼50cm의 끈을 달아 팽이가 도는 방향으로 때리면 빠른 속도로 오래 돈다. 팽이치기에는 5∼10m의 목표 지점을 설정해 놓고 팽이채로 정확하게 팽이의 허리를 치면서 빨리 돌아오기를 겨루는 놀이, 돌고 있는 팽이를 맞부딪쳐 상대편 팽이를 쓰러뜨리는 팽이싸움놀이, 아래위로 총알을 박은 팽이를 팽이줄로 감아 머리 위로, 또는 팔을 옆으로 비켜서 마치 야구의 투수가 던지는 식으로 팽이를 던져 돌려 서로 맞부딪치게 하는 팽이 찍기 등의 놀이 방법이 있다.
투호: 화살을 던져 단지에 많이 넣는 놀이이다.
투호의 유래: 투호는 중국 한나라 때 시작된 놀이로 당나라 때에 널리 성행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일찍부터 들어와 그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고구려, 백제 때 궁중과 조정의 고관들이 즐겼으며, 조선시대 때에는 왕이 경회루에서 직접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왕족실록)에는 이에 대한 기사가 적지 않게 등장함을 알 수 있다. 이 놀이는 투호병을 놓고 일정한 거리에서 편을 나누어 어느 편이 더 많이 투호병속에 화살같이 만든 청.홍의 긴 막대기를 던저 넣느냐를 겨루는 놀이이다.
예전엔 양반이나 귀족의 놀이여서예의를 많이 갖추고 접하기도 힘들었지만 요즘은 가족이나 친척 또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으며, 장소나 계절에 관계없이 폭넓게 할 수 있다.
5. 복의 기원과 액막이
5-1 점복
설날에는 1년의 운수를 점친다.
토정비결: 토정 이지함이 주역을 참조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생년월일을 따져 한해의 운수를 본다.
청참: 새해 첫새벽에 거리로 나가 방향도 없이 돌아다니다가 사람의 소리든 짐승의 소리든 처음 들리는 그 소리로써 그해 1년 중 자기의 신수(身數)를 점치는데, 이것을 청참(聽讖)이라고 한다.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해는 풍년이 들고 행운이 오며, 참새 소리나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흉년이 들고 불행이 올 조짐이라고 한다. 그리고 먼 데서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풍년도 아니고 흉년도 아닌 평년작이 들고, 행운도 불행도 없이 지낸다고 한다.
청참은 자기의 신수를 점친다.
오행점: 나무판이나 엽전에 오행(금, 나무, 물, 불, 흙)의 글자를 새겨 점을 본다.
윷점: 윷을 던져 점을 본다.
이 외에, 설날 또는 그 수일 간의 날씨를 살펴 한 해의 운수를 점치는 풍습이 각 지방에 남아 있다.
5-2 복조리
설날 이른 아침 또는 섣달 그믐날 밤 자정이 지나서,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엮어서 만든 조리를 사서 벽에 걸어 두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을 복조리라고 한다. 전국에서 조리 장사가 이것을 팔기 위하여 초하루 전날 밤부터 밤새도록 인가 골목을 돌아다닌다. 이러한 풍속은 조리가 쌀을 이는 기구이므로 그해의 행운을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뜻에서 비롯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설날에 1년 동안 사용할 조리를 그 수량대로 사서 방 한쪽 구석이나 대청 한 귀퉁이에 걸어 두고 하나씩 사용하면 1년 동안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민간 신앙도 있다..
5-3 야광귀
설날 밤에 야광(夜光)이라는 귀신이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신어 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는 속설이 있다. 신을 잃어버린 아이는 그해 운수가 불길하다고 하여 모두들 신을 감추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이날 밤에는 모두 불을 끄고 일찍 자는데, 야광귀를 막기 위해 체를 마루 벽이나 대문 위에 걸어 두면 야광귀가 와서 체의 구멍을 세어 보다가 잘못 세어 다시 세고 또 세고, 세고 하다가 아이들의 신을 신어 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새벽닭이 울면 물러가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6.설그림[歲畵]
조선조 말까지의 풍속에, 설날 도화서(圖畵署:그림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서) 에서 수성(壽星) 선녀와 직일신장(直日神將)을 그려서 임금에게 드리고, 또 서로 선물로 주기도 하는데, 이를 \'설그림(歲畵)\'이라고 한다. 이는 축수(祝壽)하는 뜻을 표시하는 것이다. 수성이란 장 수를 맡은 노인성(老人星)을 말하는 것이고, 직일신장은 그날을 담당한 신인데, 이는 모두 도교의 신이다. 한 사람은 도끼를, 한 사람은 절월(節鉞)을 들고 황금 갑옷을 입은 두 장군의 화상(畵像)을 한자 남짓 되게 그려서 대궐문 양쪽에 붙이는데, 이것을 \'문배(門排)\' 또는 설그림이라고 한다. 또한 붉은 도포와 검은 사모를 쓴 형상을 그려 대궐의 겹대문에 붙이기도 하며, 종규(鐘)가 귀신 잡 는 형상을 그려서 문에 붙이고, 또 귀신의 머리를 그려 문설주에 붙이니, 이것들은 다 사기(邪氣) 와 역신을 물리치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궁가(宮家)와 척리(戚里:임금의 內戚·外戚) 집 문짝에도 붙이니, 여염집에서도 이를 본받아 그림을 문에 붙였던 것이다.
7. 기타
7-1 공휴일 지정
대한민국에서는 섣달그믐(음력 12월 말일)부터 음력 1월 2일까지 3일 연휴로 쉰다. 그러나 연휴에 일요일이 포함되어도 공휴일이 연장되지 않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에서는 1967년부터 설날을 공휴일로 만들었고 2003년부터 3일 연휴로 쉬는데, 1월 1일부터 3일까지 쉰다.
8. 결론
우리나라의 설날은 새해를 첫 시작하는 의미인 것 같다. 새해를 맞이하며 가족관의 우애도 다지고 서로 모여서 같이 음식을 먹으며 만들면서 더 돈돈해지는 것이 설날인 것 같다.
설날에는 다양한 놀이와 먹거리가 많다. 새해는 처음으로 하는 것이어서 사람들이 첫 시작이기 때문에 더 새해를 중요시 하는 느낌이 듭니다. 조금은 허항된 미신도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설날은 가족들과 모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좋은 시간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옛날에 비해 그런 경우가 많이 없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가족들이 다 모여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설날인 것 같습니다. 이런 날들은 다른 것에 빼앗기지 말고 오랫동안 계속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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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3.10
  • 저작시기2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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