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일본정치사 3학년) 근대 동아시아 정치사 (1840년-1945년까지) 연표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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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일본정치사 3학년) 근대 동아시아 정치사 (1840년-1945년까지) 연표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보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1840년 아편전쟁에서부터 1945년의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발생했던 중요한 사건들
1) 중국
2) 일본
3) 한국

2. 근대 동아시아 정치사 연표

3. 시사점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계대전의 종전직전 전격적인 대일(對日)선전포고와 함께 만주를 비롯한 중국 동북부는 물론 함경도와 평양까지 진출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소련군의 급속한남진이 한반도 전역의 점령 사태로 이어지지 않도록 미국은 대한진공(對韓進攻)계획을 군사적 점령과 무장해체 전략으로 바꾼 뒤 1945년 8월 10일 국무부와 육군부, 해군부 등으로 구성된 해운성조정위원회(SWNCC)긴급회의를 열어 한반도의 38도선 경계안을 결정하였다. 당시 실무를 담담했던 육군성의참모진이었던 딘 러스크 대령과 본 스틸 대령은 가능한 한 북상해 항복을 받기 위한 정치적 희망과 미군이 다다를 수 있는 명백한 한계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는 안을 마련하라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38도선을 최종적으로 결정하였다. 한반도의 38도선 획정 작업에 참가했던 딘 러스크 대령은 후일 미국의회 증언에서 소련이 미국의 38도선 제안을 수락한 것에 놀랐다고 증언하였다. 당시 한반도에서 미국의 군사적 위치를 고려할 때 소련이 더 남쪽으로 내려온 획정선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하였기 때문이었다.
2. 근대 동아시아 정치사 연표
연도
중국
일본
한국
1840년
경작법 도입
1842년
강녕조약(江寧條約)
1843년
난징조약(南京條約)
1846년
자주적 개국
1854년
존왕양이(尊王攘夷), 가나가와(神奈川)조약
1856년
아편전쟁
1858년
톈진조약(1858)과 베이징조약(1860)
미국과 수호통상조약
1860년
태평천국운동(1850∼1864)
1861년
양무운동
1868년
서남웅번(西南雄藩)
1869년
판적봉환(版籍奉還)
1872년
근대 신문 선바오 창간
메이지 유신
1873년
개화 정책
1875년
운양호 사건
1876년
조선 개항
반일 척사 운동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개화사상, 갑신정변
1885년
천진 조약
1889년
대일본제국헌법
1894년
갑오농민전쟁
1895년
청일전쟁
조선 종주권
일본에 의한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을미의병
1896년
아관파천 사건
1898년
변법자강운동(1898)
1905년
포츠머스 조약
을사 보호 조약
1919년
3 1운동
1930년
만주사변(滿洲事變)
1941년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
1945년
일반명령 제1호
3. 시사점
19세기 이 같은 서구적 근대화의 충격으로 동아시아의 한·중·일 3국은 모두민족국가화라는 지역적 보편성을 갖게 되었지만 그 전개 과정과 양상은 비대칭적이고 불균등하게 진행되었다. 서구 열강의 근대화 압력에 노출된 한·중·일3국은 개별적 발전과 비대칭적 상호 작용으로 인해 근대민족국가 수립의 양상과 수준에 격차가 발생한 것이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라는 국가적 개조작업을 통해 가장 먼저 근대민족국가의 틀을 갖춘 일본은 서구 제국주의를 모방한 역내 제국주의 국가로 전환되었고, 일본과의 근대화 경쟁에서 뒤처진 중국과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를 받아야 하였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비대칭적이고 불균등한 근대화는 한·중·일 3국의 민족주의의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일본의 경우 개인의 시민성에 바탕한민족보다는 국가라는 추상적 존재에 기초한 국가주의에 빠져 ‘제국적 민족주의’를, 한국과 중국은 이에 맞서 ‘저항적 민족주의’를 각각 형성하면서 동아시아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적 대결구도가 구조화되는 단초가 마련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한·중·일 3국은 모두 독립국가로서의 외형을 갖추게 되었지만 한국과 중국은 분단국가, 일본은 주권을 상실한 평화(기지)국가로 모두근대민족국가의 기본적인 요소(영토, 주권, 국민)를 결여한 미완의 근대국가로 남게 되었다. 탈냉전 이후 국가성의 전환 과정에서 한·중·일 3국은 미완의 근대를 완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영토 분쟁과 역사 갈등과 같은 국가주의적 대결구도를 활용하게 되고 이는 민족주의의 재결집, 즉 신민족주의의 분출을 통하여 국가주의적 대결 구도가 확대 재생산되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동아시아는 근대와 탈근대, 냉전과 탈냉전이 혼재된 지역질서의 혼돈 속에서 다가오는 미래의 역사적 변화를 외면한 채 한·중·일 3국이 시대착오적인 국가주의 경쟁에 빠져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Ⅲ. 결론
지금까지 본론에서는 근대 동아시아 정치사 연표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보았다. 현재 동아시아가 직면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적 갈등과 대결에 내재된 위기의 본질은 세계적 석학들의 연구결과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키신저(Henry Kissinger)는 빈체제 수립 이후 1차 세계대전까지 100년간 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열강들이 세력균형 유지와 위협의 공동대응이라는 ‘정통성(legitimacy)’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정통성’이란 이행 가능한 합의들의 성격과 외교정책으로서의 허용할 수 있는 수준의 목표와 수단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를 의미한다. 따라서 키신저는 고전적 의미에서의 외교, 즉 협상으로 개별국간 차이점을 조정하는 행위는 상이한 경험을 가진 국가들이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기에 충분할 정도로 정의롭고 ‘정통성’있는 국제질서에서만 가능하다고 강조하였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한·중·일 3국은 탈냉전과 탈근대와 다원주의라는 시대적 조류와 정통성에 부합하는 역내 국제질서 구축 노력은 외면한 채 영토와 역사문제를 앞세운 근대적 국가주의 경쟁에 몰두하면서 고전적 의미의 외교는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고 관련국간 충돌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강상규, 김세걸, <근현대 일본정치사>(방송대 출판문화원, 2024)
강상규, <동아시아 역사학 선언> (에피스테메, 2021) 등
박찬승, 『민족·민족주의』, 서울:소화, 2010.
송기호, 『동아시아의 역사분쟁』, 서울:솔, 2007.
이삼성,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2』, 서울:한길사, 2009.
김효전,『근대 한국의 국가사상:국권회복과 민권수호』(서울:철학과 현실사,2000).
김기석 외,『21세기 동북아공동체 형성의 과제와 전망』, 파주:한울아카데미, 2006.
동북아지식인연대, 『동북아공동체를 향하여, 아시아지역통합의 꿈과 현실』, 서울:동아일보사, 2004.
김종욱. 「동아시아 근대의 형성에서 내셔널리즘과 불교」,『동서철학연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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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4.03.18
  • 저작시기202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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