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 성삼문과 방팽년 단종복위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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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사육신
1-i 사육신이란?
1-ii. 성삼문
1-iii. 박팽년

2. 단종복위운동

본문내용

가 실패하였으나 민심을 크게 자극하였다.
한편 세조의 왕위찬탈은 과거 세종 ·문종의 총애를 받았던 집현전의 일부 학사 출신으로부터 심각한 저항을 받았다.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하위지(河緯地) ·이개(李塏) ·유성원(柳誠源) 등의 유신(儒臣)들은 무관인 유응부(兪應孚) ·성승(成勝) 등과 함께 세조를 제거하고 상왕을 복위시킬 것을 모의하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1455년 10월(세조 1) 명(明)나라의 책명사(刪命使)가 조선에 오겠다는 통보를 계기로 56년 6월 1일 창덕궁(昌德宮)에서 명나라 사신을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 때 거사할 것을 계획하였는데, 마침 이날 세조 제거의 행동책을 맡은 별운검(別雲劍)이 갑자기 폐해져서 거사는 실행되지 못하였다.
이에 거사계획이 탄로되었음을 두려워한 김질(金綢)이 장인 정창손(鄭昌孫)에게 거사계획을 누설하고, 정창손과 함께 세조에게 고변함으로써 거사 주동자인 사육신(死六臣)과 그외 연루자 70여 명이 모두 처형되면서 단종복위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세조는 이 사건 직후 유신들의 중심기관인 집현전을 폐지하고 경연(經筵)을 중지하였으며 새로운 유신들을 발탁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왕권을 강화시켜 나갔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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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4페이지
  • 등록일2001.11.01
  • 저작시기2001.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0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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