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최승희 - 비운의 코리안 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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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면서

Ⅱ. 최승희의 삶

Ⅲ. 최승희의 예술

Ⅳ. 최승희의 평가

Ⅴ. 나가면서

본문내용

제 군부에 헌납
최승희 동양발레 위원회 발족
경성 부민관 공연
한국 지방 순회공연
중국 화북지방서 일본군 위문공연 및 일반공연
7일동안 북경에서 대공연
동경 제국극장에서 세계 기록인 24회 장기 독무 공연
안막이 '동양무용론' 발표
최승희 무용관심회 동호회 결성
중국 지방 순회공연
메이 란팡과 중국 경극무용에 관한 의견 교환
남경 동아극장의 공연때 중국 국민당 왕 징웨이도 관람
'최청씨이'라는 중국이름으로 북경에서 대공연
동경 제국극장에서 제 2차로 23회의 장기 독무 공연을 강행
극우파의 작가 미시마 유끼오가 최승희의 무용평 발표
최승희 무용화, 감상화에 많은 화가들이 출품
최승희 부부, 중국 도피 계획
최승희, 안막이 안제승과 김백봉을 강제 혼인시킴
딸 승자를 서울 재동 국민학교에 편입시킴
북경 삼좌대로에 최승희 동방 무도연구소 개설
상해 황군 위문공연 때 해방
안막이 북한으로 귀국
아들 병건 출산
쑨 사령관과 강칙모의 도움으로 무사히 인천으로 귀국
안막이 서울로 와 월북하자고 했으나 반대
안막, 최승희, 안제승, 김백봉, 그외 2명 월북
김일성 주석을 만나 후대받음
딸 승자를 성희로 개명함
평양 최승희 무용연구소 개설
안막이 북한 조선 노동당 중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에 이어 문예총 부위원장이 됨
일본 소르게 사건(10/18)
미일전쟁(12/8)
미국이 일본 본토 폭격(4/18)
일본 강제 징병(5/9)
조선어학회 사건(10/1)
히로시마, 나가사끼에 원자폭탄 투하(8월)
미소 공동위원회가 한국을 5년간 신탁통치하기로 함(12/26)
년도
내용
주변상황
1947년 5월
1948년 4월
1949년
1950년
6월 7일
11월
12월 4일
1951년
5월17일
1952년 11월
신의주에서 월북후 첫 공연
조선 인민 위원회 대의원 당선
체코슬로바키아 제 1회 세계 민청대회의 예술제에 참가
북한 전역을 순회공연
남북 지도자 연석회의에 참석한 김구, 김규식을 비롯해 20여명의 대표자를 위해 공연
무용극 '춘향전', '반야월성곡' 발표
안막이 평양 음악학교 학장에 취임
헝가리 부다페스트 제 2회 세계 민청대회에 최승희 무용단 참가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김일성 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8.15 해방 기념 축전에서 '해방의 노래' 공연
북경에서 개최된 아시아 부인 대회에 북한 대표로 참석
한설야가 문학예술 총동맹 위원장이 되고, 최승희는 무용 동먕 위원장
문화선전상인 허정숙이 인솔한 대규모 방소 예술단에 최승희 무용단이 참가하여 소련 공연
6월 25일에 한국전쟁 발발
소련에서 귀국한 방소 예술단 단원들이 남한에서 공연
유엔군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예술단원 월북
만주로 피난했다 뒤늦게 중국 정부의 초청형식으로 단원 15명과 같이 북경 도착
북경 반점에서 공연
1.4 후퇴때 안제승, 김백봉과 제자 8명 월남
희극학원 전용극장 소진창에서 1개월 동안 학생들과 합동 공연
북경 청년궁과 장안극장에서 한 공연을 보고 주은래 격찬
동베를린에서 개최된 제 3차 세계 평화 축전에 참가한 성희가 '장검무'로 일등상 수상
소련, 모스크바, 동베를린, 바르샤바, 프라하, 소피아 등지를 순회 공연
메이 란팡과 함께 중국무용 체계화에 몰두
북경 주재 외국 대사관 순회공연
평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희극학원 무도반의 조선족 학생 15명을 데리고 가려 했으나 중국에서 불허
건국 준비 위원회 위원장인 여문형 암살(7/19)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성립(9/9)
한국군이 북진 시작(10/7)
중공군 참전(10/25)
년도
내용
주변상황
1953년
1954년 11월
1955년
1956년
1957년
1958년
1959년
1961년
1962년
1963년
평양의 연구소 이름이 국립 최승희 무용연구소로 개명
성희가 모스크바 무대 예술대학 무용연출과에 유학
새로 신축된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무용극 '사도성 이야기' 공연
폴란드에서 열린 세계 청년 축전에서 심사위원으로 추대
최승희는 인민배우가 되고 안막은 문화선전성의 부상이 됨
최승희 무용생활 30주년 기념 공연 개최
최승희 무용생활 30주년 기념 무용미술 전람회 개최
성희가 모스크바 국제 무용 콩쿨에서 소련의 '집시춤'으로 일등상 수상
국립극장에서 무용극 '맑은 하늘 아래' 공연
무용극 '사도성 이야기'가 북한 최초의 천연색 영화로 제작
성희의 소련 유학 귀국 기념공연
일본에서 최승희 일본 공연 추진 위원회 결성
성희가 공훈배우로 됨
국가훈장 제 1급 수상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두번째 당선
소련에서 열린 제 6회 세계 청년 학생 평화 우호 축전에 민속무용 분야 심사위원으로 참석
성희와 함께 모스크바 와구단고프극장에서 '조선의 밤'에 출연
성희가 소련영화 '지브후리드'에 출연
'조선 무용 기본'과 '최승희 무용극 대본집' 발간
성희가 무용극 '옥란이의 전설'을 안무
안막이 반당 종파분자의 혐의를 받아 체포
공산당 선전선동부장 이일경이 최승희 비판
국립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폐쇄하고 국립 무용극장으로 개편
남편의 숙청으로 무용활동이 중단되고 연금상태
노동신문이 '사도성 이야기'를 비판
실권없는 요직을 가지고 있으면서 무용계에서는 완전히 제거됨
성희가 무용조곡 '시절의 노래'를 안무하고 연출
'민족 무용 기본'이 영화화
성희가 평양 무용극원 원장으로 임명
김일성이 KAPF출신 예술가를 비판하고 임화, 김남천, 이태준 등을 숙청
북한에서 예술가들의 부르조아적 사상 추방운동 전개
남로당파, 소련파, 연안파 숙청
년도
내용
주변상황
1964년
1966년
1967년
'조선 아동 무용 기본' 출간
성희가 무용극 '당의 딸' 안무
'조선 무용 동작과 그 기법의 우수성 및 민족적 특색'이라는 논문 발표
최승희가 숙청되었다는 기록이 한국의 북한 문제 연구소에서 나왔고, 일본 아사히 신문에 '최승희 등 반김일성파 추방'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정확한 사인 불명
☞ 참고문헌
1. 춤추는 최승희(정병호) - 뿌리깊은 나무, 1995
2. 생명의 춤, 사랑의 춤(강이향) - 지양사, 1989
3. 북한의 민속 예술(최철, 정경욱) - 고려원, 1990
4. 공옥진의 눈물과 한의 예술 열두 마당(조해원) - 해냄, 1992
5. 그외 기억나지 않는 여러 잡지, 신문, 웹사이트들

키워드

최승화,   비운,   코리안,   댄서,   평가
  • 가격3,300
  • 페이지수22페이지
  • 등록일2002.05.31
  • 저작시기2002.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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