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의 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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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슬픔 속으로 되돌아 갈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또한 그는 그와 문학활동을 함께 하며「문예시대(文藝時代)」를 창간하기도 했던 요코미츠 리이치(橫光利一)의 조사(弔辭)에서 '일본의 산하(山河)를 영혼으로써 살아가자'라는 결의를 했고, 스웨덴 노벨상 수여 식장에서는 일본전통 의상을 입고 나와 '아름다운 일본 속의 나(美しい日本の私)'라는 강연을 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아름다운 일본과 그 정서' 속에서 존재하며 그러한 일본적인 아름다움을 그리는데 정열을 쏟아 세계적으로 그 문학성을 인정받은 가와바타의 인생은, 72세의 나이에 가스자살을 할 때까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고 기구한 것이었다.
'고아의 슬픔'에서 애수, 몽환(夢幻), 섬세한 세계의 창조
가와바타는 메이지(明治) 32년(1899) 오사카(大阪)에서 의사인 아버지 에이키치(榮吉)와 어머니 겐(ゲン)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불과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그 이듬해에는 어머니와 사별한다. 그래서 그의 하나밖에 없는 누나는 친척에 의해, 그는 누나와 떨어진 채 조부모에 의해서 키워지게 되나, 7세때 조모가, 15세 때는 조부가 타계하고 하나 남은 누나마저도 요절해버려 가와바타는 어느 한 곳 의지할 데 없는 완전한 고아가 된다.
이러한 환경은 그의 내면에서 세상에 대한 불안과 멸망의 의식, 갈앙(渴仰)에 가까운 육친 사모의 정, 감상, 그리고 조부모의 맹목적인 사랑에 따른 응석 등을 키우게 된다. 가와바타는 자신의 성질이 '고아근성'으로 비뚤어져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바꾸어 생각해보면 외롭고 고독했던 환경에 의해 애수, 몽환, 섬세, 우미(優美)한 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고, 부드러움 속에 비정한 차가움을 띄운 눈으로 여인의 미묘한 심리를 표현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와바타의 특성을 가리켜 어떤 이들은 감성과 아름다움 속에서 그것만을 추구하며 살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유년시절 허약했던 가와바타는 조부모의 맹목적인 사랑으로 집단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결석도 잦았으나 성적만은 뛰어나서 수석으로 중학교에 입학한다. 이후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와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러시아 문학, 일본의 고전 등에 심취하여 탐독한다.
19세 때는 자신의 비뚤어진 성질에 대한 반성을 겸하여 이즈(伊豆) 지방으로 첫 여행을 떠나는데 여기에서 알게 된 떠돌이 예인(藝人) 집단의 소녀에게 마음을 끌리게 되어 이후 자주 이즈 지방을 여행하게 되고 이즈와 특별한 인연을 갖게 된다. 이 때의 체험담은 일본인들에게 불멸의 청춘문학으로 꼽히며 이즈 지방과 관련되면 반드시 떠오르는 명작 「이즈의 무희(伊豆の踊り子)」를 낳았고, 가와바타는 '이즈의 무희'였던 여인과 28세가 되던 해에 결혼한다.
두뇌가 명석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도쿄제국대학(현 도쿄대학) 문학부에 입학하여 활발한 문학활동을 펼친다. 그리고, 기구치 히로시(菊池寬), 요코미츠 리이치 등과 교우하며 「문예시대」를 창간, 신감각파로 불리우며 새로운 문체, 구성의 작품들을 창출한다. 쇼와(昭和) 10년(1935년)에는 아쿠다가와 상 선고위원이 되었고, 1948년부터 17년 간은 시가 나오야(志賀直哉)의 뒤를 이어 일본 펜클럽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1958년에는 국제 펜클럽 부회장에 취임하여 문학가의 국제교류에 전력을 다하는 등, 여러 사회적, 정치적 활동과 저작활동을 병행해 나간다.
이와 같은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비롯하여 노마(野間) 문예상, 괴테 메달, 프랑스 정부의 예술문화 훈장,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등 갖가지 많은 훈장과 상이 수여되었으며, 1970년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자살했던 해에는 우리나라 한양대학교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다.
무희와의 만남, 「이즈의 무희」
19세 때 처음으로 떠난 이즈 지방 여행은 가와바타에게 실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떠돌이 예인들과의 만남과 무희와의 청초한 사랑, 그리고 그들로 인해 그는 비뚤어졌던 마음의 정화를 이루었고, 이후 그가 구축해 가는 문학세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소설「이즈의 무희」는 타이쇼(大正) 15년(1926년) 「문예시대」에 발표된 중편소설로 그가 19세 가을에 처음으로 이즈 지방의 '슈젠'이라는 절(修善寺)에서 아마기(天城) 고개를 거쳐 시모다(下田)까지 여행했을 때의 경험에 입각한 사소설(私小說)적 작품으로, 청초한 연애감정과 여정을 서정적으로 묘사했다.
또한, 작중인물 중에 자신의 아버지 이름과 동일한 에이키치(榮吉)가 등장하는데, 주제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지만 흥미롭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고아근성'으로 비뚤어져 있는 주인공 '나'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이즈의 무희」는 당시 가와바타의 심경을 대변해주고 있는 듯하다. 시모다에서 무희와 헤어지고 도쿄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주인공 '나'의 묘사는 애절하면서도 서정적이다.
'…나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다.
머리가 맑은 물이 되어 버려 그것이 주르르 넘쳐흘러,
그 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은 달콤한 상쾌함이었다'
]
노벨 문학상 수상작「설국」
우리나라에서 뿐만이 아니라 서구에서도 「Snow Country」라는 제명으로 번역되어 널리 읽힌 장편소설 「설국」은 그야말로 일본적인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작품이다. 가와바타 자신이 가장 애착을 가졌다는「설국」은 쇼와 10년(1935년)부터 약 2년간 「문예춘추」 등에 연작 형식으로 발표되었다. 단행본으로써도 간행되었고, 쇼와 23년에 완결판이 쇼와 46년(1971년)에는 정본판이 간행되는 등 철저하게 퇴고(推敲)를 반복한 서정문학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으로 무위도식하던 주인공 시마무라(島村)는 눈이 쌓인 온천지 마을에서 기생 고마코(駒子)와 만나게 되어 그녀의 슬픔을 안고 있는 덧없는 아름다움에 끌리게 되나, 시마무라의 절재로 인해 사랑으로 진전되지 않는다. 순수한 아름다움은 본질적으로 허무한 것이라는 가와바타의 사상이 베어나며, 신감각파적 표현이 문장 전후의 묘사와 절묘하게 융화되어 강한 서정성을 풍긴다.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소설로써 한 번쯤 읽어 볼만 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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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2.06.20
  • 저작시기2002.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6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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