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권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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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해제

Ⅱ. 본문비평

Ⅲ. 문맥 연구

Ⅳ. 각 절에 대한 주석

Ⅴ. 본문과 바울의 타서신들 (특히, 갈라디아서, 필립비서, 고린도후서)에나타난 사도권에 대한 언급들


Ⅵ.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본문의 해석과 그 적용

본문내용

급은 실제로 그들을 고린도에서 만났던 적대자들과 가장 가깝게 생각하게 한다.(고전 15,12-19). 이들은 2세기의 영진주의에서 발견되는 "완전"이라는 입장을 취한
. H. Koester, Philippians, P.666. 재인용, 새로운 신약성서개론, P.240-241.
헬라세계에 흡수되는 형태의 기독교인으로 추정된다. (더 이상의 이해는 J, Dunn의 신약성서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참조해 볼만하다.)
갈라디아성에 나타나는 적대자들은 특이하게 보인다. 이들은 율법을 강조하였고, 할례를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유다적 배경을 가진 것으로 이해되는데, 이상한 것은 바울이 그들을 향한 비판에서 그들은 붐명히 율법을 지키지 않았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받는 박해를 면하기 위하여 할례를 강요한다(갈6,11-16)라고 그들을 공격한다. 이것에 대하여 Betz는 그들이 혼합주의적 유다교의 형태에 뿌리를 둔 유다인그리스도교 선교사라는 주장을 하였다.
우리는 약간의 연구를 통하여 바울의 적대자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바울에게 어떻게 부딪혀 왔는가이다. 그 적대자들이 하나같이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이들이 바울을 향하여 대적할 때에 바울의 정체성은 물론, 그가 정체하고 있던 그리스도 까지도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한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이 파괴될 때, 커다란 고통을 겪게 된다. 하물며 신화적 세계관에 바탕한 고대인이었던 바울에게 그리스도라는 터전이 흔들린다는 것은 우주 자체의 혼란이 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하여 완성될 세계의 완성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 된다. 따라서 바울은 선교장에서 만나는 적대자들을 향하여 그토록 무섭게 또 강하게 반대의 기치를 들었던 것이다. 그가 두 번째 고린도 방문에서 그들을 설득하는 것을 실패하였을 때, 그가 겪었을 인간적인 고통은 굉장하였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오늘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Ⅵ.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본문의 해석과 그 적용
우리는 지금까지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변호가 포함된 본문을 연구하였다. 이제 그 의미의 해석과 함께 오늘날 우리에게 던져진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바울은 그의 사도권을 변호하기 위하여 굉장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동양의 현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변호하는 것 보다 悠悠自適을 선택하였다. 우리의 시에도 있다. 은둔하는 한 사람을 향하여 누군가 "왜 사냐고" 질문을 던질 때, 그는 웃음으로만 답할 뿐이다. 이와 대조되게 바울은 굉장한 흥분과 분노로 그의 적대자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이는 우리가 식상해서 더 이상 관심도 가지기 싫어하는 정치인들의 표관리와 같이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의 그 분노와 흥분 뒤에 감추어진 인간적인 열정과 신앙의 방향은 감히 그들과 비교될 수 없을 것이다.
바울은 신화적 세계 속에 살았던 한 고대인이었다. 그런 그는 오늘의 우리와 비교하기 어려운 신의 통치에 대한 강력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회심 이전에 나사렛 분당을 학살하는 냉혹함마저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그리스도의 현현이 있은 뒤로는 그는 그리스도만을 위하여 살았다. 우리가 바울의 이야기만을 들을 수 있기에 바울만을 편들수도 있겠지만, 그의 열정은 무시하기 어렵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현현을 경험한 사도이며, 고린도교회는 그 증거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사실 그리스도를 전하는데 있어서 현대에는 특히, 강경한 자기 주장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자신의 사도직의 부인은 자신의 정체성의 상실이며 나아가 그리스도에 대한 부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직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다른 사도들이 하였던 것 같이 교회의 돈을 받아 생활하지 않았다.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될까봐 천막을 짓는 일로 생계를 이어갔다. 따라서 그가 지키기를 원하였던 것은 그가 전하던 복음이라는 것을 알 수있게 된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의 사도권은 무엇인가? 이것은 굉장한 숙제가 될 것 같아서 손대기가 싫다. 그러나 성서를 해석하는 작업은 이것까지 손대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아니 이것이 성서를 해석하는 목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얼마전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다녀왔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인종차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민족주의적 입장을 가진 사람은 이들에 대하여 호감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의 세계관 아래서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였다면, 그들을 비판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오히려 그들이 전해준 그리스도의 가슴을 가지고 그들을 한국인의 한 사람을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바울이 변호한 자신의 사도권을 공부하게 되었다. 바울의 사도권이 정말 순수한 복음의 열정에 기초된 것이기에 동양적인 유유자적(悠悠自適)인 사고에 기초한 나이지만,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된 것 같이 순수한 복음의 열정을 가진 사람은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 묘지에 누워있는 선교사들 중 일부가 가진 인종차별적인 생각까지도 같은 열정 안에서 이해하고 용납(容納)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이제 곧 목회 현장을 목전에 둔 우리에게도 자유가 중요하고 인간적인 생활이 중요하다고 하여도, 복음을 위하여서 자신의 자유를 제한한 바울과 같이 자신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복음을 위하여서 인권이 유린되는 현장이나, 정치적 술수 혹은 비리가 있는 곳에는 이들을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바울 처럼 흥분과 분노로 맞서야할 것이다. 이는 너무나 두려운 일이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전체와 맞선 것같이 우리에게도 소수가 다수를 향하여 투쟁할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글을 확신없이 쓰는 것은 아마도 이런 일이 생기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젠 정말 기도하고 싶다. "하나님, 우리의 사정으로 볼 때, 불의한 일이 없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때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십시오." 정말 사도로 혹은 목사로 또 신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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