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월드컵의 열기와 지식인의 흥분
2. 전통 생활 속에 붉은 색의 상징적 의미와 민속학의 상징연구
3. 홍등가와 붉은 연애:일제 강점기에 형성된 붉은 색의 새로운 상징적 의미
4. 레드 콤플렉스와 붉은 악마:전후(前後) 붉은 색의 상징적 의미
5. 우리 삶의 변화와 붉은 색의 의미 변화
2. 전통 생활 속에 붉은 색의 상징적 의미와 민속학의 상징연구
3. 홍등가와 붉은 연애:일제 강점기에 형성된 붉은 색의 새로운 상징적 의미
4. 레드 콤플렉스와 붉은 악마:전후(前後) 붉은 색의 상징적 의미
5. 우리 삶의 변화와 붉은 색의 의미 변화
본문내용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폭력을 자기정체성의 특징으로 간주하는 청소년들의 인식체계를 붉은 악마의 붉은 색과 연관시켜 생각할 수는 있는 것이 붉은 악마가 그들의 정체성을 표시하는 상징으로 치우천왕을 선정한 배경이다.
치우천왕의 존재는 환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三聖記)에 실리면서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삼성기에 묘사된 치우천왕은 환웅천왕이 건국했다는 배달국(倍達國)의 14대 왕으로 BC 2707에 즉위하여 109년간 통치하였다고 한다. 치우천왕의 존재는 우리나라의 문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중국 문헌에도 자주 언급되는데 주로 중국 북부지방의 군주로 알려져 있고 한나라의 시조 유방(劉邦)은 전쟁에 앞서 치우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또한 이 시대에는 치우를 위한 사당까지 세웠다. 또한 제(濟)나라의 군신으로 추앙을 받았다. 두 나라의 고문헌에 묘사된 치우천왕은 매우 용맹하고,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하고 있으며 전쟁을 매우 잘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치우천왕은 고구려, 신라, 백제의 왕능에 외형적 모습으로 전승되었고 그리고 민간신앙에 벽사의 존재로 전승되었다고 한다. 일부 학자는 도깨비도 치우천왕의 전승과정으로 보았다. 그러나 치우천왕이 우리나라를 수호한 신 혹은 민간신앙에서 벽사의 상징으로 전승되었다는 구체적인 문헌자료는 없다. 치우천왕의 존재가 다시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80년대 일부 역사소설과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만화에 주요 등장인물로 묘사된 이후이다. 소설과 만화에서 전쟁의 신이며 민족의 수호신으로 간주되는 치우천왕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80년대 이후 우리의 민족 성격에 관한 논쟁과 매우 연관이 있다.
기존에 역사담론에서는 우리 민족의 특성을 우리 스스로가 백의민족으로 간주하여 남을 한 번도 침범하지 않은 '순한민족'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경제적 성장으로 우리 것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증대되면서, 많은 지식인들이 우리 것에 대한 연구를 하였고 또한 시장에서도 우리 전통 음식을 이용한 상품이 많이 등장하게 되었다.
권숙인, 「소비사회와 세계체제 확산 속에서의 한국문화론」, 『비교문화연구』 4호, 1998, 181-214쪽.
80년대 우리나라의 '우리 것 찾기' 열풍에 참여한 지식인들 중에 일부는 기존의 순한민족으로서 민족특징에 대하여 불만을 가졌고, 이들은 주로 우리 고대사 혹은 연개소문과 같이 중원지방을 지배한 인물에 관하여 연구하거나 역사소설 혹은 만화 등의 창작활동을 통하여 그들의 생각을 표현하였다. 치우천왕이 등장하는 만화로는 이현세의 '천국신화'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이현세라는 저명한 만화가에 의하여 그려진 작품일 뿐만 아니라 이 외설시비를 불러 일으켜 관으로부터 판매중지를 받았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하여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천국신화를 통하여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치우천왕이 붉은 악마의 상징으로 사용된 시기는 1999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일본축구국가대표 응원팀인 'ultra nippon'이 결성되어 왕성한 활동을 하던 시기였고 그들의 상징인 일본 신화 속 동물 '삼족오(야차가라스)'가 붉은 악마에게 알려졌던 시기였다. 당시 상황과 한국과 일본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하여 볼 때, 붉은 악마는 일본의 삼족오와 같이 고대 신화세계에 존재하는 동물이나 인물 중 붉은 악마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대상으로 치우천왕을 선정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가정은 붉은 악마라는 모임이 기본적으로 청소년들의 하위문화이며 주로 공격적인 대상을 모임의 상징으로 하는 축구 응원단의 특성과 연관지어 볼 때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5. 우리 삶의 변화와 붉은 색의 의미 변화
이번 월드컵은 축구발전사 이외에 국민축제 특히 청소년과 여성들이 주축이 된 응원문화가 형성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 중에서 주목되는 현상 중에 하나가 대부분의 국민이 붉은 색의 옷을 입고 응원하였다는 점이다. 본 논문은 월드컵에 수많은 국민들이 붉은 색 옷을 착용하고 응원한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기 위하여 붉은 색의 의미변화를 주로 우리 현대사와 연관하여 기술하였다.
우리 전통문화가 일제 식민지정부의 정책으로 인하여 왜곡되게 변화되기 이전 붉은 색은 종교적 혹은 부정과 벽사 등의 주술적 의미로 사용되었고 특정 계급의 상징으로 이용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붉은 색은 매춘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나타내는 상징 그리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에 관심이 많은 지식인 노동자들의 상징으로 이용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붉은 색의 전승을 계속되었다. 우선 붉은 색은 정치 현장에서 격퇴되어야 할 적군의 상징 악용되어 국민들의 불안감을 주었던 부정적인 색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붉은 색은 80년대 후반 문화운동을 주도한 지식인들로부터 그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색으로 간주되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준 새로운 전승현장을 찾았다. 긍정적인 상징으로 붉은 색은 축구국가대표팀의 정식 서포터인 붉은 악마에서도 계속 진행된다. 그러나 문화운동권 지식인들이 의미부여한 붉은 색과는 달리 붉은 악마의 붉은 색은 반항적이고 폭력적인 청소년들의 하위문화를 나타내는 색으로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본 논문에서 우리 역사에 붉은 색은 민족문화의 지속성을 보여주는 상징에서 정치상황 그리고 새롭게 형성된 다양한 문화들을 나타내주는 상징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기술하였다. 그러나 본 논문의 진정한 목적은 상징으로서 특정 색의 변화과정을 분석하려는 것이 아니고 붉은 색의 전승현장들을 통하여 우리 삶의 변화과정을 분석하고자 했다. 이를 위하여 일제 강점기 이후 붉은 색과 관련된 집단을 우리의 새로운 정치·사회·문화적 상황과 연관하여 분석하였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 상징 개념에 대한 연구자의 명확한 정의가 없는 상태에서 붉은 색을 상징으로 규정하여 의미변화를 이야기하였다. 또한 민간신앙과 같이 붉은 색의 전통적인 상징의미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전승현장에 대한 현지조사가 없는 상태로 민속학의 상징연구의 문제점을 지적하였으며 붉은 색과 연관된 다양한 집단 중에 특정 대상을 선정한 이유를 밝히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는 연구자 역시 월드컵 후유증에서 못 벗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치우천왕의 존재는 환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三聖記)에 실리면서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삼성기에 묘사된 치우천왕은 환웅천왕이 건국했다는 배달국(倍達國)의 14대 왕으로 BC 2707에 즉위하여 109년간 통치하였다고 한다. 치우천왕의 존재는 우리나라의 문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중국 문헌에도 자주 언급되는데 주로 중국 북부지방의 군주로 알려져 있고 한나라의 시조 유방(劉邦)은 전쟁에 앞서 치우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또한 이 시대에는 치우를 위한 사당까지 세웠다. 또한 제(濟)나라의 군신으로 추앙을 받았다. 두 나라의 고문헌에 묘사된 치우천왕은 매우 용맹하고,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하고 있으며 전쟁을 매우 잘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치우천왕은 고구려, 신라, 백제의 왕능에 외형적 모습으로 전승되었고 그리고 민간신앙에 벽사의 존재로 전승되었다고 한다. 일부 학자는 도깨비도 치우천왕의 전승과정으로 보았다. 그러나 치우천왕이 우리나라를 수호한 신 혹은 민간신앙에서 벽사의 상징으로 전승되었다는 구체적인 문헌자료는 없다. 치우천왕의 존재가 다시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80년대 일부 역사소설과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만화에 주요 등장인물로 묘사된 이후이다. 소설과 만화에서 전쟁의 신이며 민족의 수호신으로 간주되는 치우천왕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80년대 이후 우리의 민족 성격에 관한 논쟁과 매우 연관이 있다.
기존에 역사담론에서는 우리 민족의 특성을 우리 스스로가 백의민족으로 간주하여 남을 한 번도 침범하지 않은 '순한민족'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경제적 성장으로 우리 것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증대되면서, 많은 지식인들이 우리 것에 대한 연구를 하였고 또한 시장에서도 우리 전통 음식을 이용한 상품이 많이 등장하게 되었다.
권숙인, 「소비사회와 세계체제 확산 속에서의 한국문화론」, 『비교문화연구』 4호, 1998, 181-214쪽.
80년대 우리나라의 '우리 것 찾기' 열풍에 참여한 지식인들 중에 일부는 기존의 순한민족으로서 민족특징에 대하여 불만을 가졌고, 이들은 주로 우리 고대사 혹은 연개소문과 같이 중원지방을 지배한 인물에 관하여 연구하거나 역사소설 혹은 만화 등의 창작활동을 통하여 그들의 생각을 표현하였다. 치우천왕이 등장하는 만화로는 이현세의 '천국신화'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이현세라는 저명한 만화가에 의하여 그려진 작품일 뿐만 아니라 이 외설시비를 불러 일으켜 관으로부터 판매중지를 받았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하여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천국신화를 통하여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치우천왕이 붉은 악마의 상징으로 사용된 시기는 1999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일본축구국가대표 응원팀인 'ultra nippon'이 결성되어 왕성한 활동을 하던 시기였고 그들의 상징인 일본 신화 속 동물 '삼족오(야차가라스)'가 붉은 악마에게 알려졌던 시기였다. 당시 상황과 한국과 일본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하여 볼 때, 붉은 악마는 일본의 삼족오와 같이 고대 신화세계에 존재하는 동물이나 인물 중 붉은 악마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대상으로 치우천왕을 선정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가정은 붉은 악마라는 모임이 기본적으로 청소년들의 하위문화이며 주로 공격적인 대상을 모임의 상징으로 하는 축구 응원단의 특성과 연관지어 볼 때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5. 우리 삶의 변화와 붉은 색의 의미 변화
이번 월드컵은 축구발전사 이외에 국민축제 특히 청소년과 여성들이 주축이 된 응원문화가 형성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 중에서 주목되는 현상 중에 하나가 대부분의 국민이 붉은 색의 옷을 입고 응원하였다는 점이다. 본 논문은 월드컵에 수많은 국민들이 붉은 색 옷을 착용하고 응원한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기 위하여 붉은 색의 의미변화를 주로 우리 현대사와 연관하여 기술하였다.
우리 전통문화가 일제 식민지정부의 정책으로 인하여 왜곡되게 변화되기 이전 붉은 색은 종교적 혹은 부정과 벽사 등의 주술적 의미로 사용되었고 특정 계급의 상징으로 이용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붉은 색은 매춘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나타내는 상징 그리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에 관심이 많은 지식인 노동자들의 상징으로 이용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붉은 색의 전승을 계속되었다. 우선 붉은 색은 정치 현장에서 격퇴되어야 할 적군의 상징 악용되어 국민들의 불안감을 주었던 부정적인 색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붉은 색은 80년대 후반 문화운동을 주도한 지식인들로부터 그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색으로 간주되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준 새로운 전승현장을 찾았다. 긍정적인 상징으로 붉은 색은 축구국가대표팀의 정식 서포터인 붉은 악마에서도 계속 진행된다. 그러나 문화운동권 지식인들이 의미부여한 붉은 색과는 달리 붉은 악마의 붉은 색은 반항적이고 폭력적인 청소년들의 하위문화를 나타내는 색으로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본 논문에서 우리 역사에 붉은 색은 민족문화의 지속성을 보여주는 상징에서 정치상황 그리고 새롭게 형성된 다양한 문화들을 나타내주는 상징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기술하였다. 그러나 본 논문의 진정한 목적은 상징으로서 특정 색의 변화과정을 분석하려는 것이 아니고 붉은 색의 전승현장들을 통하여 우리 삶의 변화과정을 분석하고자 했다. 이를 위하여 일제 강점기 이후 붉은 색과 관련된 집단을 우리의 새로운 정치·사회·문화적 상황과 연관하여 분석하였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 상징 개념에 대한 연구자의 명확한 정의가 없는 상태에서 붉은 색을 상징으로 규정하여 의미변화를 이야기하였다. 또한 민간신앙과 같이 붉은 색의 전통적인 상징의미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전승현장에 대한 현지조사가 없는 상태로 민속학의 상징연구의 문제점을 지적하였으며 붉은 색과 연관된 다양한 집단 중에 특정 대상을 선정한 이유를 밝히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는 연구자 역시 월드컵 후유증에서 못 벗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