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스미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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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시대적 배경

2. 스미스의 생애

3. 스미스의 경제사상

4.스미스의 경제이론
(1)분업론
(2)화폐론
(3)가치론
(4)분배론
(5)자본론
(6)경제학사
(7)재정학

5.스미스가 높게 평가받는 이유

6.스미스의 공과

*참고자료

본문내용

도가 되었다. 만약 오늘날의 경제학자가 스미스와 같이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었다면, 경박한 언론인 정도로 일축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의사들은 의사들대로 자신의 전문영역을 보호하기에 급급하다. 의사들이 처방전을 쓰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암호를 사용한다. 비타민이나 아스피린이라도 그것을 암호약자나 라틴어로 쓰면 아무리 유식한 사람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른 분야에도 이와 같은 전문적 상투용어의 남용과 횡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공학도들의 경우에도 자기네들만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약자들을 사용하여 남들이 못 알아듣도록 이야기하는데, 사실 풀어서 얼마든지 평이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다.
가장 근접한 경영학과 경제학을 보더라도 서로 배타시하는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제학계에 경영학을 하는 사람이 들어오면 이단시하는가 하면, 경영학계에 경제학을 하는 사람이 들어오면 이단시한다. 생물학, 화학이나 인류학, 역사학은 더욱 배타적이며, 의학계에서도 그러한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세상에 자기 분야의 진리를 모두 독점하였는데 누가 감히 이를 언급할 수 있는가라는 식의 논리를 펴는 것이다. 이것은 독선도 보통 독선이 아니다. 그러나 그 전공영역의 보호에서만은 다른 학자들이 모두 다 보조를 맞추기 때문에 학문이 종합되기 어렵고 제 각기 단편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현대의 학자들은 눈을 가리고 연자방아를 돌리는 노새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하겠다. 현대의 학자들은 자기 앞의 좁은 지식만 앵무새처럼 읊으면서 사는 지식노동자로 전락한 것이다. 지식용달차의 운전사로서 운전하는 대상만 보이지 않을 따름이다.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공의 장벽을 무너뜨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난 300여년 동안에는 불행하게도 학문이 계속 세분되기만 하였으나, 이제 모든 학문은 집대성되어야 하고, 재편성되어야 한다.
옛날에는 하나였던 것이 10∼20가지 분야로 세분된 것도 있다. 경제학도 세분되었다. 경제학이 그러하니 사회과학에서 자연과학에 이르는 모든 분야의 학문영역이 계속 토막질당하는 것이 이해된다. 그러나 스미스 때는 그러기 직전의 마지막 황금기였다. 그 때만 하더라도 백과사전학파가 그 존재이유를 명백히 하고 있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의학 등 모든 학문을 다 알아서 삼라만상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 그리하여 인간과 그들의 관계를 정립시키고 체계화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스미스도 자유롭게 어느 분야든지 다룰 수 있었다.
스미스는 깊은 역사적 기초를 가진 것 같지는 않지만 그의 주장을 피력하기 위해 갖가지 역사적 사례를 들고 있다. 아프리카의 왕이 어떻게 생활하고, 유럽의 귀족들이 예전에는 어떻게 교역을 하였다는 등 갖가지 동양사의 상식을 늘어놓고도 그는 비난받지 않았다. 그것은 시대적 풍토와 분위기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부론」에서는 식민지 문제도, 교육의 문제도 다룰 수 있었다. 스미스는 대학교수의 봉급은 수강학생수에 비례해서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그 당시 옥스퍼드 대학은 폐쇄적이고 학문적으로 침체되어 교수나 학생이나 연구도 게을리 하고 별로 강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미스가 이러한 주장을 한 것 같다. 아마 우리 나라의 60년대까지의 대학과 같았던 모양이다. 요즘 경제학 책에서 그런 이야기를 다룬다면, 저 녀석이 무엇을 안다고 그러는가 하고 당장에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는 그런 것을 관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러므로 스미스는 은행제도와 고리대금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항만공사·도로·세금문제도 다루고, 심지어 빈민구제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를 총망라해서 다루었다. 결국 시대적인 분위기가 스미스의 공헌을 크게 만든 것이다.
둘째, 이론을 논리정연하게 체계화시킨 것이다. 스미스 이전에도 스미스가 다루었던 문제를 산발적으로 다룬 사람은 많았다. 깐디옹(Cantillon), 페티(William Petty)는 이러한 문제들을 세밀하게 다루었으나, 스미스는 그 이론을 논리정연하게 체계화시켰다. 「국부론」이 널리 읽혀지게 된 것은 스미스가 이 책을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가지고 서술하였고, 똑같은 사실도 종합적으로 잘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이기주의를 정당화시키고 인간의 본능을 긍정적으로 용납했다는 것이 가장 뛰어난 공로이다. 스미스는 자본축적을 권장하였고, 절약·절감과 미덕으로 삼도록 하였다. 지금은 이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그 당시 사회적 관념으로는 납득이 안돼는 일이었다. 역사적 사실이나 과거의 이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상황을 재현해서 생각하여야 한다. 오늘날에 비추어서 그것을 평가해서는 안돼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절약·절감하는 것이 당연한데 이를 주장한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기술과 생산이 정체된 옛날에는 단순재생산만이 계속되었으므로 토지를 확보하고 있는 귀족들은 소득이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근검·절약하고 저축하기보다는 허세를 부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말하자면 귀족들의 실력가늠이 허세부리고 사치하는 데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나머지 대중은 생존에 급급할 정도의 극빈한 상황이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절약·절감이 미덕이며 또한 축적해야만 경제가 발전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은 뛰어난 발상인 동시에 사회개혁에 있어서 크게 기여한 것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신흥 자본가계급들은 그의 주장을 열광적으로 지지하였다. 스미스의 사상은 19세기의 시대정신으로서 영국을 비롯한 유럽사화가 발전하는 데 있어서 안내역할을 하였다.
* 참고자료
☞ 주명건, 「경제사상사」(History of Economic Thought), 박영사(1984)
☞ 주명건, 「새 경제학원론」, 박영사(1982)
☞ 유시민,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푸른나무(1992)
☞ 토드 부트홀츠, 이승환 譯, 「죽은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김영사(1994)
☞ Adam Smith, 신상준 譯,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 성창출판사
☞ 케네반, 권양언 譯, 「경제학설사입문」, 비봉출판사(1989)
  • 가격2,000
  • 페이지수22페이지
  • 등록일2003.11.09
  • 저작시기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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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3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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