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으로 본 마호메트의 삶과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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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지상에서 보낸 마지막 하루

2. 마호멧의 삶과 사상

3. 같은 조상에서 나온 두 민족

4. 마호멧의 탄생

5. 이슬람교의 탄생

6. 이슬람 국가의 탄생

7. 마호멧과 가브리엘

본문내용

울 흘리지 않고 메카를 정복했다.
열한 번이 넘는 결혼도 정책적인 그의 능력을 보여주는 좋은 실례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이샤와의 결혼이었다. 아이샤는 겨우 세 살짜리 갓난 아기에 불과하던 때에 그의 아내로 내정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마호메트의 추종자요 친구였던 아부 바크르였다. 침착하고 사리에 밝으며 내조형인 아부 바크르는 마호메트 사후 자멸할 수 있었던 이슬람을 구해낸 인물이었다. 아부 바크르의 뒤를 이어 칼리프가 된 오마르는 이슬람 국가를 확실한 반석 위에 올려놓고 만방에 위세를 떨쳤다. 외향적인 그의 용맹성과 결단성은 마호메트 생전에도 큰 힘이 되었다. 마호메트는 그의 딸 하프사와도 결혼을 했다. 그리고 마호메트는 이미 이슬람교를 택해 메디나에 와 있던 아브 수피안의 딸을 메카정복 직전 아내로 맞아들임으로써 메카 최고의 집안과 관계를 맺는다. 이렇듯 마호메트가 다혼을 한 데는 뜨거운 사막의 본능과 모성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고아로써의 보상심리도 작용했겠지만 그보다는 정략적인 판단이 앞섰을 것이다.
마호메트의 천재성은 그밖에도 여러 면에서 드러난다. 그 중 한 가지는 그가 오랜 기간에 걸쳐 신에게서 받은 방대한 양의 계시를 글이 아니라 낭송으로 전했다는 점이다. 일설에 의하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마호메트는 문맹이었지만 히라산에서 처음 계시를 받는 순간 단박에 글을 깨쳤다고 한다. 다른 한 가지는 그가 혈연공동체의 한계를 직시하고 새로운 신앙공동체의 모델을 적시했다는 점이다. 이를 토대로 그는 혈연단위의 부족들을 헤쳐 모아 불모의 사막 위에 단일한 신앙을 가진 중앙집권적인 이슬람 국가를 창설했다. 그가 만약 공동체를 구상하지 않고 신앙만을 전파할 목적이었다면 그 역시 다른 종교적 성인들처럼 순교자로 생을 마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천우신조라고 할 수밖에 없는 천운에 대해 말하지 않고서는 마호메트의 운명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선 손꼽을 수 있는 것이 메디나 이주였다. 메디나의 아랍 부족들은 그곳에 함께 살고 있는 유대인들로 인해 일찌감치 일신교에 물들어 있었고 덕분에 유일 신앙을 전도하는 마호메트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주를 모색한 것은 마호메트의 판단력에 기인하지만 만약 메디나가 이주를 받아주지 않았다면 그의 종교적 운명은 메카에서 끝이 났을지 모른다.
마호메트가 메카의 쿠라이시족 출신이라는 점도 큰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성지 메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는 다양한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었고 결국 그것이 새로운 사상과 신앙에 일찍 눈뜨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만약 그가 다른 지역에서 태어났다면 종교 문제에 그토록 깊이 천착할 수 있는 기회가 아예 없었거나 있었다 하더라도 시기적으로 늦춰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메카를 무혈정복할 수 있었던 것도 마호메트가 쿠라이시족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그가 비메카인이었고 비쿠라이시족이었다면 혈연공동체이자 운명공동체인 메카인들은 끝까지 항전했을 것이고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과 복수전이 반복됐을 것이다.
그렇지만 마호메트에게 있어 가장 큰 천운은 뭐니 뭐니 해도 가브리엘과의 만남이었다. 고아로 자란 마호메트의 성격은 온순하고 순종적인 편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그는 가정에 안주해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동굴을 찾아 명상수행을 하더니 어느 날 믿기지 않는 사건의 주인공이 되어 돌아왔다. 성령이 그에게 임했다는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평범한 상인에 불과하던 마호메트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했다. 불가사의한 행동, 불꽃 튀는 영감, 불혹의 나이에 인생을 건 도전 그리고 불패를 모르는 승부사적 기질…….
마호메트는 자신이 체험한 성령을 가브리엘이라고 믿었다. 사실 그것이 가브리엘인지 미카엘인지 사막의 진인지 환영인지 아니면 자기암시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런데 마호메트는 그 신비한 대상을 가브리엘이라고 믿었다. 그렇다. 사람들이 그것을 가브리엘로 보느냐 보지 않느냐, 그의 말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마호메트가 그것을 가브리엘이라고 믿었다는 사실이다.
그 때부터 마호메트의 인생은 가브리엘과 함께였다. 잘 때도, 깰 때도, 말할 때도, 생각할 때도 머릿속에는 온통 가브리엘뿐이었다. 가브리엘의 목소리, 가브리엘의 모습, 가브리엘의 계시에 사로 잡혔다. 가브리엘에 대해서 상상하고, 생각하고, 추측하면서 마호메트의 인생은 완전히 가브리엘로 바뀌었다. 자기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그에게 행동수칙이 선 것이다. 가브리엘이 전한 하나님의 진리야말로 정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리를 위한 행동은 정의로운 행동이었고 하나님의 진리를 위한 투쟁은 정의로운 투쟁이었다.
가브리엘 역시 수시로 마호메트에게 나타나 영감과 잠재력을 촉발시켰다. 잠을 자는 중에도, 기도를 하는 중에도, 명상을 하는 중에도 마호메트가 혼자 있기만 하면 어디든 찾아 와 계시를 내렸다. 그리고 마호메트의 간절한 고백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백척간두의 고비마다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신도조직이 와해되려 할 때도, 가문에서 파문되었을 때도, 전투에서 승리를 놓쳤을 때도, 그의 운명이 목전에 달했을 때도 가브리엘은 끝까지 마호메트를 포기하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서서히 그를 이슬람의 최정점으로 이끌어 주었다. 그런 가브리엘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마호메트는 없었을 것이다.
한데 이생의 만남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서기 632년 5월 말경, 메카순례를 마치고 메디나로 돌아온 마호메트는 병에 걸려 자리에 눕고 만다. 고열과 두통에 시달리며 열흘이 넘도록 차도가 없던 그는 6월 8일 아침 잠시 기력을 회복하는가 싶더니 오후 들어 상태가 더욱 악화됐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모두 내쳤다. 사랑하는 아이야사만이 그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승의 눈을 감고 저승의 눈을 뜨려는 순간, 그가 마지막으로 찾은 이는 가브리엘이었다.
또다시 고아가 될 수는 없었다. 삶의 계시를 주었다면 죽음의 계시도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신기루 같은 인생이 막을 내리고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지고한 동반자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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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3페이지
  • 등록일2003.11.17
  • 저작시기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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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3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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