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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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친일파 인물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이병도
2. 신석호
3. 이선근
4. 장 면
5. 방응모
6. 이광수
7. 홍난파
8. 노덕술
9. 최린
10. 김활란

Ⅲ. 결 론

본문내용

펜, 아니 무력함 정도를 넘어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한 펜이 어떤 죄악을 낳을 수 있는지를 보았다.
그리고 언론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번쯤 우리에게 '민족 언론'이 있었는가라는 의문을 품어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시 언론계에 몸담고 있던 사람들의 행적을 뒤쫓다 보면 이들에게 있어 '민족'이라는 개념은 일제의 '내선일체' 사상에 뿌리를 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하는 것 같다.
우리가 머리 속에 홍난파를 떠올릴라치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짚히는 것이있다. 어린 시절 누구나 불러 보았던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산골..."의 고향의 봄이나,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의 봉선화 등의 작곡가라는 점이다. '고향의 봄'은 이제 7천만 남북 한민족의 국가로까지 자리잡은 애창곡이 돼쏙, 암울했던 시절 민족의 한을 묘사한 '봉선화'도 모두의 노래가 된지 이미 오래다. 더욱이 [봉선화]는 담 밑에 외롭게 피어 있는 꽃과 같은 일제하 조국의 비운을 상징한다고 음악선생님께 배운 적인 있다. 그래서 홍난파는 '민족적 수절을 지킨 음악가'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홍난파가 친일파에 속한다는 것은 이번 과제를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고 적잖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나는 홍난파의 생애와 친일 행각을 보면서 앞의 인물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사상전향서도 썼고, 일본의 만주침공과 함께 추진된 문화 동원 시기에 전쟁을 독려키 위한 군가를 편 것도 사실이지만 친일행적은 그것대로, 노래업적은 업적대로 따로 선을 긋고 넘어가자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를 보며 순수 음악 운동이 왜 식민지하에서 허구가 되며 그 빛을 바랄 수 없는지를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에서 양심수들이나 시국사범 심지어는 일반 피의자들에게까지 사용되고 있는 이러한 한국 경찰의 고문치사의 악습은 조선인 고문기술자들을 길러낸 일제 고등경찰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노덕술은 반민특위 활동을 저지시키려는 활동을 전개할 정도로 해방 후 이승만 정권하에서 거물급 경찰 간부였으며 그의 고문은 악명이 높았다. 또한 일신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서는 시류와 권력이 바뀔 때마다 재빨리 변신하고 권력자에 빌붙어 갖은 방법으로 충성을 맹세하는 그런 인간이었다. 자신의 죄상이 드러나게 될 때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으로 은둔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자신의 출세에 불리한 인물들의 암살을 기도할 정도로 불굴의 공격성을 가지고 있었기도 하였고 말이다.
민주주의와 진정한 치안을 위해 경찰에 투신하였던 최능진과 같은 인물에 가까이 가지는 못할지라도, 일제의 권력이 영원할 줄 알았었다는 최린의 솔직한 고백이나, 말단 순사를 지냈을지라도 자신의 과거의 행위를 부끄러워하여 반민특위에 자수하였던 무명 경찰의 회개와 같은 인간으로서의 한가닥 양심의 흔적조차 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움이 생긴다.
이화여대가 「우월 김활란상」을 제정키로 한데 대해 상 제정의 취소를 요구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나 역시도 대학에서 총장을 지내며 몇가지 공을 세웠다고 하여 민족을 배반한 결정적 과오를 보상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터무니 없는 생각이라고 본다. 어느 독립된 나라에서 식민권력에 아부한 이를 기리는 상이 제정될 수 있단 말인가!!
교육계에 종사한 김활란의 친일행위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그저 보고 따르는 스승이었기에 악영향은 상대적으로 더욱 큰 것이었을 것이다. 경찰이나 군대·행정기관에 소속되어 직접 항일운동가와 민족성원을 탄압한 이들과는 다르지만, 문화·교육가로서의 역할이 결코 가벼울 수는 없는 만큼 그가 민족사에 남긴 오점은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 국민의 성향을 보면 안 좋은 일, 부끄러운 기억은 되도록 외면하려고만 한다. 그런 맥락에서 일제에게 침략 당한 36년을 부끄러이 여기며 이를 덮어두려고 한다. 하지만 진정 부끄러운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일제에게 침략당한 36년이 부끄러운 것일까?? 아니면 침략기간동안 친일을 자행하며 같은 민족을 궁지로 몰아넣은 친일파들을 독립이 되고 난 이후에도 그 죄를 묻지 못하고 기득권세력을 탈바꿈해 여전히 국민위에 군림하고 있는 이 현실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일까??
그 처리에 있어서 프랑스와 비교를 해 본다면 프랑스는 4년여 동안의 나치점령시기, 역사로부터 떼어내고만 싶은 암울했던 점령기를 과거에 대한 준엄한 심판과 처단을 통하여 극복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국민들은 2차 대전후 나치에 부역한자들을 가차없이 때려 죽였다. 정식 재판이 열리기 전에 성난 프랑스 국민에 의해 처단된 숫자가 어림으로 일만명에서 십만명이라 하는데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 한다. 단 몇년 동안 나치 앞잡이 노릇을 했거나 협력한 배신자들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단죄였다. 광복후 왜놈의 앞잡이가 되어 우리 민족 말살에 앞장섰던 친일 반역자들을 처단은 고사하고 단 한명도 처벌하지 못한 우리를 생각해 본다면 한심하기 짝이없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며 이것은 분명 우리 시대의 부끄러움이자 수치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민족의 역사는 민족의 뿌리이다. 뿌리가 깨끗하게 정리되지 않으면 나무가 푸르싱싱하게 자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의 역사가 깨끗하게 정리되지 않고서는 우리 민족의 새로운 희망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앞에서 이야기한 친일행위자들을 우리 민족사에서 깨끗이 청산하는 것은 더 미룰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사명임을 알고 친일파 청산을 통해서 역사의 정의와 올바른 역사 인식에 바탕을 둔 건강한 민족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 참고문헌
·반민족문제연구소, 1993. 친일파 99인 1,2,3권. 돌배게, 287pp.
·반민족문제연구소, 1994. 청산하지 못한 역사 1,2,3권. 청년사, 352pp.
·http://www.banmin.or.kr/ 민족문제연구소
·http://bluecabin.com.ne.kr/split99/ 친일파 99인
·http://kr.encycl.yahoo.com/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http://www.coo2.net/html/ 우리 역사의 진실
·http://www.hani.co.kr/ 인터넷 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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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0페이지
  • 등록일2003.11.24
  • 저작시기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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