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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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心礎石) 위에서 발견된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百濟昌王銘石造舍利龕)에는 예서풍의 해서체로 ‘백제창왕십삼년태세재정해매형공주공양사리(百濟昌王十三年太歲在丁亥妹兄公主供養舍利)’라는 명문이 각자(刻字)되어 있어 사찰의 창건연대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형태가 독특하여 3국시대 사리장치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 시기의 회화로서는 부여 부소산사지 금당의 벽면에 까치인 듯한 새와 초화류가 그려진 것과 익산 미륵사지에서 발견된 대나무가 그려진 벽화조각, 그리고 부여 능산리의 벽화고분이 있다. 능산리의 석실분(石室墳)에는 네 벽의 사신도(四神圖)와 천장에 연화(蓮花)와 구름무늬가 그려졌으나 현재는 거의 없어져 백호(白虎)의 머리부분과 연화문(蓮花文)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연화는 백제 특유의 부드러운 형식이고 운문(雲文)은 비운(飛雲)인데 꼬리가 길게 끌린 양식이 연판의 형식과 더불어 고구려와의 연관을 느끼게 한다.
6세기 중엽에는 와당(瓦當) 제작기술이 높은 수준에 도달하여 3명의 와박사(瓦博士)를 일본에 파견하기도 하였다. 이 와당에는 연화문(蓮花文)이 주로 사용되었으나 그 표현은 다양하고 온화하다. 미륵사지·금강사지 등에서 발견된 연화문 연목과, 부여 가탑리 출토의 귀면문 연목와 등은 고구려나 신라에서는 볼 수 없는 극히 아름다운 표현이다. 또 미륵사지에서는 최근에 녹유(綠釉)를 시유한 와당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매우 주목되는 와당이다. 부소산사지의 망새( 尾)는 높이가 91.5㎝로 지붕의 용마루 양쪽 끝을 장식하는 기와인데 웅장함과 위엄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벽사( 邪)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백제의 벽돌(塼)은 묘실 축조로 사용되고 있다. 이 벽돌의 표면에는 기하학적인 문양과 연화·인동문 등이 조각되었는데 그 표현 수법은 다른 유물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온건·우아한 품위가 나타난다. 이 형식은 중국 남조의 연화문이 있는 구형전의 형식과 통하는 것이며 이러한 전으로 축조한 묘실의 내부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백제의 전으로는 이 밖에도 부여에서 발견된 연화·인동문의 상형전(箱形塼)과 부여 규암면 외리(外里) 출토의 산경문전(山景文塼)을 비롯한 방형 문양전이 유명하다.
부여읍에서 발견된 사택지적당탑비(砂宅智積堂塔碑)는 높이가 1.09m로 행서풍의 해서체로 쓰여진 중국 6조시대(六朝時代)의 사륙병려체 문장으로 당탑을 세운 동기와 감정이 잘 표현되어 있는 백제인의 문장과 서예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금석문 자료이다.
참고문헌 풍납토성 Ⅰ-현대연합주택 및 1지구 재건축 부지(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한국사 8-삼국의 문화(국사편찬위원회, 1998), 百濟 美術의 對外交涉(圖書出版 藝耕, 1998), 新版 韓國美術史(金元龍·安輝濬, 1996), 百濟의 歷史(忠淸南道·公州大學校 百濟文化硏究所, 1995), 百濟의 宗敎와 思想(忠淸南道, 1994), 百濟 佛敎文化의 硏究(忠南大學校 百濟硏究所, 1994), 百濟 考古學硏究(尹武炳, 1992), 百濟의 彫刻과 美術(公州大學校 博物館, 1992), 韓國美術史(金元龍, 1980)

키워드

백제,   삼국,   문화,   이해,   신라,   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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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5.22
  • 저작시기2004.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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