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행과 공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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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령선거 후보 결정되는 시기까지 권력투쟁
① 합당 이전과 이후 집권당 내에서는 민정계 내의 명시적인 분열 발생 - 김영삼과의 연합 속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 보전하려는 세력과 김영삼 집권 후의 '거세'를 우려하면서 김영삼의 대권장악을 거부 저항하는 그룹으로 분화, 합당 후 내부 반발이 점차 확산되었다.
② 내각제 파기
내각제 합의는 밀실 합의과정에서 합당의 핵심 합의사항이었는데 국민들 사이에 공개화되어 비난이 높아지자 김영삼은 내각제 합의 자체를 파기하게 된다.
③ 김영삼 대선후보 결정과정은 제 3세계의 일반적인 경우와 상이한 양상을 띠게 됨.
- 군부세력의 타협은 기본적으로 군부세력의 기득과 정치적 입지를 보장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나, 기득권을 보전하는 제도적 형식인 내각제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파기되어 따라서 밀약적 타협의 내용이 부정되는 기조 위에서 현실화되어 갔다는 특징이 있다.
♣ 대통령선거 후보 결정 후 대통령선거까지 권력투쟁
군부세력이 퇴임 후 신분보장과 기득권 보장에 대한 제도적인 안전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핵심쟁점. 더구나 김영삼측과 노태우 대통령측의 갈등심화
1992년 9월 노태우의 민자당 탈당, 10월 민정계 대표격인 박태준의 민자당 탈당 등
① 민정계 일부의 민자당 탈당과 '신한국당'의 창당 (반김영삼 연합세력 중 일부가 이종찬을 중심으로 탈당하여 창당) - 3당 협상으로 구체화된 군부집권당과 온건야당의 재집권에 대한 군부집권당 내의 분열현상
② 군부정권하에서 지배진영의 주요세력으로서 독점자본 분파의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의 시도로서 통일국민당의 창당
=> 3당합당이라는 재집권연합의 인위적인 형성 후 지배진영 내부의 권력투쟁의 격화, 민정계 일부의 탈당 및 반대정당의 창당, 일부 독점자본 분파의 독자적 분립으로 인하여, 김영삼의 집권이 순조로운 과정이 아니었던 만큼, 집권 이후 구지배세력이 갖는 발언권과 규정력을 현저하게 약화시키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위로부터 민주화가 어떻게 성공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야당 및 운동진영의 동태를 중심으로 설명
① 3당합당으로 인한 계급적 역관계, 정치사회적 영역에서 역관계의 변화를 직시하고 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함
- 지배권력의 입장에서는 내부의 권력투쟁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지도자인 김영삼 후보를 내세움으로써 집권당의 조직적 지지표 외에, 중산층의 표, 부산, 경남의 표를 획득할 가능성을 높이는 지배진영의 자기희생적, 혁명적 지형변화의 시도였는데 이를 직시하지 못하였다. 야당 후보인 김대중은 '뉴DJ플랜'이라는 이미지 제고 노력 이외에는 별다른 '변혁적' 방법을 구사하지 못하는 소극적 선거전략을 구사했다고 생각된다.
② 기존의 '민주세력 대 반민주세력'의 대립구도가 희석화되고, 군부세력에 대한 저항전선으로 다양한 반대세력이 단일하게 결집되지 않고 대중들이 적극적으로 반집권당적 투표를 할 수 있는 정치심리적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
③ 야당, 민주당의 경우 재집권연합의 구축과정에서 나타난 지배진영의 분열에 기초하여 소극적인 전략으로 일관함
민자당과 국민당의 대립, 이종찬의 탈당으로 표현되는 민자당의 분열을 계기로 나타나는 여권표의 분산에서 주어질 수 있는 어부지리에 대한 기대로 시종일관 방관자적 위치를 취하고 소극적 적략으로 일관하였다.
④ 변혁적 저항진영이 선거과정에 효과적으로 개입하지 못함
'범민주단일후보안'으로 당시 '가장 선진적인 ' 야당과 연합전략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전략을 취하였으나 이는 김대중이 포괄하는 국민적 지지와 재야저항운동이 포괄하는 국민적 지지의 단순 합(合)으로 성공할 수 없는 객관적 조건을 올바로 인식하는 효과적 대응을 펼치지 못하고, 민주당에 대한 단순지지로 종결되고 말았다.
⑤ 군부정권에 대항하는 반민주전선의 지역적 분할과 왜곡된 고착화, 그로 인한 반군부정권 지향이 민주적인 방향으로 단일하게 수렴되지 못함
1987년과 1988년 총선을 통하여 실체화되기 시작한 지역감정은 이전의 TK를 대표하는 군부집권당 대 반 TK세력의 대립구도를 3당합당으로 반호남정치연합이 형성됨으로써 정치사회적 영역에서 대립구도는 '호남 대 반호남'으로 전화되었고 군부집권당은 이를 재집권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대립구도의 전환은 군부정권에 반대하는 세력들의 연합을 통하여 민주정부를 수립하고자 하였던 야당 및 저항진영의 시도가 성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건을 마련하게 된다.
⑥ 중산층 및 젊은 세대의 탈정치화와 탈동원화, 보수화의 증대
5공화국까지 저항은 곧 군부집권체제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정치 자체에 대한 절대적 관심의 감소, 군부정권 혁파적 변화가 아닌 온건한 개혁정 속의 개혁, 체제 내적인 개량적 변화의 선호가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
14대 대선에서 투표율의 하락이나 중산층 및 젊은 세대의 집권당 지지율의 상승현상
맺음말
김영삼 정권이 출범함으로써 한국에서는 제 3세계 민주화의 경로상 유례없는 경로가 현실화되게 된다. 즉, '반군부정권 투쟁에 동참하였던 타협적인 야당이 군부집권당과 통합하여 군부집권세력과 결합한 상태에서 그러한 야당지도자를 수반으로 하는' 민간정권이 수립되는 경로를 밟게 된다.
이러한 경로는 기본적으로 군부정권과 단절된 대립적인 세력의 독자적인 집권에 의해 민주화가 진전되지 않고 , 집권세력의 주도에 의하여 위로부터 민주화가 진전되는 경로라 할 수 있다. 1987년 선거를 통하여 연성군부정권을 성립함으로써 위로부터 민주화의 경로를 연 한국의 지배진영은, 이제 김영삼 정권의 성립을 통하여 군부를 이면화한 재집권에 성공함으로써 위로부터 민주화의 경로를 우위화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김영삼정부를 과도적민간정부, 민간의사 민주정부이며 불완전한 민주주의 혹은 제한된 민주주의로 규정할 수 있다. 형식적으로는 민주정부의 외양을 띠고 있으나 실질적 차원에서 많은 불완전성과 제한성을 가지고 있다.
1979년 10.26 사건으로 시작하여 1993년 김영삼 정권까지의 민주화 과정을 요약하면 '위로부터 민주화'의 경로라 할 수 있는 데, 집권군부세력과 온건야당세력의 연합에 의한 지배권력의 재생산이라는 독특한 한국적 경로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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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8.04
  • 저작시기20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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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62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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