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의 분석과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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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데미안의 분석과 감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작가생애

2. 소설의 배경

3. 줄거리

4. 작품 분석

5. 작품을 읽고 난 후의 소감

본문내용

향성은 막연한 내면의 소리에 의할 뿐 구체적인 방법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상태 속에서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에게 아브락사스를 인식하게 하고 또한 인간으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인도자의 역활을 담당하고 있다.
데미안에서 진정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기존의 법칙인 선과 악의 대립에서 벗어나 삶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려 하는 용기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며, 이는 단적으로 말해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하는" 아브락사스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같이 싱클레어는 피스토리우스를 통해 인식의 단계에 도달함으로써 자기형성의 과정에서 진일보하게 된다. 하지만 싱클레어는 크나우어와의 관계 속에서 이러한 인식의 단계가 자기실현의 과정 속에서 그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한 인간의 완성, 즉 자기자신에 이르는 길은 외부의 세계에서가 아니라 오직 자기 안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융이 말한 바와 같이, "자기"야말로 "하나의 원리"이며 각자의 운명은 무의식 속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작품 속에서 피스토리우스와의 결별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의 이상 추구의 길은 오직 자기 안에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 즉 자기의 운명에의 길을 내딛는 사람은 완전한 외톨박이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내면화 과정 즉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길은 점점 심화되는 고독과 더불어 전개된다. 헤세는 이러한 내면화의 과정, 즉 선과 악의 통합 과정을 작품 속에서 실현시키기 위해 연속되는 꿈의 세계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작품에서 싱클레어는 새와 관련된 꿈을 연속적으로 꾸게 되는 데, 마지막에 그의 운명의 새가 그려진 그림을 태운 재를 먹는 꿈을 꾼다. 이 부분은 꿈과 현실의 융합 상태 속에서 즉 외적인 현실과 내면의 구분이 모호해진 상태에서 나타나고 있다. 꿈, 즉 무의식의 세계를 통해서 상징적으로 암시된 싱클레어의 완성은 이제 에바부인과의 만남을 통해 현실의 세계에서 그 완성을 체험, 실현하는 과정으로 접어들게 된다. 에바부인과의 만남은 '표지'를 가진 사람들의 그룹에서 그 정신적 일원이 됨을 의미한다. '표지'를 가진 사람이란 자기 자신의 내면, 즉 자신의 운명에 용감하게 대처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운명에 용감하게 대처하는 인간이란 자기 자신의 내면의 법칙에 의해 즉 자기 자신의 운명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는 '차가운 우주 공간에 홀로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신적 그룹의 해체, 즉 데미안과 에바부인과의 이별은 불가피한 일로 파악할 수가 있다. 해체의 과정은 소설 속에서 전쟁과 더불어 전개되고 있으며, 전쟁 속에서 데미안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데미안의 죽음은 싱클레어가 자기실현의 과정에서 완성의 상태에 도달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가 있다. 싱클레어의 자기실현은 이 소설에서 그의 인도자이며 개선된 자아로 나타나고 있는 데미안의 형상을 자기자신 안에 포함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그러므로 데미안의 죽음은 싱클레어의 삶에 있어서 끝이 아니라, 완성된 인간으로서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어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닥쳐와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는 자아"가 생겨나게 되며, 그 자아는 홀로 "이 세상 및 자기 운명과 맞서 싸울 수 있기"때문이다.
2. 아프락삭스의 등장 배경
아프라삭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술을 부리는 악마의 이름이다.
이는 그노스틱파의 종교관에서 유래한 말이며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을 포괄하는 이 신은 끊임없는 변화와 자연의 반항 속에서 창조적이고 지속적인 세계 원칙으로서 군림하는 전우주적(全宇宙的)존재로 설명된다.
이 소설에서의 아프락사스는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하는 상징적인 신을 의미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그노스틱(Gnostik)의 생각, 즉 신을 직관적인 체험의 세계에서 철학적인 인식의 사고로써 인식케 하려고 하고 이로 인해 자기 자신의 자아 본체를 형성하려는 생각을 주입시킴으로써 싱클레어 자아 내면에 있는 두 대립세계를 동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두 상반세계를 동시동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음양 요가법을 보여줄 뿐 아니라 이 동시동등에로의 길을 인도하는 희랍명의 신 아프락삭스를 그에게 제시하고 있다. 싱클레어에게 이 신은 상징적인 임무를 갖고 있다. 전혀 상반된 두 세계, 즉 신적인 선의 세계와 악마적 악의 세계를 다같이 동등하게 인정하며 일치시킨다. 이때 어느 한편의 세계에 자의적으로 일방적인 우위가 주어지지 않고, 이들 두 상반되는 대립세계가 동시동등으로 긍정된다. 이것을 위해서 헤세는 아프락삭스를 등장 시켰다.
Ⅴ. 맺는 말
“새로운 신들을 섬기려는 것은 잘못이었다. 세상에 어떤 무엇을 주려는 것은 완전한 잘못이었다. 각성한 인간에게는 단지, 단지 하나의 의무 밖에는 없었다. 그 의무는 자기 자신을 찾고 자기 속에서 견실하게 되는 것, 어디에 당도하든 간에 독자적인 길을 전향적으로 탐색해 가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참다운 천직은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오는 것이었다.” 이 부분이 데미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자기 내면의 자신을 찾는 것이 모든 인간의 지상과제라고 소설 데미안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며 싱클레어가 살아간 빛과 어둠이라는 두 개의 세계를 현재 나의 모습에 비쳐 보았다. 학교를 다니고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어느새 나의 삶은 싱클레어가 경험해야 했던 어둠이라는 두 번째 세계에서 살아가게 된 것 같다. 싱클레어가 그 세계를 즐겼던 것처럼 즐기고 그것이 당연한 것인 양 살아왔다. 이 세계에 살기 전 더 좋았던 시절은 까마득히 잊고 있던 것 같다.
보이는 세계가 전부는 아닐 것이다. 요즘 나는 나 자신이 지금까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발견하게 된다. 나의 가정 환경이 나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내가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소설 데미안을 읽으며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데미안의 가르침을 통해 나의 주관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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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4.11.10
  • 저작시기2004.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7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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