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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다. 경마장의 경주마들은 현대인의 우울한 초상을 대변하는 존재인 것이다. 하일지는 소설도 허구지만 삶도 허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허구라는 점에서 삶과 소설은 상통한다. 따라서 그의 소설은 소설이기도 하지만 삶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 공간이 바로 경마장이다. 화려하게 달리는 경마장의 말들, 그렇지만 그 말들은 타원형의 주로를 뱅뱅 돌기만 할 뿐 그곳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들의 조상이 뛰어 놀던 싱그러운 초원으로 가는 길은 영원히 막혀 있다. 우리들의 삶 또한 그렇지 아니한가 하일지의 경마장 시절 소설들은 그 점을 아프게 성찰하고 있다. 작가 하일지는 후기 산업사회에서 현대인이 겪을 수밖에 없는 존재론적 위기감을 극명하게 들어냄으로써 현실에 대한 독자들의 냉정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