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근대화와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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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의 근대화와 기독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조선의 기독교인가, 기독교의 조선인가
Ⅱ. 왜 또다시 문제는 미국인가
Ⅲ. 문명과 야만의 나라에 문명개화를
1. 세계관의 문제
2. 문명과 야만의 문제
Ⅳ. 가마탄 양대인, ‘선교사 권력’의 등장
Ⅴ. 의도된 전술, 정치와 종교의 분리
Ⅵ. 일대 사건, 대부흥운동과 또 다른 사머니즘 운동
Ⅶ. 점령군의 힘, 기독교의 힘
1. 민간신앙은 우상숭배인가
2. 제사는 우상숭배인가
Ⅷ. 푸닥거리 신, 우상과 이성
Ⅸ. 희망은 있는가

본문내용

허용되지 않는 상태에서 전교가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제사 불허를 거부한 신도들도 다수 생겨났다. 다산은 폐사 명령을 거부하고 끝까지 제사를 고수하였다. 그는 당시 유교적 지식인들과는 달리 조상에 대한 제사를 절대화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보본(報本), 보은(報恩)이라는 효의 상징적 표현이라고 이해하였고 상제례를 계속 살혀나가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사실상 한국의 제사 풍습에 관하여 교조적 유교문화라고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경향이 팽배해 있으나 이는 현실과는 다르다. 『주자가례』에 의하여 매우 엄격한 관혼상제 풍습이 강요된 것은 사실이나 민중들의 생활과 풍습에서 나타나는 모습들은 매우 유연한 것이기도 했다. 허례허식으로 제사를 올리고 충효에 얽매인 폐단도 없지 않았으나 조상을 기억하고 해마다 상을 차려 모시는 일은 유교 이전의 문제였다.
상두꾼들에 의하여 상여가 공동체적으로 모두어지고, 동네 품앗이로 장례를 치르고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뿐이라는 세계관 속에서 더불어 함께 음식과 술을 장만하여 죽음을 보냈다. 이른바 상부상조의 전통은 매울 강렬한 힘으로 민중들의 생활 토대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러한 민중들의 생활과 풍습에 가해진 서양인 선교사들의 몰역사적, 몰민족적 주입식 교육은 바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체 민중들의 생활과 풍습상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관혼상제 풍습 전반을 무시하고 금기시하는 시각을 뿌리내리게 하였다. 민족 혼례마당을 진부한 것으로, 상여의 만가(輓歌)를 마귀소리로, 제사를 우상숭배로 치부하는 관습이 오늘날의 기독교 문화 속에 팽배해 있는 것이다. 그 참뜻이야 어찌되었건 이들은 결국 민족문화에 대해 문화제국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Ⅷ. 푸닥거리 신, 우상과 이성
미국 선교사들에 의하여 잉태된 한국 기독교의 자국 민족문화에 대한 시각은, 당연한 일이지만 탈민족적인 속성을 지니기 십상이었다. 신학자 서남동이 송천성의 신학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문화신학, 정치신학, 민중신학을 논하면서 복음을 전달하려면 그들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고 풀이한 대목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말하기를, "한국사람의 '한'을 모르고 어찌 한국사람에게 복음이 전달되겠느냐"라고 한다. 또 중국과 아시아에 있어서 초대 그리스도교 신도들의 신을 대체로 우상과 잡귀를 몰아내는 푸닥거리의 신이었다. 선교사들은 중국사람들에게서 그 잡귀를 몰아내주려고 중국에 온 것이다라고 하였다. 위 중국의 경우는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문화를 몰아내는 푸닥거리 역할을 충분히 해낸 셈이다.
그럼 도대체 기독교에서 바라본 우상이란 무엇인가. 그들이 보기에는 민간신앙은 물론이고 불교까지도 미신 내지는 우상이었을 뿐이다. '지옥은 곧 절이요, 죄는 곧 부처라'는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는 종족 우월주의와도 연관된다. 이 같은 서양인 선교사들의 한국 민족문화에 대한 편견도 결국은 백인 우월주의와 결합된, '자민족 중심주의'가 빚어낸 편견의 늪으로, 이는 바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연속되어 오고 있다. 즉, 여전히 기독교 일반에서는 자국의 전통적 민족문화를 폄하하고 박해하는 사대주의적 외세의존 경향이 이미 100여 년의 역사 속에서 축적되어 온 탓으로 미망에서 깨어나기에서는 아직도 많은, 그야말로 '회개의 기도'가 필요한 것이다.
Ⅸ. 희망은 있는가
조선에 선교사들이 모두 '백인우월주의'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래 초기에 선교사들 사이에서 지극히 소수였지만 민족의 풍속과 일치하는 전교방식을 구사한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볼 때, 분명히 희망의 근거로 여겨진다. 또 한국 기독교가 빚어낸 민중신학이 아예 유럽에서 'Minjung' 이란 세계 신학으로 확고부동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성장을 거듭하는 민중신학 3세대의 미래는 한국 기독교의 희망이라고 믿고 싶다. 또 1948년 창립된 세계교회협의회와 연관된 한국 교회의 민주화에 대한 일정한 공헌, 사회 공신력의 증대를 위한 노력은 기왕의 미국 일변도의 선교정책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무엇보다 지난 70, 80년대 한국 교회가 민주화운동에서 수행했던 당찬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얼음장 밑에서도 새싹은 돋는 법이다. 세시절기와 다양한 민족 풍습, 음식과 의례, 놀이와 복식 등 우리문화의 세세한 양식들을 기독교 문화와 접목시키려고 전심을 다할때, 그러한 작은 노력이 무럭무럭 자라나 거목이 될때, 한국 교회는 우리의 당산나무처럼 거대한 느티나무가 되어 민족의 삶과 일치할 것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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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2.16
  • 저작시기2005.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85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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