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 시에 나타난 유겐트쉬틸의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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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유겐트쉬틸과 조형 예술

2. 유겐트쉬틸과 릴케

3. 유겐트쉬틸과 릴케의 초기시

본문내용

예술에서는 선이나 물결은 작품을 구성하는데 필수불가결의 요소로 작용하면서 그 나름대로 작품 전체와 조화를 이루게 되고 작품 전체의 분위기나 정서를 지배하게 된다. 애당초부터 유켄트쉬틸 화가들은 '선을 지배하려는 충동(Liniendrang)'
) Jost Hermand: 상게서. 66면 참조.
이 강렬했기에 선이나 물결의 성패는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였다. 이러한 위미에서 유켄트쉬틸 화가들의 경우 선이란 곧 '독창적인 선의 운용(die eigenschopferische Linienfuhrung)'
) Jost Hermand: 상게서. 66면.
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네들이 노리는 궁극의 목표는 필경 '삶의 輪舞(ein Reigen des Lebens)'
) Jost Hermand: 상게서. 66면.
였기에 이는 바로 '속박없는 자유로운 충동의 왕국(ein Reich des fessellosen Triebes)'
) Jost Hermand: 상게서. 66면.
을 뜻하는 것이었고 여기서 어쩔수 없이 '보편으로 드러나는 선의 소용돌이 현상(allgemeiner Linienstrudel)'이라는 것이 생겨날 수 밖에는 없었다. 예술의 왕국, "여기서는 걸어다니는 법이란 없다. 여기서는 '성큼섬큼 걷는 것이다.' 여기서는 느낀다는 법이란 없다. 여기서는 '하나의 그리움에 찬 갈망'을 知覺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제 年金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 Karl Eugene Webb: 상게서 74-75면.
그러기에 이 연금이라는 것을 두고 예술 철학자 짐멜(Georg Simmel, 1858-1918)은 '내면 세계의 성문지기( Torhuter der Innerlichkeit)'
) Jost Hermand: 상게서. 75면.
라고도 부르고 있다.
릴케의 다음 시에서는 윤곽과 선으로만 흐르는 한 소녀의 모습을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의 저녁 풍경과 어우러지게 그려놓고 있다. 소녀의 모습은 윤곽과 선으로만 드러나는 장식의 효과를 보여주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감어린 분위기도 자아내고 있다.
) Karl Eugene Webb: 상게서. 102면 참조.
저녁 시간이 이르기도 전이련만, 하얗게 차려입은 소녀 하나
이 소녀 주어 온 물건같다는 느낌이 자꾸만 내 가슴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한테 이토록 진기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 소녀의 모습 그것만이 아니다
목이며 머리결이며 말없이 흐르는 선
배경을 앞에 둔 이 소녀의 윤곽
이네들은 오래도록 윤곽 속에서만 살고 있다
저녁때면 이네들이 품고 있는 말들조차도
초원의 꽃들이나 집 없는 사내 아이들 앞에서는
온통 윤곽일 뿐이다
Ein Madchen, weis und vor der Abendstunde, 1900.
( S.W. III. 697)
이 시의 작자의 관심은 온통 윤곽과 선에서만 쏠려 있다. 그러기에 소녀가 - 더 정확히 말하면 목이며 머리결까지도 - 저녁때면 품고 있는 말들조차도 시인의 눈에는 윤곽으로만 비치고 있는 것이다. 소녀의 내면 상황을 시인이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정감어린 분위기며 장식 효과를 뛰어넘어 오히려 절묘한 표현 효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릴케의 작품에서는 물결이나 선이라는 동기가 더욱 확대되어 작품의 의미 내용을 밝히는 구실을 할 때도 있다.
그리움이란 이런 것, 출렁이는 너울이 집
그러나 시간 속에 고향이란 없는 것
소망이란 이런 것, 나날의 시각이
영원과 나누는 나지막한 대화
..........
Das ist die Sehnsucht: wohnen im Gewoge, 1897. (S.W. I. 145)
'출렁이는 너울' 곧 바다에서 굽이치는 큰 파도는 그리움의 안식처요 '나날의 시각이 / 영원과 나누는 나지막한 대화'를 낳는 모태이기를 시인은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출렁이는 너울'은 곧 시인의 삶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삶의 이상향이기도 하다.
릴케의 작품에서는 물결이라는 동기가 소녀들의 그리움, 수줍음, 원한, 노래의 원천, 異性을 그리는 갈등 심리, 상심 따위로 나타나는 일도 있다.
물결은 그대들한테 입을 다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 그대들 또한 조용하란 법도 없지요
물결마냥 노래를 하면
안쪽 깊숙한 데서 그대들 몸이 되고자 하는 것은
가락으로 흘러나오지요
아름다움이란 부끄러워 그대들 안쪽에서 울리는 소리를
부활시켜 주었던가요
울리는 소리를 깨워 준 것은 한 어린 소녀의 원한이었을까요
누구더러 들으라고요
노래들은 그리움처럼 찾아왔지요
신랑과 함께 서서히
사라져갈 거예요
Die Welle schwieg euch nie, 1898(推定)
(S.W. I. 173-174)
또 어떤 시에서는 물결이라는 동기가 시인 자신의 심혼의 확대를 드러내면서 일상의 삶을 뛰어넘어 심혼의 孤島에 다다르는 모습을 상징하기도 한다.
..........
이러면 내 심혼은 산산히 부서지면서
日常을 날려보낼 때까지 자라난다, 내 심혼은 그토록 놀랍게 퍼지니
심혼의 아침 노을이 비낀 방파제를 만날 때마다
무한한 세계에서 몰려오는 첫 물결들이 죽어간다
Die Nacht holt heimlich durch des Vorhangs Falten, 1896. (S.W. I. 125)
시인의 심혼이 산산히 부서지는 것은 비속한 일상의 삶이라는 갑갑한 한계를 부수고 무한히 퍼지면서 심혼의 孤島에 다다르기 위함이다. 시인은 심혼의 기적을 믿기에 심혼의 확대한 곧 그의 신앙이다. '심혼의 아침 노을이 비낀 방파제'란 갑갑한 바깥 세계, 비속한 일상의 삶을 막아 주는 심혼의 孤城이라는 보루이다.시인의 심혼은 마침내 '무한한 세계에서 몰려오는 첫 물결들' 곧 예술의 孤島라는 무한 세계, 무한하기만한 '우주와 합일한다.'
) Karl Eugene Webb: 상게서. 103면 참조.
시인의 심혼이 우주만상과 교합할 수 있는 계기는 한없이 '몰려오는 첫 물결들' 덕분이다. '심혼의 아침 노을이 비낀' 무한의 바다에서 몰려오는 하얀 첫 물결들, 황금 물결들은 곧 순수와 절대의 傳令이자 音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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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6페이지
  • 등록일2005.03.22
  • 저작시기2005.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89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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