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수수밭

목차

1. 영화의 배경

2. 수수에 대해.

3. 1930년대 산동인들의 삶

4. 폭력이 끼어 들다.

5. 산동 호걸들, 무장하다.

본문내용

패배당했던 북방의 군벌들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북벌을 주도했던 남경 정부에 대해 반기를 든 이후, 지역사회의 지배체계는 점차 혼란스러워졌고, 이에 따라 지역 농민이나 전쟁의 난민들은 패전 병사가 버리고 간 무기들을 주워 모아 종래보다 더 큰 규모로 무장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30년대에는 산동성의 토비가 무려 20만 명 이상이 되었다고 한다. 정부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무장활동을 하고 있는 위잔아오 일행은 외형상으로는 그 20만 명의 토비 속에 포함되지 않을까. 소설 속의 주인공들도 스스로를 토비 패거리라고 불렀는데, 호걸과 토비란 사실 종이 한 장의 차이가 아닐까. 어쨌든 영화에 나오는 위잔아오나, 루어한이나 모두 후대인들이 보면 호걸적 인물이라고 불러 주어도 아깝지 않게 행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쥬얼조차도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향촌사회를 어지럽히고, 사람목숨을 함부로 다룬 원수는 반드시 피로서 갚아야한다. 이런 원칙을 충실히 지키려 했던 사람들이, 바로 까오미 사람들이었다.
영화 속에서 위잔아오와 쥬얼들이 어떻게 항일전에 휘말리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장면을 놓치면, 산동 농촌과 항일 운동과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물론 루어한이 처형되는 것을 보고 난 뒤, 쥬얼이 분에 찬 모습으로 술을 마시면서 남편에게 원수를 갚아달라고 말하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는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득력이 약하지 않을까. 만약에 이 때문에, 일본군과의 싸움에 나서게 되었다면, 그 싸움은 항일전이라는 차원보다 개인의 복수전의 성격을 띌 수밖에 없다. 소설의 작자나 영화 제작자들 모두 정치적 의미는 될 수 있는 대로 배제하고 수수밭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인간들의 문제에 더 큰 관심을 두었다고 말하였는데, 아마 이 말이 진솔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위잔아오와 쥬얼은 루어한의 원수를 갚기 위해 붉은 술을 마시면서 무릎을 꿇고 맹세를 한다. 아마 원칙대로라면 짐승을 잡고 그 피를 마시는 혈맹의식을 하여야 했으리라. 그리고 그들은 예의 그 노래,
9월 9일에 빚은 새술입니다.
9월 9일에 빚은 좋은 술입니다.
이 술을 드시면 1년 동안 무병 장수할 것이며
이 술을 드시면 음양이 좋을 것이며.
......
를 반복하며 출정의식을 갖는다. 쥬얼은 싸움에 나가는 대신 술과 고기를 준비하고 차이삥이라는 대용식량을 만들어 후방지원을 담당한다. 그 식량을 나누어주려고 집을 나와 수수밭의 매복 지점에 도달하였을 무렵, 일본군이 나타나 기관총을 난사하면서 결국 쥬얼은 죽고, 위잔아오와 그의 아들 또우관은 살아남는다. 그러면서 다시 노래가 이어진다.
엄마 엄마 극락에 가..
순풍에 돛달고
탄탄대로에 좋은 말 타고
이 세상 근심은 모두 떨쳐 버리고...
이 두 개의 노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나는 아직 이것이 이 지역의 민요인지, 아니면 영화를 위해 만든 노래인지 알지 못한다.
이 영화는 30년대 말의 산동 농촌과 항일에 얽힌 이야기를 하면서도 원작에 내재된 문학성을 충실히 반영하려고 하였고, 실제 그 점에서 성공하였다고 생각된다. 물론 영화의 실제 촬영장소는 황토 고원의 하투(河套)였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화면 그득히 전개되는 수수밭 풍경은 화북의 가을 정경을 상징하는데 더 없이 좋은 장면이다. 장이모우의 스승인 시에 페이(謝飛)는 이 <붉은 수수밭>이 아주 진지하게 자신의 생각이나 주제를 표현한 예술영화라고 평가하였는데, 그것은 쉽게 수긍할 만하다. 물론 그 어간에 우리들은 당시의 농촌상황과 일본군의 실태, 공산당과 농촌 등에 관한 자료들을 조금씩 얻을 수 있고, 이를 통해 당시의 상황에 접근해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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