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롱시 - *오늘간행물, 베이따오의 작품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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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몽롱시 - *오늘간행물, 베이따오의 작품수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몽롱시
2. 오늘- 지하간행물
3. 베이따오
1) 혁명에서 유랑으로
2) 작품
(1) 회답(대답)
(2)선고 - 위루어커 열사에게
(3) 태양도시의 메모
(4) 우화
(5) 백일몽*6
(6) 밤샘

본문내용

主人
(5) 백일몽·6
나는 광장이 필요하다
넓고 텅 빈 광장
그릇 하나 숟가락 하나
연 하나 외로운 그림자 놓을
광장을 차지한 자가 말한다
그건 불가능하다고
새장 속의 새는 산보가 필요하다
몽유병자는 빈혈의 햇빛이 필요하다
길들이 서로 부닥치려면
평등한 대화가 필요하다
인간의 충동은 압축되어
우라늄으로, 안전한 곳에 숨겨졌다
조그만 가게에서
지폐 한 장, 면도날 한 개
독한 살충제 한 봉
탄생했다
[白日夢·6]
我需要廣場
一片空廣的廣場
放置一個碗,一把小匙
一隻風箏孤單的影子
占据廣場的人說
這不可能
籠中的鳥需要散步
夢游者需要貧血的陽光
道路撞擊在一起
需要平等的對話
人的衝動壓縮成
 , 存放在可 的地方
在一家小店鋪
一張紙幣, 一片剃刀
一包劇毒的殺蟲劑
誕生了
위의 두 시는 모두 1980년대 중반 이후에 씌어졌다. 신랄하면서도 해독하기 힘든 이미지들의 조합, 행과 행 사이에 조성된 넓은 의미론적 간격,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전의 비장하고 의지적인 색채를 찾아보기 힘든, 건조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눈에 띈다. 하지만 이런 시적 전환은 뻬이따오의 본래의 형식관에 비추어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는 이미 1981년에 {상하이문학(上海文學)}이란 잡지에서, "나는 영화의 몽타쥬 수법을 나의 시에 응용해서 이미지의 충돌과 빠른 전환을 꾀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이미지의 충돌'과 '빠른 전환'이라는 극도의 도약이 낳은 공백을 상상력으로 채워야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론적으로는 벌써 시적 낯설게하기의 독자수용적 측면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그의 시들은 여전히 '시대성'이라는 코드를 떠나서는 분명한 해석이 불가능하다.
위 시들은 분명 달라진 시대를 형상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다름'은 개인에 대한 시대의 억압과 이에 대한 항변을 책임지는 그의 시적 사명과는 무관한 '다름'이다. 오히려 달라진 시대는 더욱 그의 시선을 냉철하게 하고 세밀한 사유를 요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80년대 중반 이후의 중국에서, '개혁개방'의 현대화된 중국에서 인간은 비로소 독립된 공간을 획득했지만, 그 공간은 '우화'였기 때문이다. 우화는 그것 바깥에서 관조하는 인간에게만 우화일 뿐, 그것 안에 존재하는 인간에게는 자신의 '생활'이자 '삶' 그 자체이다. 강제된 관념으로 획분되고 경계지어진 우화의 공간 안에서 사는 인간은 그 우화의 '주인'이면서 동시에 '주인'이 아니다. 관조하는 인간(시인)은 본다. 그가 '유리새장' 혹은 '살찐 손' 안에서 살고 있음을. 그래서 시인은 [백일몽·6](장편인 이 시의 23편의 단시들 중 하나)에서 우화를 벗어나 '광장'을 요구하는, 아직 무엇으로도 점유되거나 질서화되지 않은 '광장'에 자신만의 원초적인 삶(숟가락, 그릇)과 도약(연)을 이루려는 '나'를 상정한다. 하지만 광장을 차지한 자는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그 광장에서 '평등한 대화'를 나눠야할 개인들의 충동은 '우라늄'처럼 알지 못할 곳에 보관된다.
뻬이따오의 한층 깊어진 성찰의 시들은 1989년 6월 제2차 천안문사건 전후에 더욱 강화된 권력의 폭력성을 견뎌내지 못했다. 급진적 민주화세력의 주도자로 지목된 그는 결국 1989년 4월에 해외로 망명을 떠난다. 망명자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를 전전하다 1993년에 비로소 미국에 정착하였다. 다음 작품은 그 망명과정에서 창작되었다.
(6) 밤샘
달빛이 희미하게 잠을 비추고
강물이 우리 방을 뚫고 흐른다
가구는 어느 기슭에 닿으려는가
연대기만은 아닌
비겁함까지 깃든 기후 속에서
공인된 한편이
비오는 숲으로 우릴 몰았다
흐느끼는 방어선으로
유리 문진(文鎭)이 읽는다
문자들의 이야기 속의 상처를
얼마나 많은 산이 막아섰던가
1949년을
이름 없는 노래의 끝에서
꽃은 주먹을 쥐고 부르짖는다
守 夜
月光小于睡眠
河水穿過我們的房間
家具在 兒 岸
不僅是編年史
也包括非法的氣候中
公認的一面
使我們接近雨林 
哭泣的防線
 璃鎭紙讀出
文字述述中的傷口
多少黑山 住了
1949年
在无名小調的盡頭
花握握拳頭叫喊
뻬이따오는 1987년 한 스웨덴잡지의 방문기에서 다음과 같이 조국과 자신의 관계를 토로하였다: "나는 중국으로부터 떠날 수 없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아무리 절망하려 해도 중국은 멘탈리티, 언어, 역사, 그리고 내가 하려고 하는 모든 것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 개인으로서는 바꿀 수 없는 운명입니다". 하지만 그는 중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떠날 수 없도록 정해져" 있는데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는 타국 땅을 헤매며 시를 쓰면서도 조국에 두고 온 자신의 뿌리를 어찌할 수 없었다. 그리고 "현실세계가 어떻게 추락해서 사라지더라도 시의 사명은 영원히 숭고한 것"이라는 자신의 신념이 더더욱 조국의 현실을 잊지 못하게 하였다. "얼마나 많은 산이 막아섰던가 / 1949년을"! 그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이름 없는 노래의 끝에서' 주먹을 불끈 쥔다. '꽃'이 되어, 뿌리없는 꽃이 되어 가련하게 부르짖고 있다.
중국 현대시의 시적 자아를 복권하고 이른바 차가운 서정으로 시대적 메시지를 전했던 시인 뻬이따오는 현재 중국 현지에서는 과거의 인물이다. 망명 이후 4권의 시집을 타이완과 서구 각국에서 출간하였지만 중국에서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가 처음 시인으로 이름을 알렸던 문예지 {오늘}은 폐간되었고, 현재의 중국 시문학사는 그에 대한 언급을 삭제하라는 당국의 요구에 따르고 있다. 그는 단지 {오늘}과 몽롱시파의 한 구성원으로 이름이 올라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차원에서 그는 여전히 '오늘'의 인물이다. 스웨덴, 미국의 유수한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매년 노벨문학상의 후보로도 거명되고 있다. 지금은 뉴욕주립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1990년에는 망명한 친구들과 함께 미국 현지에서 {오늘}을 복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활발한 그의 창작과 사회적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뿌리 뽑힌' 시인일 수밖에 없다. 조국을 사랑하지만 조국에게서 버림받은 그의 삶이, 그의 시가 언제 "어느 기슭에 닿아" 쉴 수 있을지는 아무도 가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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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6.13
  • 저작시기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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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0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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