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하는 시선; 유럽과 근대일본의 미술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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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차하는 시선; 유럽과 근대일본의 미술 展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다카하시 유이치(高橋由一)등에 의해 대표되는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시기의 양화는 유채기술의 습득과 평행하는 형태로써 사실성이 강조되어 갔다. 그러나 그들에 의해 표현된 화면은, 그 자체로 통일감이 있는 하나의 세계의 구성은 아니라, 박진적인 표현을 지향하여 추구함으로써 달성된 '잘라낸 현실의 단편'정도 밖에 아니었다. 다카하시 유이치를 잇는 세대의 다수는 유럽 유학을 통해 그 전통과 동시대의 회화를 흡수해 독자적 표현을 개척하는 것에 열심이었다. 그들은 '박진적으로' 대상을 그리는 것보다도 '어떻게' 그릴까? 라는 예술의 본질적인 과제에 눈을 돌리고 있다. 그래서 파리에서 귀국했던 구로다 세이키(黑田淸輝)를 중심으로 하는 '외광파'가 인상파적 화풍을 취해서 일본양화계의 주류가 되었으며 대상을 박진적으로 재현하는 표현형식은 점차 주변부로 밀려나버렸다. 대상을 치밀하게 묘사하는 표현이 일본의 양화에 다시 돌아오기에는 다이쇼(大正)시기 기시다 류세이(岸田劉生)의 등장을 기다려야 했다. 기시다와 코노 미치세이(河野通勢)는 동시대의 화가가 하지 않았던 세밀한 묘사에 감히 몰두하는 시대에 역행하는 화가였다. 그러나 기시다가 목표했던 것은, 유이치에 의해 양화초창기에 행해진 프리미티브한 사실묘사는 아니었다. 시대를 훨씬 거슬러 올라가 얀 반 아이크와 알브레히트 뒤러라는 북구 르네상스의 거장의 사실 묘사를 복제화를 통해 배운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화면은 박진적인 묘사를 실현하면서도, 유이치와는 다른 완결된 하나의 세계의 형성에 성공했던 것이다. 또 일본화에 있어서도 화재(畵材)와 사실표현의 틈에서 고민했던 도쿠오카 신센(德岡神泉)과 하야미 교슈(速水御舟)의 작업을 간과할 수 없다. 그들은 유럽의 전통적 사실과 宋元시대의 화조화에서 볼 수 있는 사실을 작업의 모델로 삼아 세밀묘사에 힘썼던 것이다. 이상에서 개관한 것같이 일본근대미술에서 대상의 '박진적 재현'은 유럽미술의 영향에 의해 탄생했던 것으로 확인될 것이다. 메이지 초기에는 박진감있게 대상을 표현하는 회하의 새로운 기술로서 서양의 사실묘사가 존중되었지만 다이쇼 시기의 화가들은 몇 가지 표현형식 속에서 자신들의 스타일로서 그것을 선택했던 것이다. 왜 다이쇼기에 이런 세밀묘사에 신경을 쓰는 화가들이 등장했을까? 그것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 기성 모더니즘의 표현형식에 대하여 젊은 세대의 아방가르드한 반동이었을지도 모른다. 구로다 세이키도 일찍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또한 독자의 화풍을 확립하는 것으로 구세력을 넘어서고자 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표현형식을 추구하고자 할 때 시간적·지리적으로 유럽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일본은 서양미술사 전체를 균형있게 바라보는 것이 가능했다. 인쇄기술의 진보와 복제화의 도움으로 그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스타일을 역사를 횡단하여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기시다 류세이(岸田劉生)의 뒤러 수용 -복제화를 통해서 본 서양고전회화
  • 가격2,0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5.07.20
  • 저작시기2005.07
  • 파일형식워드(doc)
  • 자료번호#307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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