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당스와 193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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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데카당스와 1930년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데카당스와 1930년대

데카당스
악마주의 [ 惡魔主義 , diabolism ]
상징주의 [ 象徵主義 , symbolisme ]
유미주의 [ 唯美主義 , aestheticism ]

■ 김억(金億) (1893.11.30 ~ ?(납북))
장미촌 [ 薔薇村 ]
노자영 [ 盧子泳 , 1901.2.7~1940 ]
박영희 [ 朴英熙 , 1901.12.20~? ]
변영로 [ 卞榮魯 , 1897.5.9~1961.3.14 ]

4. 1930년대의 시

본문내용

사변적인 요소가 많다. 그의 시의 이와 같은 특성은 <생명의 서>의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하게 될지니/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와 같은 시행에서 잘 나타난다.
신석초는 한계상황에 갇혀 있는 생의 본능과 그것을 초월하려는 몸부림을 감각적인 이미지로 묘사해 낸 시인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바라춤>이 있다.
이 시기의 중요한 시인은 이외에 김현승(金顯承, 1913-1957), 김광섭(金珖燮, 1905-1977), 노천명(盧天命, 1912-1957), 이용악(李庸岳, 1914-?), 백석(白石, 1912-?) 등이다. 김현승은 1934년 《동아일보》에 <쓸쓸한 겨울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다. 시집으로는 《김현승시초》(1957), 《옹호자의 노래》(1963) 등이 있다. 그는 초기에 서정적인 시들을 창작했으나 후기에 들어 지적이면서 사변적인 언어로 존재를 탐구하는 시들을 많이 썼다. 그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던 문제는 고독이었으며 시적 개성은 단단한 구조에 명증한 이미지를 구사하는 데 있었다. 김광섭은 1935년부터 《시원》등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했다. 시집으로 《동경》(1937), 《마음》(1949), 《성북동비둘기》(1969) 등이 있다. 대표적인 작품은 <꿈> <동경> <명상> 등이다. 이 시기의 그의 시는 삶에 대한 성찰과 인생론적 고백이 주조를 이루었으며 해방 이후에 잠시 붓을 놓았다가 만년에 이르러 생활과 사회에 관심을 보인 작품들을 썼다.
노천명은 1932년 《신동아》에 <방의 찬미>를 발표하면서 시단에 등장한 시인이다. 시집으로 《산호림》(1938), 《별을 쳐다보며》(1953) 등, 대표작으로 <사슴> <고향> <장날> <길> 등이 있다. 한국의 근대 여류시는 노천명에 와서 비로소 확고한 문학적 토대를 구축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 그의 시는 잘 다듬어진 서정을 향토적인 소재로 형상화했다. <사슴>과 같은 시에서는 이를 한 차원 넘어서서 인생론적 성찰에 다다른다. <사슴>은 물을 마시던 사슴이 호수에 어린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면서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는 것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일상적 자아와 본래적 자아의 소외된 거리에서 기인되는 존재론적 슬픔이 이 시의 미학을 이룬다.
이용악은 1935년 《신인문학》에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데뷔했다. 《분수령》(1937), 《낡은 집》(1938),《오랑캐 꽃》(1947) 등의 시집이 있으며 대표작은 <오랑캐 꽃> <전라도 가시내> <국경> 등이다. 이용악은 식민지 치하의 뿌리뽑힌 향토민의 삶을 노래했다. 그가 애정을 보인 것은 짓밟히면서도 잡초처럼 일어서는 민중의 생명력이었다.
백석은 30년대 시인들 가운데서 특이한 존재이다. 1935년 8월 31일 《조선일보》에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 문단활동을 하기 시작한 그는 평안도 지방의 향토적인 생활과 민속을 객관적 태도로써 리얼하게 그렸다. 여기에는 물론 식민지적 상황에서 유랑하는 민중의 삶도 주요한 테마가 된다. 백석은 단지 소재에 국한되지 않고 그 정서, 언어, 감수성 등에서도
향토적인 것을 형상화하려고 노력했다. 한국 근대시는 백석에 이르러 비로소 '향토시'라는 장르의 성립이 가능해졌다. 그의 시집으로는 《사슴》(1936), 대표작으로는 <가즈랑 집> <여우난 골> <광원(曠原)> <청시(靑 )> 등이 있다.
한국어의 공적인 사용이 전면 금지된 1941년 이후부터 해방까지는 우리 근대시사에서 암흑기로 불리는 시기이다. 이 기간에는 일본의 국시에 순응하는 일부 어용시들과 일본어 시들만이 발표될 수 있었고 한국어 시는 일제 창작이 금지되었다.다만 숨어서 시를 쓴 몇몇의 시인들이 민족문학의 맥을 계승했는데 윤동주, 허민(許民, ?-1943) 등과 박목월(朴木月, 1917-1978), 박두진(1916-), 조지훈(趙芝薰, 1920-1968) 등 소위 청록파 시인들이 그들이다. 윤동주는 1936년을 전후해 《카톨릭 소년》지에 동시 <고향집> <병아리>등을 발표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시인으로 알려진 것은 그의 사후 유고가 발견되어 1948년 서울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의 시집이 간행되면서였다. 윤동주는 일본 유학중 독립운동을 한 혐의로 1943년 일경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그의 시에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삶에 대한 성찰과 고통받는 동족에 대한 지식인의 속죄양 의식이 고백되어 있다. <서시(序詩)> <별 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 <십자가> <또 다른 고향> 등은 그의 대표작들이다.
식민지시대의 한국에는 몇 사람의 위대한 저항시인들이 있었다. 이상화, 심훈, 이육사(李陸史, 1904-1944), 한용운과 같은 시인들이 그들이다. 대표적인 저항시로는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심훈의 <그날이 오면>, 한용운의 <당신을 보았습니다> 등을 들 수 있다. <그날이 오면>에서 시인은 일제의 압제로부터 해방될 '그날이 오면' 자신의 뱃가죽을 벗겨서 북을 만들어 종로 네거리를 치고 다닐 환희를 노래했으며, <당신을 보았습니다>에서 시
인은 식민지 지배라는 치욕의 한 페이지를 역사책에서 잉크로 지워 버릴 결의를 다졌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대로이다. 20년대의 김소월은 비록 그의 일반적 시세계에서 거리가 먼 것이기는 하지만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과 같은 시에서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보여 주었다. 이육사는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북경의 감옥에서 옥사한 시인이다. 그는 1926년 《문예운동(文藝運動)》<전시(前詩)>를 발표함으로써 시단에 등장했다. 그러나 실제 문학활동을 시작한 것은 1930년 이후였다. 그의 <꽃> <절정> <광야> <청포도> 등은 문학적 성취 면에서도 값진 것이지만 식민지 한국인의 삶을 내적으로 형상화해 민족의식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되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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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9.10
  • 저작시기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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