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총의 생애와 그의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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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2. 설총은 누구인가...

3. 설총의 학문
1) 훈고학(訓詁學)
2) 경전(經典)의 해석
3) 설총의 이두창제설

4. 설총의 묘
1)설총의 묘
2)그 밖의 유적
가. 경산지역의 설총 관련 구전과 전승
나. 현전 설총 관련 유적과 유물

5. 나가며

본문내용

가 얕아 마모가 많이 되었으나 비문의 판독은 가능한 상태이다. 이 비석은 隆熙後 二年 癸丑年에 이곳의 儒林들이 세운 것으로 나와 있으나 융희후 2년은 간지가 癸丑이 아니라 任子이므로 융희후 2년은 융희후 3년의 착오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 비석은 1913년에 건립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비석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1924년 甲子年에 새로 세운 道東齊에 있는 비석에는 隆熙后 三年 癸丑으로 고쳐져 있다.
(3) 聰金寺
총금사는 경산시 유곡동 239번지에 위치하는 개인 사찰로 지금은 불광사라 고쳐 부르고 있다. 이곳은 유곡지를 지나 지름골 마을 한가운데 위치하는데 정면 3칸, 측면 1칸의 현대 기와집으로 기름골이 설총의 출생과 공부하던 곳이라는 설화를 바탕으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4) 道東齋
도동재는 경산시 남산면 하대리에 위치하는데, 이 지역 유림들이 홍유후설선생을 제향하기 위하여 1924년에 건립한 것이다. 원래는 유곡동의 골안골에 위치한 元曉寺에 있는 신도비에서 향사를 받들었으나 그곳의 지세가 궁벽하고 교통이 험준하여 이곳에 재실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유곡동에 있는 설총의 신도비는 그대로 놓아두고 이 道東齋의 담장 안에 새로이 신도비를 세우고 비문내용은 그대로 옮기어 적었다. 또 신도비 옆에는 壇所를 마련하여 이곳에서 봄과 가을에 제사를 받들고 있는 것이다.
가) 재실
이 도동재의 재실은 본채와 단칸의 대문채로 되어 있는데, 주건물인 본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건물이다. 예대원(경산 향토사연구회 회장)선생의 증언에 의하면 이 건물은 경산시 용성면 고죽1동에 있던 폐사된 대흥사 건물의 목재를 가져다 지은 것이라고 한다. 동향하고 있는 재실의 본채는 가운데 2칸의 넓은 마루를 두고 남북 양끝에 1칸씩 방을 들였는데, 북쪽방 앞에는 明日軒, 남쪽방 앞에는 解經堂이란 현판이 붙어 있다.
나) 도동재 홍유후설선생신도비
도동재 재실 남쪽에 따로 담장을 둘러 경역을 구분한 안에 신도비가 세워져 있는데 전체 높이는 180㎝이다. 비신의 높이 126㎝, 비폭 47㎝, 두께 23㎝이며, 개석의 길이 84㎝, 높이 40㎝, 폭 60㎝이다. 이 비석은 길이87㎝, 폭 56㎝, 높이 14㎝의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비문의 내용은 정면의 제첨은 유곡동 원효사의 신도비와 똑같이 ‘弘儒侯薛先生神道碑’라 되어 있고 본문은 후면의 우측에서 시작하여 좌측으로 되어 있고 우측면까지 이어졌다. 비문은 원래의 것을 그대로 베끼어 다른 것이 없으나 원비에서 ‘隆熙后二年癸丑’ 으로 잘못 되어있는 年號와 干支를 ‘隆熙後三年癸丑’으로 바로 잡아 놓았고, 우측면의 신도비 건립에 관계한 사람들의 내용이 조금 다르게 되어있다. 이 비문의 내용은 경산문화유적총람에 전문이 실려 있다.
또 맨 끝줄에 ‘乙丑三月一日竪’라고 신도비 건립일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 비석은 1925년(乙丑年) 3월 1일에 세운 것을 알 수 있다.
다) 道東齋 壇所
도동재 단소는 설선생신도비 오른쪽에 마련되어 있는데 가로 247㎝, 세로 274㎝의 장방형의 크기이다. 단소의 아랫부분에는 화강암으로 2단의 石段을 돌렸는데 아랫단은 높이가 28.5㎝ 장방형의 다듬은 돌 3개를 정면에 배치하고 중앙에는 무궁화를 양각하였다. 윗단은 아랫단 보다 약간 밖으로 튀어나오게 하여 높이 12.5㎝되게 돌리고 있다. 그리고 석단 위에 봉긋하게 봉분을 쌓고 잔디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봉분 정면에 바로 붙여서 가로 86㎝, 세로 55㎝, 높이 20㎝의 床石을 마련하고 상석 앞에는 1변 20㎝ 크기의 정방형 香爐臺도 갖추어 놓고 있다.
라) 道東齋 扁額
도동재 재실 마루 벽에는 많은 편액이 걸려 있는데 그 중에는 홍유후설선생을 제향하기 위하여 도동재를 건립하는 내용과 설선생의 탄생지가 경산시 유천마을이라 기록한 (薛侯之生在於嶺之慈仁縣柳川村) ‘道東齋記’와 “설총선생은 경산시 유곡동에서 탄생하고 유천마을에서 성장하였으며 도수암에서 가르쳤는데, 유천은 유곡의 동쪽이요, 도수암은 유곡의 남쪽이라(先生實記曰 生於油谷 長於柳川 講于道修庵 柳川卽油谷之東也 道修乃油谷之南也)”고 기록한 ‘도동재단소 창설사실기’가 있고 그밖에 ‘道東齋 重修記’ 등 많은 편액이 있다.
5. OUTRO
글쎄, 한 번의 레포트로 설총에 대해서 완벽하게 안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설총에 대해서 한 번 정리를 할 수 있게 되어서 굉장히 좋은 과제였던 것 같다. 무엇보다 여러 가지로 사학과에 필요한 기본 지식이 턱없이 부족한 나이기에 이번기회를 통해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게 너무나도 좋았다. 설총은 분명 훈고학을 연구하여 구결과 이두,향찰을 집중적으로 연구, 집대성한 학자임은 분명하다. 이것은 바로 우리 선인들의 문자생활을 조금이나마 윤택하고 편리하게 만들었으며, 또한 그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우리의 정신세계를 풍부하게 해주었다고 보아야 될 것이다. 참으로 아쉬운 것은 그가 남긴 작품들이나 그의 일대기가 남아있는 사료가 九牛一毛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비록 조금이지만 설총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앞으로도 이와 같이 하나의 인물에 대해 혹은 하나의 역사에 대해 오늘 한 것보다도 좀더 노력하는, 좀더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史學徒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참고 문헌◁
朴魯春저,『薛聰과 그의 花王戒』 建國大學校, 1972
金根洙저,『吏讀에 關한 新考察』 全北大學校, 1955
一然 저,『三國遺事』 한양출판사,1996
박진태,정호완 외4인 저,『삼국유사의 종합적 연구』박이정,2002
金富軾저,『三國史記』장락(도),1999
▷참고 사이트◁
경산시청 http://new.gyeongsan.go.kr/
경주시청 http://www.gyeongju.gyeonbuk.kr
문화관광부 http://www.mct.go.kr
▷참고 그림◁
CD-『두산 대백과 사전』,두산동아, 2004
▼각주
CD-『두산 대백과 사전』,두산동아, 2004
▼논문
단국대학교 명예교수님 남풍현 저,『설총과 차차표기법』사본
동덕여자대학교 교수님 김항수 저,『신라유학과 설총의 학문』사본
경산대학교국문학교수님조춘호 저,『경산지역삼성현 유적의 보존현황과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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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0.02
  • 저작시기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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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14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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