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의 무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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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차 례

1. 법정론

2. 복원 불국사

3. 나의 취미는

4. 비독서인절

5. 가을은

6. 무소유

7. 너무 일찍 나왔군

8. 오해

9. 운해목

10. 아파트와 도서관

11. 종점에서 조명을

12. 흙과 평면공간

13. 탁상시계 이야기

14. 동서의 시력

15. 회심기

16. 조조할인

17. 나그네 길에서

18. 그 여름에 없는 사람

19. 잊을 수 없는 사람

20. 미리 쓰는 독서

21. 인형과 인간

22. 녹은 그 쇠를 먹는다

23. 영원한 산

24. 침묵의 의미

25. 순수한 모순

26. 영혼의 모음

27. 신시 서울

28. 본래무일무

29. 아직도 우리에겐

30. 상면

31. 살아 남은 자

32. 아름다움

33. 진리는 하나인데

34. 소음기행

35. 나의 애송시

36. 불교의 평화관

본문내용

이 구석 저 구석에 도사리고 있다. 정치를 업으로 삼고 있는 세계의 헤비급 챔피언들이 지구가
좁다는 듯이 사방으로 분주하게 뛰고 내닫는 것도 오로지 세계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안간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지구상에서는 단 하루도 싸움이 않고는 배길
수 없도록 되어먹은 것인가?
인간이 잘살기 위해 마련한 기술문명이 사상 유례없이 달에까지 치솟게 된 오늘날, 인간의 대
지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살육의 피비린내가 날로 물씬거리고 있는 것을 보면, 사회 구조는 어딘
가 잘못되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곧잘 다룬다. 뿐만 아니라 전쟁놀이도 겸하고 있다. 장난감 가게에서는
예쁜 인형과 함께 총과 칼도 팔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귀여운 고사리 손이 살육하는 연장에
익숙해지도록 성인들이 몸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운동경기 종목 가운데는 권투와 레슬링이라는 게 있다.
이 두 가지 경기는 그 어떤 경기보다도 관중들을 미치게 하고 환장하게 만든다. 그것이 나라
와 나라 사이의 경기일 경우 링 위에서 치고 받는 선수뿐 아니라 관중들도 함께 사우고 있는 것
이다. "밟아라! 죽여라!" 하는 함성과 함께 때로는 돌멩이가 날고 술병이 던져진다. 이런 걸 가
리켜 그래도 친선경기라도 한다.
인간끼리 마주 붙어 피를 찾으며 치고 받는 이런 행위가 경기 종목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한,
인간 촌락에 싸움이 그칠 날은 멀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바로 이런 경기의 확대판이 아니겠는
가. 오늘날의 전쟁은 기계문명의 발달과 함께 그 양상이 점점 처절해지고 있다. 비전투원끼리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차대전 이래 부녀자들까지도 대량학살의
재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아래서 종교인이 과거처럼 부동자세로써 청산백운이나 바라보며 초연하려 한다면 그
런 종교는 없는 것만도 못할 것이다. 일체 중생이 부딪치고 있는 문제는 곧 종교의 과제이기 때
문이다. 그러므로 평화에 대한 염원과 노력은 오늘의 종교가 문제삼아야 할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인 것이다.
불교의 평화 사상
불타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평화가 무엇인가를 보여준 그 한 가지 사실만 가지고도 인류 역사에
불멸의 자취를 남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가 사회적인 실천 윤리의 바탕을 삼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비다. 중생을 사랑하여 기
쁨을 주는 것을 자라 하고, 중생을 가엾이 여겨 괴로움을 없애주는 일을 비라 한다. 그러니까 자
비는 인간 심성의 승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 불교에서는,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듯 그런 마음가짐으로 모든 이웃을 사랑하라고 강조
했다.
"어머니가 자기 외아들을 목숨을 걸고 지키듯이,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서 한량 없는 자비
심을 일으켜야 한다."(숫타니파이타, 149)
지극한 자비에는 멀고 가까움이나 원수와 동지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만인의 벗, 일체 중생의 동정자. 자비한 마음을 길러 항상 아힘사를 즐기노라."
(장노-, 648)
"그러므로 적에게도 자비를 베풀어라. 자비로 가득 채우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
다."(밀란다 왕문경)
인간 존재에 있어서 기본적인 구조는 세상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세상에 있다는 것은 함
께 있음을 뜻한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는 없다. 서로 서로 의지하여 관계를 이루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저쪽의 불행이 내게 무연하지 않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
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다"는 말은 연기의 공리이지만, 그것은 또한 모든 존재의 실상인 것이다.
초기 교단에서는 국가 권력을 향해 전쟁을 포기하도록 여러 가지로 노력했었다. "원망은 원망
에 의해 해결될 수 없다. 원망을 쉬어버림으로써 그것은 풀린다"고 했다. 빔비사라 왕이 이웃
나라 밧지족을 공격하려고 불타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불타는 여러 가지 저쪽 상황을 물은 뒤
무익한 전쟁을 만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란 죽이지 않고 해치지 않으며, 이기지 않고 적에게 이기도록 하지도 않으며, 슬프게 하지
않고 법답게 다스려야 합니다."(상응부 경전 제1권)
그리고 불가피한 경우라 할지라도 맞서 싸우기보다는 권지로써 화평하라고 했다.
무엇이 평화의 적인가
얼마 전 조조에 영화 "솔저부루"를 보고 전쟁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마음에서 싹튼 증오가 불붙기 시작할 때 그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고 만다. 어떠한 전쟁
이라 할지라도 본질적인 승리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모두가 패자일 뿐이다. 어리석은 증오심
과 부질없는 탐욕에 스스로 타서 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세계의 움직임이란 외형적인 현상만으
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연기의 논리를 빌리지 않더라도, 세계의 방향은 근원적으로 각 개인
의 동정과 직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 세계안에 살고 있는 개인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은 곧 그
세계를 형성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영향력을 가진 세계적인 정치가의 동작은 그만큼 큰 반응을 초래한다. 그들이 세계평
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영화 "솔저부루"를 당사국인 미국에서 만들어낸 일만큼이나 다행
한 일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노력은 그들의 마음에서부터 탐욕과 분노와 무지를 씻어버리는 일이다. 이기
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함께 살고 있는 이웃에게 보시와 자비와 지혜를 베
푸는 일이어야 한다. 국제간에 경제적인 균등한 분배 없이는 그 어떠한 평화도 없다. 과거 평화
를 깨뜨린 원인들을 상기해볼 때 절대 다수의 뜻에서가 아니라 소수 지배계층의 행동양식이 결정
적인 구실을 했다. 더구나 핵무기가 등장한 현대전의 결과는 어느 쪽에도 승리란 있을 수 없게
됐다. 인간에게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평화의 적은 어리석고 옹졸해지기 쉬운 인간의 그 마음에 있다. 또한 평화를 이루는
것도 지혜롭고 너그러운 인간의 그 마음에 달린 것이다. 그래서 평화란 전쟁이 없는 상태이기보
다는 인간의 심성에서 유출되는 자비의 구현이다.
우리는 물고 뜯고 싸우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서로 의지해 사랑하기 위해 만난 것이다.
(대학불연보, 1971.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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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1.08
  • 저작시기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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