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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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꽃은 언제라도 떨어질듯 위태로워 보인다. 천경자씨의 그림에서 꽃은 위에서 본 <나의 슬픈 전설의 22페이지>에서처럼 그 자체로써 아름다움을 의미하고 있다.
내가 놀란 것은 이 작품이 천경자씨가 힘들고 고난의 과정 즉 왜색풍이라 비난받던 시절의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내 예상은 정확하게 빗나가고 말았다. 이 작품은 1960년대 후반의 작품으로 그녀가 최고의 명성을 달리던 행복했던 시절에 그린 그림이었다는 것이다. 왜 그녀는 행복했던 시절을 이렇게 위태로운 것으로 표현하고 있을까
내가 추측컨대 바로 언제 끝날지 모를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불안감에서 이런 그림이 나온 것 같다. 인간이 언제나 행복하고 절정을 달릴 수 없듯이 그녀 또한 언젠가는 이 행복 뒤에 감당하지 못할 고난과 역경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직 떨어지지 않고 위태롭게 떠있는 꽃잎에 자신을 투영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신문으로 접하는 자살에 관련된 보도를 보면 생활고를 비관하여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지만, 유명인 특히 연예인과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했던 시절이 지나고 뭔지 모를 엄청난 고독과 예전에 행복에 대한 갈구로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를 화자가 생각하여 추상적으로 나타낸 듯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저 믹서에 있는 손을 주목했다. 저기에 있는 손은 무엇을 의미 할까? 단순히 추상성을 더하기 위한 소재로 보아도 상관없겠지만 나는 이 믹서를 사회라고 보고 저기 보이는 손을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상의 손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하면 꽃이라는 것이 어떻게 자기발로 믹서 안으로 들어갔겠는가? 불가능하다. 바로 저 손이 저 꽃을 집어서 믹서 안으로 넣어 버린 것이다. 즉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자살이라는 것은 우리스스로 자초하기 보다는 사회가 우리를 그런 자살이라는 믹서 안으로 떠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사회라는 것이 개인의 행복을 조정하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고뇌와 고통이라는 것이 한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가기보다는 아이러니 하게 행복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행복이 사라졌을 때의 갈망이 바로 현 사회의 자살이라는 풍조를 자아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행복이라는 것 위에 우리가 만들어 놓은 사회가 있다. 바로 이런 행복의 이중성이 내가 이 작품을 불편하게 느끼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나는 이번 미술관관람을 통해서 단순히 예술 작품만을 감상한 것이 아니라 인간 고뇌와 슬픔, 그리고 행복의 이중적인 모습도 보았다. 현대 미술은 이해하기 어렵고 화가만의 세계라고만 생각했었지만 조금씩 현대미술에 접근할수록 작품을 통해서 나만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화가는 단순히 소재만 제시할 뿐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인 것이다. 인생에 있어 꼭 한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들을 깊이 생각 할 수 있었던 것이 내가 미술관 관람을 통해 얻는 가장 큰 보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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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1.15
  • 저작시기2005.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2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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