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량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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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량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1. 문제 제기
2. 연구의 의의 및 범위

Ⅱ. 시대상황 및 생애
1. 시대상황
2. 생애

Ⅲ. 김사량 작가의 연구
1. 사상적인 측면
1) 일본어 창작과 사상적 기반
(1) 김사량은 왜 일본어로 창작하였는가?
(2) 김사량은 조선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3) 김사량은 다른 문인들과 어떻게 다른가?
2) 이데올로기 선택과 방향성
2. 김사량의 문학세계
1) 식민지 근대화와 조선민중의 비극적 삶
(1) 토성랑 (1936)
(2) 지기미 (1941)
2) 식민지 지식인의 내면적 갈등과 모순
(1) 빛 속으로 (1939)
(2) 천마 (1940)
3) 역사기록을 통한 현실의 극복
(1) 낙조 (1940)
(2) 물오리섬 (1942)
(3) 태백산맥 (1943)
(4) 노마만리 (1945)

Ⅳ. 결론

본문내용

라이크를 팔아먹던 동창 녀석이 서울로부터 독립운동을 하자고 내려왔다. 알고 보니 경무국의 끄나풀이었다. 또 한 번은 명색 모를 사내가 공산주의인가 하자고-이것은 헌병대의 앞잡이였다. 이런 형편이니 시시각각으로 조여드는 신변의 위험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이 되었다. 출국의 결심이 여기서 다시 생기게 된 것이다. 이 불안한 환경으로부터 빠져나가 어떻게든지 중국 땅에 다시 건너서서 연안으로 새어들어가 싸움의 길에 나서리라……냉엄한 자아비판을 하자면 역시 무서운 현실에서 도망하자는 것이 최초의 동기였는지도 모른다."(p.41)
중학 시절의 동창이 경무국의 끄나풀이고, 명색 모를 사내의 신분이 헌병대의 앞잡이였다는 사실은 당시의 친일 세력들이 어떤 방식으로 김사량에게 접근했는지 보여주며 친일 세력의 광범위한 대세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자아비판을 통해 자신이 왜 중국 연안에 있는 태항산 항일 근거지로 탈출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점을 매우 솔직히 털어놓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군의 침략 속에서 태어나 놈들의 노예 교육을 받으며 자라났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신경이 마비된 탓이라고 스스로 느껴진다. 그러나 동행의 두 동지는 적을 앞에 놓고 도리어 빙글거리는 것이다. 천만의외였다. 이네들의 사랑하는 전우를 찔러 죽이고 쏘아 죽이던 적병놈들이다. 어버이의 집을 불태우고 연약한 아내를 짓밟고 누이를 겁탈한 적병놈들이다. 전원을 전차로, 도시를 대포로 유린하고 파괴한 적병놈들이다. 그들에게 비참과 굶주림을 강요하는 적병놈들이다."(p.168)
일병 포로 수용소에 도착한 김사량의 마음에 거센 파도가 몰아치듯, 잡혀온 일본인들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강한 적대감이 '적병놈들이다'라는 문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게 된 이유이다.
「노마만리」에서는 노모와 처자식을 두고 떠나는 심경에서부터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태극기 앞에서 자유롭게 글을 쓰는 감동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을 성실하게 기록했다. 소설속의 모든 조선인들을 민족적인 차별과 잘못된 우월감의 희생자로 그려 일본 사회 속의 조선인들의 고뇌와 억압과 차별이 어떻게 인간성을 왜곡시키는가를 조명하고 있으며 식민지화가 조선민중의 궁핍상, 식민지화가 낳은 추악한 인간상을 사실적으로, 식민지와 본국에서 살아가는 피식민지인들의 고통과 고뇌를 섬세하게 추적함으로써 일제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며 일본의 수탈과 어려운 민중들의 삶이나 친일 모리배 군상들의 모습을 다루었다.
속도감있는 문체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감동이 곳곳에 배어 있는 「노마만리」는 하루 두 끼의 허기진 식사와 온갖 일용품의 결핍을 강요한 바로 이 태항산채야말로 '빛 속으로'의 작가가 그리도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빛'이었음을 알려둔다. 그리고 종이가 거의 없었던 그곳에서 회중시계와 바꾼 두 권의 편지지 위에 작은 글씨로 써내려간 이 단정한 한국어야말로, 그의 '입신'의 밑바탕이었던 일본문학 속에서의 성취를 중화시키고도 남는 해독제였다.
"이 기록은 언제 끝날 일인지, 혹은 어느 때에 주간될 일인지 필자 역시 예기치 못하는 바이다. … 하나 불행히도 조국독립의 향연에 참례치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필자 대신 이 기록과 그 외 몇 편의 창작물이나마 우리 용사들이 채찍질하며 내달리는 병마의 등에 실려 서울로 입성하여 주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 실로 우리 조국의 자유와 민족의 해방은, 우리들이 피로써 싸워 빼앗아야만 되며 또 그래야만 그 광영도 보다 더 빛나는 것이다. … 조국의 영광이여, 민족의 해방이여, 영원하라! "는 구절을 담은 45년 6월 9일의 「노마만리」초의 서언은 드디어 민족사와 자신의 개인사를 일치시킨 해방 전사의 자신감과 비장함을 보여준다.
이처럼 김사량은 「노마만리」를 통해서 실천적 항일 운동가로서의 면모를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록 일본어로 작품들을 썼고 일본인들을 벗으로 삼아 많은 교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사량을 친일파로 규정하기엔 「노마만리」나 「빛 속으로」의 무게가 매우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Ⅳ. 결론
김사량은 식민지 현실의 비참함과 조선민족의 암울한 생활환경을 재일 조선인의 관점에서 냉철히 보여주었으며,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끊임없이 물음을 던진 작가였다. 김사량은 비록 일본어를 도구로 창작활동을 하였으나 그 사상적 자세에 있어서는 조선민중에 대한 애정과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적 삶을 그려나가는 등 나름의 지난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김사량의 소설이 가지는 문학적 가치는 1940년대라는 소위 일제 암흑기라는 조선 문학의 공백기에 당대 현실에 대한 끊임없는 모색을 작품을 통해 시도했다는 점과, 현실을 직시하면서 문화의 우월 내지는 공존의 가치를 드러냄으로써 식민정책의 위선을 고발하려 한 점에 있다. 당대 많은 문인들이 조선인의 삶을 복원시키려 하지 않을 때 김사량은 복원되지 못한, 혹은 복원되지 못할 것들을 일본어를 통해 문학사적 공백을 훌륭히 복원시켜 놓았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무엇으로' 쓰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쓰느냐, 즉 무엇을 복원시켰느냐에 있었지 겉 표현인 언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김사량을 통해 우리는 그의 고독한 외길의 저항으로 우리의 문화적 가치와 전통을 지킬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제는 그의 강인했던 민족정신에 대해 올바른 평가를 내려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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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윤, 「김사량 연구 - 작품론을 중심으로」.
안우식(심원섭 옮김), 『김사량 평전』, 문학과지성사, 2000.
김종회, 『한민족문화권의 문학』, 국학자료원, 2003.
김사량, 『빛 속으로』, 소담출판사, 2001
정영진, 『통한의 실종문인 : 6.25를 전후한 실종문인사』, 문이당, 1989.
김사량, 현덕, 석인해, 『한국해금문학전집 제13권』, 삼성출판사, 1988.
김사량(김학동 옮김), 『태백산맥』, Notebook, 2006.
김사량, 『김사량 작품집』, 문예출판사, 1987.
정백수, 『한국 근대의 식민지 체험과 이중언어 문학』, 아세아문화사, 2000.
한겨레신문사, 『발굴 한국 현대사 인물』, 한겨레신문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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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6.29
  • 저작시기20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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