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 논쟁과 남근 분석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반포르노 vs. 친포르노

무엇이 포르노냐?

문제는 오히려 소프트 포르노다!

여자가 아닌 것이 바로 남자다

남자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다시 쓰는 포르노

본문내용

남성의 쾌락은 과묵함 속에서 스쳐 지나간다. 포르노는 그들 나름대로 남성적 관점에서 보는 여성의 욕망에 관한 엉터리 매뉴얼을 그려낼 뿐, 진짜 여성이 어떠한가에 대해서는 진지한 탐색을 하지 못한다.
포르노 속의 여성은 비천한 존재인 한편 끊임없이 채워주어야 할 욕구를 가진 존재로 나타나는데, 그 비천함을 즐기는 ‘남근으로서의 페니스’는 더욱 더 힘겨운 짐을 지고 현실 속의 여성과 ‘관계’해야 한다는 모순을 떠안게 된다. 그리하여 남근 환상에 빠진 남성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성적 능력을 확인하고자 하며, 현실에서는 여성과의 상호의존이나 친밀함을 두려워한다. 이렇듯 포르노는 남성에게 단기적인 해결책이자 위로이고, 갈증이자 고독으로 다가온다.
다시 쓰는 포르노
포르노는 이렇듯 남성의 환상이고, 남성을 위한 ‘씹’의 동화이자 매뉴얼이고, 프로파간다이다. 포르노가 가판대에서 버젓이 팔릴 수 있는 이유는 포르노가 제공하는 것들이 이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다는 말인데, 포르노를 보며 자위하는 것, 유아독존적 남근으로서의 자기 속으로 빠져들기, 슬프게도 그 실체는 ‘남근의 고독’이다. 그러므로 환상에 빠져들게 하는 이 남근성이 배제된다면 포르노는 더 이상 남성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 환상을 키우는 남성됨, 여성됨에 관한 의미가 변화한다면, 포르노는 더 이상 논쟁의 중심에 서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남성됨이 더 이상 남근으로 환원되지 않을 때, 이론 논쟁조차 필요 없어질 것이다.
의미의 전복에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면, 포르노를 다시 쓰는 작업 또한 시급히 시작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강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팜므 포르노’가 여성 비하 포르노에 대한 대응세력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성과 남성의 역할만 바꾸는 것이라면, 그건 다시 여성을 고독하고 갈증에 시달리는 존재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근의 환상까지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법적인 규제는 효율성을 갖지 못할뿐더러, 포르노를 공공 영역 밖 물밑으로 숨게 하는 역효과를 낼 게 뻔하다.
포스트 페미니즘의 입장에도 함정이 있을 수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즉 여성도 전통적 의미의 성적인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가부장제에 공모하지 않으면서도 적극적으로 성적 자기 결정권을 즐긴다는) ‘새로운 여성성’도 의미의 전복이 없다는 점에서 남근의 환상을 ‘뿌리째’ 흔들기는 힘들다고 본다.
그러므로 다시 쓰는 포르노 곧 전복적인 포르노란 현 포르노의 여남 관계를 역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없는 관계’를 ‘상호적 관계’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즉 에피소드적 성행위가 아닌, ‘이야기’와 ‘관계’가 있는 것. ‘관계’가 존재하므로 굴복과 권력의 이분법이 필요치 않은 것. 환상의 주입이 아닌 현실적인 것. ‘비천한 여성’ 대신 현실 속의 여성이 자리하는 것. 그럼으로써 포르노 속 인물과 화면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 쓰는 포르노는 여성성의 발견이자, 동시에 항상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들의 파트너인 남성들을 ‘자기만의 고독’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그런 것이어야 할 것이다.
  • 가격1,0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6.11.11
  • 저작시기2006.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71245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