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한문학사 요약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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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鄭道傳論

※徐居正論

※佔畢齋 硏究

※成俔의 문학론과 시세계

※俛仰亭 宋純의 서사적 漢詩의 세계

※李滉論

※매월당의 방외적

※조선전기 문인 유형과 방외인 문학인 성격과 사상

본문내용

인들이지만, 崇文主義的인 사고방식 때문에 文의 재능이 관인으로 진출하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고 官人社會에 文의 기능이 강조됨으로써 [사대부-관인-문인]의 등식관계가 성립될 정도였다. 이러한 유형을 [官人型은의 文人]으로 규정한다. 사림은 대개 지방의 중소지주계급 출신으로서 문학과 操行을 닦아 관인으로 진출한 부류를 가리키는데, 그 시대의 양심과 지성을 대변하는 존재로 생각되어 왔다. 이들은 같은 사대부에 속하면서도 관인형 문인과는 배경체질이념이 상당히 달랐던 것 같다.
신진문인층은 김종직의 문도 사이에서부터 인간 유형이 두 갈래로 나누어지고 있었다. 金宏弼, 鄭汝昌같은 이의 경우를 [處士型]으로, 남효온 같은 이의 경우를 [方外型]으로 각각 성격지워 본다. 처사형은 인간적 학자적 양심을 지켜 정치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穩健持中의 자세로 현실에 임해 조용히 향리에 묻혀 지내는 山林學者의 부류로서, 의리를 존숭하고 행실을 돈독히 하여 규범적이며 성리학의 세계에 침잠하고 詩文을 경시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그리고 방외형은 실권 밖으로 자기를 이탈시켜 버린 부류, 氣節을 숭상하면서 사회적 도덕적 규범을 무시하는 放達不의 인간형이다. 성리학에 몰입하기보다는 문학의 세계에서 자아를 찾으려 한다. [처사형]은 안정된 생활 기반을 전제로 하여 가능하다. 반면, [방외형]은 사대부 출신의 경우 자기 환경을 방기하고 마침내는 사대부적 생활 질서에 균열을 일으킨 것이다. 방외형은 중세기의 반체제적인 특이한 인간 형태이다. 처사형은 기본적으로 체제옹호적이고, 또 지주이면서 관인인 사대부의 기본 성격으로 볼 때 관인형과 對蹠이 아닌 다른 한 면의 모습인 것이다. 다만 16세기 전후의 역사적 상황에서 처사형과 방외형이 밀착해 있었을 뿐이다.
우리가 지금 주목하고 있는 신진문인층은 폭군 연산(1495~1505) 치하를 살았다. 연산군의 통치는 국가의 기강을 파탄시켰을 뿐 아니라 모순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때 사림들이 혹 살해당하고 혹 유배를 가는 판국에 [처사형] 인물의 경우 더러 기미를 채고 미리 향리에 은둔해서 가까스로 性命을 보존하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사림들이 진출을 보류하고 지방에서 은인자중해 있었을 것임은 물론이다.
우리가 보다 주목하는 것은 [방외형] 인물들의 움직임이다. 즉 홍유손 같은 이는 戊午士禍에서는 일단 벗어났으나 바로 [群飮誹謗] [傲世非俗]으로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멀리 제주도로 추방되었다. 李鱉같은 이는 자기 형 이 무오사화에 유배를 떠나자 눈물로 작별하고 황해도 平山으로 내려갔다.
여기서 특히 鄭希良이라는 이와 어무적의 발자취를 추적해 본다. 정희량은 자는 淳夫 호 虛菴, 당시 翰林으로 있다가 김종직의 제자로 무오사화때 義州로 유배되고 이어 金海로 옮겨졌다가 解配되었다. 어무적은 자 潛夫, 호는 浪仙, <續東文選> <國朝詩刪>에 몇 편의 시작이 수록되어 있고 雜錄詩話類에 그에 대한 언급이 산견될 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의 이름이 실록에 오르게 된 것은 한 장의 상소문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상소문은 당국자들에 의해 전혀 묵살되고 말았다. 그는 마침내 金海 官長의 民에 대한 貪虐譏刺하는 시를 지은 것으로 관장의 분노를 사서 도망가다가 역사에서 죽었다. 그때 남긴 그 작품이 <斫梅賦>인데 농민들이 굶주려 쓰러지고 사방으로 유리하는 참담한 상황을 인상깊게 형상화 한 것이었다.
16세기 당시 문인들이 현실권으로부터 이탈하였을 때 그들이 서 있을 다른 현실이 어디에 마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체제에 순응하지 못하지만 그것을 부정할 힘은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방외형] 인간의 자기 모순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방외형 문인]에 의해서 창조된 문학, 방외인문학의 세계는 심각한 정신적 갈등의 술회로부터 일전하여 아웃사이더로서 현실을 바라본 [玩世의 情操] 내지 현실을 회피하려는[忘世의 情操]를 나타내곤 하였다. 오직 민중을 인식할 때 사고의 현실성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김시습의 경우에 그러했거니와, 어무적으로부터 許筠으로 그러한 문학 정신이 발전하고 있었다. 일찍이 김시습은 스스로 [心與事相反 除詩無以娛]라고 [세계=事]와 [자아=心] 사이의 모순갈등을 시작으로 표출하는 도리밖에 없다고 고백한 바 있다. 김시습의 문학의 특징을 단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그의 현실주의 자세는 세상을 망각하지 않고 악전고투하는 인간의 삶을 형상화시키기도 했으며, 많은 사회비판적인 시편을 남기기도 했다.
17세기를 전후한 무렵 계속 치열했던 농민 저항에 당시 지배층으로서는 민을 지배체계에다 고착시키는 문제가 가장 긴급하였다. 이에 民을 유교적인 禮敎로 세뇌시키면서 그들에게 더욱 上下의 규범 윤리를 강요하였다. 한편 사대부사회 또한 정신적으로 경직되고 생활이 규범 속에 꼭 짜여지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예교의 구속으로부터 대담하게 자기를 해방시킨 것은 허균 그 사람이다. 그는 [남녀 정욕은 天이 부여한 것이요 분별의 윤리는 성인의 가르침이다. 천이 성인보다 높으니 성인의 예교를 어길지언정 천부의 본성을 위배할 수 없다.]고 부르짖었다. 그리하여 자기를 유교의 규범에 묶어두기를 거부하고 감정을 해방시켜서 방종하였다. 즉 그는 사대부의 구애를 파탈하고 교우의 폭을 넓혀서 분방한 서민적 생활 감정에 어울리며 그들과 문학 예술로 사귀었던 것이다. 그의 문학론에서 주장되고 있는바 復古의 문학을 반대하고 개성을 강조하며 소설과 같은 신흥 문예의 가치를 인식함으로써 유교에 종속되지 않은 새로운 문학 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우러난 것이 <홍길동전>이다.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인물군상 역시 [체제 밖]의 부류다. 토지에 긴박된 농민의 이탈은, 예법으로부터 이탈한 방외인의 그것과는 물론 행동 양상이 다르게 전개될 수밖에 없다. 농민의 이탈은 [群盜]라는 형태로 역사상에서 구체화되었거니와, 이것을 테마로 포착한 것이 바로 <홍길동전>이다. 임진왜란을 직접 체험한 세대에 의해 씌어진 <홍길동전>에서는 민중의 힘이 무한히 과시되어 있다. 민중의 저항적인 에네르기에 의해서만이 역사의 전진적 방향이 개척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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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2.17
  • 저작시기2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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