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사 답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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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며

Ⅱ. 본론
1. 광덕사의 역사
2. 가람배치와 전각
3. 광덕사의 문화재
1)광덕사 호두나무 -천연기념물 제398호
2)광덕사부도 -충남유형문화재 제85호
3)광덕사 석사자
4)광덕사 삼층석탑 -충남 유형문화재 120호
5)광덕사소장조선시대사경 -보물 제1247호
6)광덕사소장면역사패교지 -보물 제1246호
7)광덕사노사나불괘불탱-보물 제1261호
4. 광덕사와 관련된 인물: 운초 부용 -여류의 예술과 풍류

Ⅲ. 마치며

본문내용

보관(寶冠)을 쓴 노사나불을 다른 형상보다 크게 그려 중앙에 배치하고 주위에 2대보살· 2대제자· 사천왕을 그려 넣은 모습이다. 본존은 타원형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둥근 머리광배에는 작은 부처 7구를 표현하였다. 가슴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고 양 손은 어깨 높이 정도로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 손모양을 취하고 있다. 붉은색의 옷과 매듭, 옷깃의 둥근 모양 장식 등이 어우러져 화려함이 돋보인다. 주변의 인물은 좌우대칭으로 나타나 있는데 어깨 부분의 양쪽에는 2대 제자가 묘사되어 있고 그 아래쪽으로는 2대보살이 있으며 둘레에는 사천왕상이 배치되어 있다. 붉은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배경에는 군데군데 구름을 그려 넣어 밝고 선명한 채색과 더불어 화려함을 더해준다. 제석과 범천이 생략된 좌우대칭의 비교적 간략한 구도로 하단에는 사천왕이 배치되고 상단의 시방제불은 서운(瑞雲) 사이 좌우로 각각 5구씩 배치되어 있다. 본존의 형상은 마곡사 석가모니괘불탱(1687년작, 보물 제1260호), 장곡사 미륵불괘불탱(1673년작, 국보 제300호)과 같은 과거칠불을 상징하는 화불을 안치한 보관을 썼지만 수덕사 영산회괘불탱(1673년작, 보물 제1263호), 신원사 노사나불괘불탱(1644년작, 국보 제299호)과 같은 설법인을 취한 모습의 도상으로 보아 노사나불임을 알 수 있다.
4. 광덕사와 관련된 인물: 운초 부용 -여류의 예술과 풍류
芙蓉花發滿池紅 부용화가 곱게 피어 연못가득 붉어라.
人道芙蓉勝妾容 사람들 말하기를 내 얼굴보다도 예쁘다네.
朝日妾從堤上過 아침녘에 둑 위를 걷고 있노라니
如何人不看芙蓉 사람들이 부용화는 왜 안보고 내 얼굴만 보나
아름다움을 가진 가인의 당당함이 느껴지는 시라는 느낌이 든다. 어느 날 기생 부용이 연당에 꽃이 피어 연못 전체가 연꽃인 양 아름다웠던 부용당을 지나가고 있었다. 문득 저 편에서 연꽃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장난삼아 “기생 부용보다 꽃 부용이 아름답다.”며 농담을 던지자 부용이 즉흥적으로 저 시를 읊조렸다고 한다.
이 시는 광덕사 천불전 아랫길로 내려가면 볼 수 있는 ‘운초 김부용시비’에 적혀있다. 시비는 앞면에 그의 대표시 두 수(芙蓉堂, 哭淵泉老爺)를, 그리고 앞면 끝부터 뒷면에는 그의 약력을 새겼는데, 운초시비건립회가 구성되어 1996년 세운 것이다. 광덕사 경내로 들어가는 길과 뒷산으로 올라가는 삼거리에 오른쪽에는 '朝鮮時代 女流詩人 雲楚金芙蓉墓 가는 길'이라고 쓴 나무푯말이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씌어 있다. 산마루에 오르니 정갈한 무덤이 한기 있는데, 그 옆 묘비에는 '詩人 雲楚 金芙蓉之墓'라 쓰여 있다.
운초 김부용은 평안남도 성천의 기생이었으며, 시로 이름을 날린 조선조 대표적인 여류시인 중의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50살이나 차이가 나는 안동 김씨 김이양의 소실로 들어가 지성으로 그를 섬겼으며, 정실부인이 죽은 다음에는 정실 노릇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인정하여 김이양의 후손들이 이곳에 김부용의 묘지를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부용은 우리가 잘 아는 황진이, 그리고 이매창이라는 기생과 함께 3대 시기(詩妓)로 꼽힌다. (드라마<황진이>에서 봤던 그 ‘부용’과는 다른 인물이다. 황진이는 1500년경에, 김부용은 1800년경에 태어났으므로 드라마처럼 동시대에 살았던 라이벌 관계는 아니었다.)
시첩(詩帖)에 먹물이 말라가도 님의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고,
달빛만 바람소리 따라 어지러운 밤.
사랑하는 사이에 이별을 생각하면 얼마나 눈물겨운 것이던가.
정(情)의 문을 닫으면 마음은 한가로우나 목이 마르고
정(情)의 문을 열면 괴로운 가운데 마음 밭은 풍성하다.
당시 부용당에 서렸던 꽃향기는 사라졌으나 부용이 남긴 애잔한 시 몇 구절은 2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광덕사 한 구석에 조용히 남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Ⅲ. 마치며
광덕사에 대해 답사 이전에 알고 있던 사람을 드물 것이다. 광덕사는 우리가 이전 답사에서 방문해왔던 유명한 유적지나 사찰도 아니고, 많은 문화재가 있지만 이전 답사에서 보아왔던 국보급 문화재는 없다. 충남과 경기지역을 통틀어 가장 큰 절이었다고 말해지지만 임진왜란동안의 손실로 인해 사세는 기울었고 전각들은 최근 새로 지어져 고찰의 고즈넉함도 맛보기가 어렵다. 물론 답사의 목적이 유명한 유적과 문화재만을 보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이쯤에서 우리 각자 한번 쯤 광덕사 답사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마곡사의 말사로서 두 번째 답사지인 마곡사를 가기 전에 잠시 들르는 것일 수도 있겠고, 임란 이전 충청·경기지역의 손꼽히는 대찰이었던 광덕사의 현재를 보기 위한 것일 수도 있겠다. 어떤 이들은 광덕사로 들어가는 길의 ‘평범한듯하나 마음이 편해지는 풍경’ 때문에 광덕사를 찾는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조용하고 깨끗한 광덕산을 오르다가 광덕사에 잠시 들르기도 한다. 사람마다 답사의 목적과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것은 다를 것이다. 이번 답사의 첫 목적지인 광덕사에서 ‘그저 평범한 절’ 이상의 것을 보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권영한, 1997, 『한국사찰의 주련』, 전원문화사.
사찰문화연구원,1999,『전통사찰총서 12』, 사찰문화연구원.
충남교육사랑회, 2005, 『충남의 문화유적, 오늘의 문학사,아산시편.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엮음, 1998,『답사여행의 길잡이』4, 돌배개.
전통사찰관광종합정보, http://www.koreatemple.net/
문화재지식정보센터, http://info.cha.go.kr/
천안시청, http://www.cheonansi.net/
충남넷, http://www.chungnam.net/
*목 차
Ⅰ. 들어가며
Ⅱ. 본론
1. 광덕사의 역사
2. 가람배치와 전각
3. 광덕사의 문화재
1)광덕사 호두나무 -천연기념물 제398호
2)광덕사부도 -충남유형문화재 제85호
3)광덕사 석사자
4)광덕사 삼층석탑 -충남 유형문화재 120호
5)광덕사소장조선시대사경 -보물 제1247호
6)광덕사소장면역사패교지 -보물 제1246호
7)광덕사노사나불괘불탱-보물 제1261호
4. 광덕사와 관련된 인물: 운초 부용 -여류의 예술과 풍류
Ⅲ. 마치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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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9.07
  • 저작시기2007.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27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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